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려, 몽골에 가다 ㅣ 세창역사산책 16
이명미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평점 :
13세기 초 테무친이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고 '칭기즈칸'으로 추대되어 몽골 제국을 수립한 후 정벌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화북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금나라의 세력이 위축되자 금나라의 지배 아래 있던 거란이 몽골에게 쫓겨 고려 영토로 침입하게 된다. 이에 고려와 몽골이 연합하여 강동성에서 거란을 격퇴한 후 '형제맹약'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몽골에서는 고려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무리한 조공을 요구했고 사신들의 태도 또한 예의를 벗어났다. 이러한 논란으로 고려에서는 몽골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중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차쿠르)가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하고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다가 귀국 길에 압록강 부근에서 피살된다. 몽골은 이를 고려 소행이라 주장하며 국교를 단절하였고 6년 후 이 사건을 빌미로 고려를 침략하였다.
1231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고려 조정은 몽골 장수 살리타가 이끈 몽골군에 개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강화를 요청하였고, 몽골군은 철수하며 다루가치를 설치한다. 이에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무신집권자 최우가 강화도 천도를 결정했고, 이 결정에 자극받은 몽골은 1232년 살리타의 지휘 아래 고려를 다시 침입한다. 그러나 이때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들이 처인성 전투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다. 이렇게 40여 년간 고려는 몽골의 간헐적 침입을 받아야만 했다.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몽골과의 강화 여론이 높아져 항쟁 지속을 주장하던 무신집권자 최의를 제거하고 강화를 추진하게 된다. 고려는 태자를 몽골에 파견하여 고려의 독립을 약속받고 강화를 체결한다.
그러나 개경 환도와 일본 원정 조건에 대해 무신 정권이 반발을 일으키자 오랜 전쟁에 힘들어하던 반대파들이 무신집권자 임유무를 제거하고 개경으로 환도한다. 끝내 개경 환도를 거부하고 항쟁을 유지한 삼별초는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된다.
이 책은 기존에 많이들 다루고 있는 이러한 우리 역사 속에서 고려와 몽골의 전쟁과 간섭과 저항의 역사가 중심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루어진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교류에 초점을 맞추어 당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고려에서 몽골풍이라고 하여 몽골식 복장과 머리 모양 등 몽골 풍습이 유행한 것처럼 몽골에서는 고려양이라는 고려의 의복, 음식 등의 고려의 풍습이 유행했는데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있다. 그리고 몽골에 건너간 고려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무래도 고려에서 몽골로 간 인물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은 기황후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기황후의 원나라 내에서의 이미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려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원사』 권 114, 「열전」 제1, '후비' 1, 완자홀도 황후 기씨'에 따르면 기황후는 평상시 책을 보며 현숙한 황후들의 행적을 모범으로 삼고, 그에게 선물로 들어오는 진미들을 황실 조상을 위한 태묘에 먼저 올리며, 기근이 들었을 때는 구휼에 앞장서는 등 황후로서 현숙한 면모를 안팎으로 내보였다고 한다. 기황후의 득세를 보며 다들 '제2의 기황후'를 꿈꾸며 자신의 딸을 몽골로 시집보내는 고려의 권세가들이 많았다. 이른바 '몽골리안 드림'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황후의 득세 하에 고려 양식이 몽골의 궁중에서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권형의 『경신외사』에도 잘 나와 있다. '지정 이래 궁중의 급사와 사령 태반이 고려의 여인이었다. 이에 사방의 의복과 신발, 모자와 기물이 모두 고려의 것을 따랐다.'라고 기록하였으니 원나라 말기에는 궁정 안팎으로 고려 여성의 비중이 커지고 고려양이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정'은 혜종 토곤테무르 때의 연호로 혜종 토곤테무르는 기황후의 남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몽골에서 고려의 공녀 차출이 단순 허드렛일을 위한 급사 수요 충당만이 아니었음이 나와있다. 몽골에서 동녀를 요구 시 '양가의 딸'을 요구하기도 했고 고려 조정에서는 공녀 차출을 위해 국내 결혼 제한 조처도 취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려의 지배층 가운데서도 원 황실 측의 요구를 받은 경우나 혹은 자원해서, 혼인해서 몽골로 간 사례도 있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원 지배층과 결혼을 하게 된 고려 여성들은 그 자손들이 원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의 환관 역시 동녀와 함께 몽골에서 요구하는 주요 대상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 스스로 국경을 넘은 이곡과 이색의 이야기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몽골행을 택한 승려 태고보우, 나옹혜근 등의 이야기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여태껏 고려에 대한 역사가 조선에 대한 역사보다 적게 다뤄졌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일반 대중들 또한 고려에 대해서는 조선만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4대 임금의 이름은 금방 말할 수 있겠지만 고려 4대 왕의 이름을 금방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려의 문화와 인물들이 중국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커다랗게 장식하는 몽골의 원나라에서는 중요하게 대우받았었다는 사실과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고려인들의 이야기 등 고려 역사와 문화, 인물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활발히 이루어져 일반인들에게 소개되었으면 한다. 물론 혹자는 원나라는 몽골의 역사이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을 때 중국의 왕조 중 하나로 배웠으니 그 문제는 말하지 않겠다.
이 책은 단편적으로 알고 있고 무조건적인 핍박의 역사로만 알고 있는 고려 말기 몽골과의 관계에 대해 더 넓고 풍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 이야기이니 소설책처럼 쉽게 술술 읽히는 것은 기본이다. 포켓북 사이즈의 책이니 부담 없이 자주 찾아 읽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세창미디어>에서 출간된 역사산책 시리즈를 1권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