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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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12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전부 특별하지 않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여자들의 모습들과 그들의 내면의 갈등 등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제목 역시 이 단편 모음집에 들어 있는 작품의 제목이다.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야요이는 17년 전 홈스테이를 하면서 신세를 졌던 케이트로부터 여름 방학 동안 일본으로 놀러 오는 케이트의 딸 아만다를 부탁받는다. 그래서 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아만다를 마중하러 가는 동안 남편이 어제 시어머니가 맡겼던 고양이를 버렸던 일을 떠올리며, 바다에 던졌다는 남편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남편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뒤죽박죽 비스킷>

막 열일곱 살이 된 마유미는 언니와 오빠가 가치 있는 일과 어른들이 놀랄 만한 일은 이미 해버렸다고 생각해서 삶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삶에 남아 있는 것은 제일 맛없어서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뒤죽박죽 비스킷 같은 것들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눈에 그녀의 친구들은 전부 어른스럽게 보였고, 그중에는 대학생과 사귀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유미는 그런 대학생 인맥이나 애인조차 없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마유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아버지의 정육점 일을 돕고 있는 초등학교 동기 히로토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다. 히로토는 운전면허가 없었지만 가끔 운전을 했기에 마유미는 히로토가 운전해서 드라이브 갈 것을 강하게 주장했고, 그렇게 둘은 고양이 시나를 데리고 바다로 드라이브를 가지만 가는 여정은 최악이었는데….


<열대야>

아키미와 치카는 만난 지 3년, 같이 산 지 1년이다. 아키미는 모터사이클 가게에서 일하고 치카는 집에서 온종일 점토로 오브제 같은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느 더운 여름날, 아키미와 치카는 저녁을 먹은 뒤 동네 술집에 가서 맥주를 마신다. 그러면서 치카는 그들이 서로 같이 있고 서로 사랑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아키미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치카를 달래는데….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술집에서 아야와 아야의 남편, 유리와 유리의 남편 아키히코 씨에게 담배 신제품을 홍보하는 여자들이 와서 담배를 무료로 나누어 주고 이벤트 설명을 하고 간다. 그녀들이 간 후 유리는 자신의 남편에게 하던 심각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야기 도중 아야는 아키히코 씨가 유리랑 결혼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부하 직원과 육체적 관계를 가졌던 일을 떠올렸고, 잘못은 명백히 아키히코 씨가 했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유리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아키히코 씨의 말투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불현듯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의 과거 연인들과 전 남편, 전 아내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서로 다른 인연을 오래 만들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 가장 친밀한 사이가 되어 앉아 있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지는데….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나츠메는 매년 그랬듯 시어머니 시즈코와 온천으로 이틀간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짐을 싸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미 헤어진 루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의 관계는 이른바 불륜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2년 정도 계속되었고 나츠메는 루이의 부모님을 만났을 정도로 루이를 사랑했다. 일곱 살이나 어린 루이는 호적 따위 아무 상관 없다고 그냥 같이 살자고 나츠메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먼저 끝내자는 말을 꺼낸 것은 나츠메였다. 그 정사만 끝을 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돌아갈 장소를 잃는 것이었다. 루이와 헤어진 지 반년, 상실감은 상상 이상으로 훨씬 컸다.

나츠메는 루이를 잃었고, 그보다 오래전에 남편을 잃었다.

예년과 다를 바 없는 부담스럽고 피곤한 온천여행에서 시즈코는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이나 나츠메의 남편 요이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나츠메는 마음속으로 루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었기에 그 말이 짜증스러웠고, 시즈코와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묘한 기분이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어느 날 아침 다카시가 전화를 걸어와 아야노와 나무가 없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야노는 다카시를 영국 노퍽의 여행길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졌었고, 일본으로 함께 돌아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언니와 형부는 다카시의 호적에 아야노를 올리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둘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겁나는 것도 없이 그저 사랑하며 행복했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어느 한쪽의 마음이 변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떠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년 전 다카시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고 집을 나갔지만 둘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다. 어쩌면 다카시가 다른 여자와 잤다며 솔직하게 털어놨을 때 울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야노와 다카시는 서로가 다른 사람과의 정사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만남을 가지며 서로의 몸에 충족된 만족감을 느낀다. 아야노는 자신이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미 울 준비는 되어 있었다.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에서 부부라는 것이 인생에 대한 같은 목표로 살아가는 동반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인간 자체에 대한 서로의 이해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을 했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말라는 남편의 벽을 치는 듯한 말에 야요이는 성공한 듯한 그들의 삶과는 다른 외로움을 줄곧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허한데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뒤죽박죽 비스킷>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누구나 십 대 때에는 삶이 정돈되지 않고 막연하게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십 대나 이십 대 때에는 빨리 나이가 들어 삶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었는데… 아마 젊은 시절은 누구나 겪는 감정인 것 같다. 마유미도 대학교에 가고 나이가 드니 더 이상 세계가 뒤죽박죽 비스킷 같지는 않다고 느낀다. 아프거나 방황하지 않고 젊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열대야>에서 치카는 동성 커플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그들의 관계의 끝이 보이지 않음을 힘들어하고 걱정한다. 그들은 결혼도 이혼도 없지만 임신도 낙태도 없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바라는 것은 이루어졌지만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 사랑하고 같이 있고 그들이 선택한 길이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를 읽어보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 인연인 것 같다. 여기서도 아야의 남편은 12년간 사귀었던 연인과 헤어진 뒤 아야를 만나 결혼했다. 가끔 연예면을 장식하는 장수 커플들이 헤어진 뒤 금방 다른 누군가와 만나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일반적인 우리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실도 난무한데 사람의 인연을 어떻게 딱 잘라 그어 말할 수 있을까.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에서 나츠메는 사랑과 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부부관계를 왜 그냥 유지하는 것일까? 남편이 벌어다 주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놓치기 싫어서일까?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매일 속으로는 남편을 못마땅해하며 남편 옆에서 다른 남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한 것은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의 강함을 추구해서 더 나아지고 개선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 발전 없고 끝이 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진실되게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강하다는 것이 꼭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 정말 강한 것이 아닐까?


이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들이 담담하게 일상의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처음에는 밋밋하면서도 심심한 듯했지만 단편들을 계속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 삶의 일반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담담하게 그려지는 여자 주인공들의 사랑과 사랑 끝에 맞이하는 절망과 고독에 가까운 이야기들로 가슴이 헛헛하여 다 읽고 책을 덮은 후에도 이야기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랑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사랑 속에서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고독함을 느끼는 그녀들의 삶을 보면서 그녀들의 삶이 추구했던 사랑과 행복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막연하게 사랑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어보고 어디에 기대어서가 아닌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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