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려한 유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3월
평점 :
사몬지 스스무가 신주쿠의 36층 초고층 빌딩 꼭대기 층에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지 한 달째지만 찾는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던 중, 그의 비서이자 아내인 후미코와 기분 전환을 위해 같은 빌딩 2층에 위치한 커피숍 '에트랑제'에 내려가 커피를 마시다가 옆 테이블의 젊은 커플이 동시에 청산 중독사 하는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두 사람은 참고인이 되어 신주쿠 경찰서에서 진술을 했지만 경찰들은 그들을 좀처럼 돌려보내 주지 않았고, 한 시간쯤 지난 후에 그들을 서장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경찰서장과 예전에 사건을 같이 해결한 적 있었던 경시청 수사1과의 야베 경부가 있었다. 야베 경부는 두 사람에게 오늘 일어난 사건은 죽은 커플을 노린 것이 아닌 불특정 인물을 노린 살인 사건이었다며 며칠 전 총리 공관에 걸려온 세 번의 전화 녹음테이프를 들려준다.
테이프에는 스스로를 '블루 라이언스'라고 부르는 인물이 일본 국민 1억 2천만 명을 납치했음을 선언하며 방위비 5천억 엔을 인질들의 몸값으로 내놓거나 아니면 재계에서 보수당에 기부하는 5백억 엔을 일시불로 지불하라며 요구하는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었다.
이에 야베 경부는 외부로 이 일이 알려질 경우 일본열도 전체가 패닉에 빠질 것을 우려해 비밀리에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자 경찰들과는 별도로 민간인인 사몬지에게 사건 해결 협조를 부탁한다.
총리와 경찰의 함구령으로 젊은 커플의 죽음의 진실은 보도되지 않았고 5천억 엔의 요구조차 묵살되자 블루 라이언스는 인질을 한 명 더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3월 26일 밤 9시경에 홋카이도 삿포로 기타니주요조 지하철 종점 부근의 K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다섯 명의 남자들은 다음 행선지로 수위 높은 윤락업소에 가기로 결정하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도로를 점령하듯 가로 일렬로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그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친구들은 그가 이틀 전 내린 폭설로 만들어진 빙판길에 미끄러진 줄 알고 일으켜 세웠으나 그의 몸은 축 늘어졌고, 그가 쓰러진 눈 위에는 빨간 물이 번져가는 것을 보고 경악하며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총상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블루 라이언스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본보기로 삿포로에서 인질을 죽였음을 이야기했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총리의 고집에 다시 외국인을 포함한 세 번째 살인을 예고한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후쿠오카 공항을 출발해 도쿄로 향하던 전일본항공 417편이 이륙한지 약 한 시간이 지난 후 오사카 관제탑과 교신하고는 갑작스럽게 메이데이를 외치며 관제탑의 레이더에서 사라지는데…….
니시무라 교타로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했다. 역시 '미스터리계의 레전드'라는 작가님의 명성에 걸맞게 너무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가독성 좋은 문체로 눈을 뗄 수가 없는 소설이었다.
<블루홀식스>를 통해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작품들을 알아가는 기쁨에 항상 이 출판사의 다음 출간 작품이 무엇인지 기대가 되며 기다려진다.
이 작품은 실제 납치를 하지는 않지만 일본 국민 전체를 납치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전무후무한 납치 사건을 성립시킨 천재 범죄 집단 '블루 라이언스'와 천재 명탐정 '사몬지 스스무'의 두뇌 대결이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천재 범죄 집단 블루 라이언스는 가공할 만한 납치범이자 대량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아니라 스스로를 훌륭하게 여기며 이를 과시하여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경외심과 칭송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물론 모든 천재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비뚤어진 인성과 사고방식으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 중에는 모든 것이 범인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성공하는 듯 보여 아무 대처도 못하는 경찰과 사몬지를 보면서 울화가 치밀어 올라 내가 소설 속으로 뛰어들어가 "이놈이 범인이 맞소! 내가 다 읽었소!"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명확한 증거가 없다지만 범인을 범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눈앞에서 농락당해야 하다니…. 이건 뭐 홍길동이라도 이것보다는 덜 억울하고 덜 답답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노가미 변호사. 소설 속에 나오는 문구처럼 와펜을 그 면상에 던져버리고 싶게 만드는 얄미운 캐릭터였다.
주인공 사몬지는 내가 여태껏 소설 속에서 만나온 탐정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번뜩이는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만사가 태평하고 느긋했다. 그리고 사무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긴 다리를 쭉 뻗고는 사무실 창밖 야경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몇 번 묘사되는데 이것은 왠지 모를 퇴폐미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유부남이라니, 쳇!
작가님은 '내 맘대로 로맨스'도 꿈꾸지 말라는 듯 사몬지와 아내 후미코를 항상 같이 등장시킨다.
『화려한 유괴』는 오래된 소설이지만 그 시간의 갭을 전혀 느낄 수 없이 빠져들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문체도 너무나 깔끔하고 명쾌해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갔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같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며 도저히 어디로 향하는지 갈피를 못 잡게 하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도 너무나 예상외의 결과를 보여주며 여운을 남겼다.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과 각자 예상한 결말을 꼭 비교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