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고전인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함께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우선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의 저서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이 피소된 것이 부당함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아테네 시민들에게 스스로를 변론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을 서론에 해당하는 1차 변론, 문제 제기의 2차 변론, 최후의 변론인 3차 변론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고발인은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지금 그를 고발한 무리고, 다른 하나는 오래전부터 그를 고발해 온 무리이다.

오래전부터 그를 고발해 온 무리는 상당히 많으며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 위의 일을 살피고 밑으로는 지하의 일을 탐구하고 규명하고 옳지 않은 이론을 올바른 것처럼 들려준다'라고 모함했다. 그리고 지금 그를 고발한 사람은 멜레토스로 '소크라테스는 죄인이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신을 섬기는 악덕한 자이다'라고 고발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자연철학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적의를 갖게 한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은 델포이의 신전에 가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신탁을 구했고, 무녀는 소크라테스가 최고라는 신탁을 내렸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 신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신탁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 주위 사람들 평가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평가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이 어떤 다른 분야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있었기에 신탁의 말씀처럼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라는 말이 성립한다고 했다.

그러고 난 후 자신을 고발한 멜레토스를 불러내 문답을 통해 멜레토스의 고발장의 모순을 지적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에도 불구하고 30표가 더 나와 소크라테스는 유죄가 되고 만다. 이어 문제 제기의 2차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에게 합당한 판결은 사형이 아닌 프리타네이온(영빈관)에서의 식사 대접의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형 재판을 하루 동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을 두고 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일을 한 적이 없기에 자신이 피해를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양형을 정하는 배심원들의 2차 투표가 실시되고 80표 차이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최후의 3차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투표한 아테네 시민들이 머지않아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악평을 들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사형을 투표한 이들은 자신에게 내린 사형보다 훨씬 더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무죄를 투표해 준 이들에게는 죽음에 대해 희망을 가질 것을 이야기하며 선한 사람들에게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진실로 믿고 명심해야 할 것은 무슨 일을 하던 신이 보살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나아가자고.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멜레토스나 아니토스가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선한 사람은 악한 사람에게 해를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여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결코 구차하거나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했다.

길지 않은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철학적 소신을 이야기하는 소크라테스의 의연함을 보면서 죽음도 꺾지 못한 그의 정의와 진리 추구의 열망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변신>

외판원인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났을 때 갑자기 자신이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영문을 몰라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창밖의 음산한 날씨에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잠이나 더 자기로 마음먹고 자려 했으나 변신해 불편한 신체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 후에 집안 재정을 꾸려나가는 책임을 지고 있던 그레고르는 출근시간이 지난 것을 알고는 출근하려 했지만 변신한 신체를 제어해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출근 시간이 지나도 그레고르가 회사에 나오지 않자 사장은 그레고르가 회수금을 횡령하려 한다는 억측을 내놓았고, 지배인은 사장에게 그레고르를 두둔하고는 직접 그레고르의 집에 찾아온다. 이에 그레고르는 안간힘을 써서 침대에서 벗어나 잠겨진 방문을 겨우 열고 벌레의 모습으로 가족과 지배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레고르는 빠르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만 지배인이나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과는 반대로 그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끝내 지배인은 벌벌 떨면서 도망을 갔고, 아버지는 야속하게 발을 구르고 단장과 신문지를 휘둘러 그레고르를 방으로 몰아넣는데….



그레고르는 왜 벌레로 변신했을까?

소설에서 그레고르는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언제부턴가 집안 재정을 꾸려 나가는 생계 담당으로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그레고르에게 있어 가족은 이미 그 기본적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이고 물질적 이익만을 중시하는 경제적인 관계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그가 돈을 벌어와 가족들에게 돈을 내놓지만 가족들은 그것에 감사하지 않고 점점 더 당연한 일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레고르는 더 이상 가족과 사회에 바랄 것이 없게 되었고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가족들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신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가족과 사회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에게 더 이상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게 되고, 그레고르와 그들과의 관계는 단절되어 그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의무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구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레고르에게 있어 진정한 해방은 벌레로의 변신이 아닌 '죽음'이었다. 그레고르는 끝까지 가족들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레고르의 죽음의 의미를 가족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른 그레고르는 진정한 해방감을 느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