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무삭제 각본집
이용재 지음 / 너와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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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각본집이라는 것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통해 처음으로 접해봤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니 희곡집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단지 장면을 구분하는 용어가 다르다는 것 정도?


주로 대사로 스토리가 전개되니 일반 소설보다도 가독성이 정말 뛰어나고, 또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이 최민식 배우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읽어 나가니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이 머릿속에서 장면이 촤르륵 펼쳐지며 각본집에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이러다가 각본집이라는 형태의 책에 완전 매료되어 빠져들 것 같다.


이 책에는 실제 캐스팅을 완료하고 2019년 첫 리딩 때 사용했던 각본과 2015년에 썼던 초고 두 가지가 동시에 실려있다.

초고는 지금 영화화된 각본과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만 같을 뿐 줄거리나 인물의 성격, 인물이 처한 상황, 주변 환경 등 모든 것이 달라서 어떻게 이런 초안에서 완전 다른 새로운 이야기인 현재의 각본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화된 모든 시나리오들이 전부 다 그런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런데 확실히 초고보다 수정이 가해져 지금 영화화된 각본의 이야기가 좀 더 공감이 가고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영화화된 각본의 극중 배경이 되는 동훈고등학교는 전국 단위 자사고로 재학생들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등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5년 연속 의대 진학률이 전국 1위인 명문 고등학교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상위 1%가 모인다는 학교에 주인공 한지우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제도로 들어왔다. 중학교까지는 나름 상위권이었지만, 선행을 이미 끝냈고 주말이면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는 동훈고 학생들 틈에서 지우는 내신을 깔아주는 처지였다. 특히 수학 과목이 194/200으로 9등급이었다. 이에 수학 담당인 담임은 일반고에선 1등급도 가능하다며 지우에게 일반고 전학을 권유한다.


그날 밤 기숙사에서 지우는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지만 지우의 룸메이트와 다른 방 아이들이 지우의 방에 모여 돈을 거둬 배달음식을 시키며 같이 놀자고 지우를 꼬드긴다. 지우는 신경 쓰지 않고 공부하려 했지만 자신을 '스따'라고 지칭하는 말에 같이 어울리기로 하며 돈을 내지 않는 대신 음식 픽업을 나간다.

학교 담장 너머로 배달 음식을 받고 돌아선 순간 학교 경비인 학성과 마주쳤고, 학성은 원칙대로 지우의 학칙 위반을 학교에 이야기한다. 다음날 교실에서 담임이 전날 밤 지우가 받아든 봉지 안에서 음식 이외에 소주 네 병을 발견하고는 모의자를 묻지만 지우는 끝까지 그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혼자 '한 달간 기숙사 퇴사'라는 처벌을 받는다.


지우는 짐을 싸 기숙사를 나와 집에 갔지만 자신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아무 일 없는 듯 도로 집을 나왔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때마침 내리는 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과학관에서 비를 피했다. 이를 학생들 사이에선 인민군으로 불리는 학교 경비원 학성에게 들켰고, 학성은 자신 때문에 지우가 기숙사에서 쫓겨난 것을 알고는 지우가 경비실에서 밤을 보내는 것을 허락한다. 지우가 잠든 밤에 스도쿠를 푸는 학성 뒤에서 지우의 가방이 떨어졌고, 열린 지퍼 틈으로 프린트물 몇 장이 떨어졌다.

다음날 경비실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 간 지우는 수학 시간에 담임이 내준 프린트를 가방에서 꺼낸 순간 자신이 풀지 않은 수학 문제들이 풀려 있는 것을 보았고, 담임과 정답을 확인해가면서 놀라움에 점차 눈이 커지는데…….



두 번째 초고에서 지우는 사배자가 아니다. 부모님들도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고 어느 정도 넉넉한 집안 환경을 가진 반항아로 나온다.

학성은 역시 북에서 귀순한 인물로 학교가 아닌 지우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나온다. 그리고 초고에 나온 학성은 각본에 나온 학성보다 성격이 유하고 조금은 나약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인물이다.

이 초고를 각본과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준다. 왠지 영화만 본 사람들은 모르는 작가의 비밀(?)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뒷부분에는 작가가 초고를 수정하며 집필에 참고하기 위해 화이트보드에 적어둔 사항들이 사진으로 실려있다. 맨 마지막에는 자료 조사를 위해 읽은 단행본 책들 중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8권의 책 이름과 그 대강의 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 목록에는 넣지 않았으나 《수학의 정석》은 집필 내내 책상 위에 펴두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틈틈이 읽은 '시나리오 작법' 책들도 나름 유용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과 사배자 제도처럼 배려를 가장하지만 배려가 아닌 차별이 되어버린 사회 제도상의 문제점, 그리고 탈북자 처우와 사회 인식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그 모든 갈등과 역경을 통해 현재의 자신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누구나 다 예상하는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 뻔할 것 같은 이야기에서 뻔하지 않은 감동을 받는 것은 왜일까?


책 표지의 최민식 배우님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리학성의 인물 이미지와 각본의 리학성이 너무나 매치가 잘 되었다. 개인적으로 초고의 이학성은 저런 표정이 나오는 이학성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각본에는 리학성, 초고에는 이학성으로 이름이 나와있다.)

그리고 엔딩도 초고의 엔딩보다 각본의 엔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각본집 속 리학성의 대사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것은 수학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도 정답이 없고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인생의 이야기이다.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각본집을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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