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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
에리크 스베토프트 지음, 홍재웅 옮김 / 교양인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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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샤워 가운을 입은 남성이 기묘한 웃음을 띤 채 어두운 길거리에 무릎 꿇고 앉아 있고, 그런 그를 서로 비슷하고도 기묘하게 생긴 세 명의 사람이 흉기로 린치를 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것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는 한 여성. 그러나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제스처는 전혀 없이 커튼을 닫고 생소한 듯한 자신의 집안을 남편과 함께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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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것이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는 듯 "우리 여기서 사는 거야?"라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 "응, 그런 것 같아."라고 답하며 집안을 둘러본다. 집안 곳곳에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고 악취가 풍긴다. 그들은 파리까지 날아다니는 시체들을 보고도 놀라거나 혐오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체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 "주말에 저렇게 푹 쉴 수 있는 곳에 다녀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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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들 부부가 선택한 곳이 바로 최고급 스파(SPA).
이 스파의 사장은 자신의 시설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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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이 최고급 스파에 묵으며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하고 흡족해한다.
그러나 부부가 고개를 돌리면 어디에나 그들을 보고 있는 파리가 꼬이는 시체들이 있다. 그들은 부부가 먹는 똑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먹고 있다. 심지어 부부가 사용하는 탕이나 사우나 안에서도 그들은 존재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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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로 시설 점검을 나왔다는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과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 그러나 그들은 정작 스파의 어떤 시설도 둘러보지 않은 채 손님 접대용 캔디를 전부 집어가고 현금이 가득 든 가방을 받아 간다.
그러나 얼마 후 이들은 다시 스파로 돌아와 상납금이 평소보다 줄은 것에 대해 사장에게 직접 항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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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 스파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온다. 어리숙하고 순진해 보이는 신입은 깨끗한 수건을 각 부서함에 채워 넣고 사용한 수건은 다시 수거해서 세탁 부서에 맡기는 업무에 배치되었다.
직원들 각자가 정해진 위치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스파 이곳저곳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검은 때가 곰팡이가 핀 것처럼 심하게 번져있고 거의 씻기지도 않는다. 이에 직원들은 그것을 최대한 없애려고 청소했고, 배관공을 불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곳곳에 번진 더러운 곰팡이 때가 아래층의 천장으로 스며들어 그 아래를 지나던 신입의 어깨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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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에 특별 플래티넘 패키지로 예약한 VIP 손님이 도착하고 사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모두 나와 VIP를 극진히 맞이한다. 그런데 조금 전 곰팡이 때가 자신의 어깨에 떨어진 줄 모르고 서있던 신입은 사장의 비서에게 찍히게 되고, VIP 손님맞이 행사 후 사장에게 불려가 훈계를 듣는다. 그러고 난 후 사장의 지시하에 모든 직원들에 의해 조직적 왕따를 당한다.
그 후 그를 왕따시키고 괴롭혔던 직원들을 마주쳤지만 그들은 자신들도 같은 상황에서는 그러한 일을 당했고 이곳 스파에서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면 똑같이 대한다며 사과를 하지만 실상은 힘없고 순진한 그를 비웃는다. 이것은 신입의 내면에 분노와 증오를 일으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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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픽 노블은 상당히 기괴하고 난해한 것 같다.
어쩌면 불쾌감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만화에 대한 불쾌감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에 대한 불쾌감인지 모르겠다.
일단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주인공도 특정한 인물 한 사람이 아니다.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만화를 보며 자주 바뀌어가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 주목하여 그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야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곰팡이 같은 검은 물체와 함께 스파 곳곳에 나타난 이상한 존재.
그것들은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고 인간들을 죽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또한 그것들은 몇몇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전부의 눈에 보이는 것 같지도 않다.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들이 처음부터 스파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같은 직장 내 직원을 왕따시키고, 권력에 뇌물을 주고, 뇌물이 모자르다며 떳떳하게 더 요구하고, 다른 사람의 정성과 성의를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 등과 같은 더럽고 추악한 인간들의 행위와 나란히 그 검은색 곰팡이 같은 물체는 스파 곳곳으로 번져갔고, 어디서 온 지도 모르고 실재하는지도 모를 이상하고 기이한 존재가 나타나 인간을 지배하고 파괴한다.
심지어 사장이 가지고 있던 회사 자금 전체가 다 썩으며 시커멓게 변한다.
첫 장면에 부부가 그들을 쫓아다니는 시체를 보며 나눴던 대화 "우리가 뭘 잘못했나?"에 대한 아내의 대답 "잘 모르겠어. 어쩌면 그럴지도."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들은 인간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에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의 정체는 인간의 사악하고 부패한 마음과 정신이 표면화되고 실체화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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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일로를 치닫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그래도 돌파구는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눔을 행하는 밝게 빛나는 세 명의 존재들. 이들은 자신들의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누어주고, 다른 사람들은 외면하는 어려운 타인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도움을 준다. 그들이 행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도움으로 스파를 뒤덮은 우울하고 섬뜩한 분위기에 조그마한 희망의 꽃이 핀다.
그리고 그러한 도움을 받은 이가 말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하다는 한마디의 말은 다른 누구도 아닌 길을 잃고 헤매는 그 자신에게 자신이 찾던 길이 보이게 해준다.
선행과 베풂은 전염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가 받은 위로와 도움을 다른 상처 받은 이에게 다시 전해줬을 때, 어둠의 심연으로 가라앉던 상처받은 영혼은 구원의 눈물을 흘린다.
거창한 행위는 아니었다. 단지 없는 존재처럼 무시당하던 이에게 괜찮냐며 건넨 말 한마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악하고 어두운 본성을 이성적으로 누르고 밝고 선한 본성을 개발해 발현시키고자 평생 노력한다.
이 책은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자꾸 찾아가고 생각하게 한다.
왜 처음 부분에서 한 인간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무자비한 존재가 세 명, 그 뒤에 나오는 희망과 길을 잃은 존재에게 빛과 길을 밝혀준 존재도 세명일까?
왜 스파에 들어온 신입에게 부여된 업무가 깨끗한 수건을 채워 넣는 일이었을까?
『스파(SPA)』는 읽는 내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인물들의 행위와 얼굴 표정에 집중하여 의미를 파악하게 했다.
이 책에서 스파(SPA)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정말 부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휴식을 취하는 곳일까? 아니,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는 것처럼 인간의 가식과 가면을 모두 던져버리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욕망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친절한 세 명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길을 찾아 스파를 벗어났던 이가 폭력을 휘두르는 세 명의 사람들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 지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책의 끝에 이르러서도 끝이 난 것이 아니고 책을 덮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의 끝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로테스크함 속에서 가장 꾸밈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스파(SPA)』를 읽고 인간 본성과 인간 자체에 대해 숙고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스파(SPA)는 여러분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