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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2월
평점 :
대학 졸업 후 농림수산성에 들어간 고바 게이타는 국익에 부합하는 정당한 행위라는 상사의 계속된 세뇌로 나름대로 정의감을 느끼며 일본농업생산자조합연합회의 비자금 조성이라는 작업을 했지만 이것은 명백한 부정행위였고, 이 불법 행위가 발각된 뒤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희생양이 되어 농림수산성을 떠나야만 했다. 이것은 고바의 자의였다기 보다 비자금 조성에 연관된 국회의원과 농림수산성 고위급들이 퇴직 거부나 기밀 폭로에 대비하여 고바의 가족들의 편의와 안전을 담보로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인생에서 큰 실패를 겪은 고바는 스스로가 무능력자이고 인생의 패배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랜 기간 칩거한다. 그러던 중 고바의 폐인 같은 모습을 본 농림수산성 시절 동료가 전문 인터넷 증권회사를 소개해 줬고 고바는 비대면 업무라는 말에 입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고바는 자신의 농축산물 지식을 살려 농산물 관련 주식 거래에서 성과를 내며 이름을 알렸고, 홍콩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 기업가 마시모 조르지아니라는 중요 고객 담당팀에도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1996년 12월 24일, 마시모는 여태껏 메일이나 비서 클라에스를 통한 전화 미팅으로만 교류했던 고바에게 직접 대면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자신을 찾아온 고바에게 회사 업무와는 별개로 자신을 위해 개인적으로 일해 줄 것을 제안한다.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의 헝밍은행 본점에서 1997년 2월 7일 대량의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가 버뮤다 제도의 법률사무소와 몰타 공화국의 법인설립 컨설턴트 회사로 반출될 예정이었는데, 그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에는 각국 주요 핵심 인사들이 불법적으로 투자하고 재산을 쌓은 기록들이 있었다. 고바가 할 일이라는 것은 마시모의 계획에 따라 마시모가 꾸린 팀을 이끌고 이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를 강탈하는 것이었다. 대신 일이 끝나고 나면 고바에게 거액의 돈과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에 기록된 일본 정치인과 재계 인사의 불법 자산 운용 증거를 건네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덧붙여 답변으로 거부는 용납하지 않고 오로지 승낙 아니면 죽음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떨떠름하게 내켜 하지 않던 고바에게 다음날 농림수산성 시절 직속 상사였던 사사이 슈이치가 일가족 동반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곧 있을 정기국회에서 농림수산성의 비자금 조성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을 꺼린 정부 여당과 소관 부처의 고위급이 자신을 비자금 사건 내부고발의 주모자로 조작하려고 하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에 고바는 사사이처럼 순순히 죽어주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마시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계획을 수행하러 홍콩으로 간 고바는 마시모가 미리 임대해 놓은 몽콕 사무실에 들러 대충 둘러보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고, 헝밍은행과 연관을 만들기 위해 마시모와의 약속 시간 이전 헝밍은행 몽콕 이스트 지점에 들러 자신 명의의 계좌를 개설했다.
그 후 마시모와 만나기로 약속된 수상 레스토랑으로 갔으나, 고바가 도착해 VIP 룸의 문을 두드렸을 때에는 비서 클라에스를 제외하고 마시모를 포함한 두 명의 러시아인 경호원들은 이미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주검으로 변해있었다.
마시모는 비록 죽었지만 마시모와 체결한 계약은 고바가 홍콩에 발을 딛는 순간 효력이 발생했고 계획은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계획을 계속할지 멈출지는 고바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약서에는 모든 돌발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적혀 있었지만 마시모 본인이 죽는 상황에 대한 것은 적혀있지 않았다. 이 특수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일단은 다른 팀원들을 만나서 다수결로 정해야 했다.
그래서 나머지 팀원들을 만나러 나간 고바는 니심 데비라는 멤버를 제외한 자비스 맥길리스, 일라리 론카이넨, 린차이화라는 멤버들과 접촉할 수 있었고, 향후 일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어 의논하던 중 뜻하지 않는 습격을 당하는데…….
나가우라 교의 소설은 처음 접했다. 가벼운 추리소설로 생각하고 가볍게 덤볐는데 오산이었다.
소설을 끝내고 책을 덮었을 때는 웅장한 첩보 스릴러 액션 대작 영화를 한편 보고 난 기분이 들었다.
소설은 1997년 신년을 전후해서 홍콩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고바 게이타의 은행 반출품 강탈 사건과 현재 2018년 고바의 사망 후 양녀 고바 에이미가 불법행위로 경찰에 체포됨에 따라 도움을 받기 위해 고바가 생전 알려준 법률사무소에 전화를 건 후 영문도 모른 채 신분이 바뀌며 홍콩으로 보내진 뒤 양아버지 고바 게이타의 계획에 따라 고바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상황 속에서 마시모 조르지아니는 표면상 단지 개인의 복수를 목적으로 고바를 비롯해 복수나 돈에 절박한 사람들에게 접근해 팀을 꾸린 뒤, 헝밍은행에 보관 중인 각국 주요 인사의 부적절하거나 위법한 투자가 기록되어 있는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의 강탈을 계획한다.
그러나 과연 헝밍은행 본점 지하에 숨겨진 것이 각국 주요 인사의 불법 재산 축적의 기록뿐일까?
각국 주요 인사들의 금전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러시아나 영국 등 각국의 움직임과 대처가 지나쳤다. 어쩌면 마시모가 털어놓지 않은 숨겨진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계획이 진행될수록 자꾸만 커져가는 의혹과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고바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다.
팀원들끼리 서로의 개인사를 밝히고 공유했지만 정작 모든 것을 오픈한 것은 아니었다. 팀원을 믿지만 믿지 못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유리한 패를 하나씩 쥐고 털어놓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던져진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팀이라고 불렀지만 서로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요령껏 이용했다.
시간이 흐르고 계획이 진행될수록 숨 막히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도 모르는 전개에 책장을 넘기는 손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타협도 화해도 없다. 적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고바 자신이 죽는다.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을 죽여야 했다.
이 전쟁판에서 약속과 신뢰는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한 말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고바가 이끄는 팀은 패배자들의 집단으로 실패하고 개죽음 당하는 역할의 눈속임을 기대한 언더독스 부대였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언더독스였을까?
그렇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활약이 더 통쾌하고 짜릿했다.
평범하다 못해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찍힌 사람들, 언더독스의 반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사건과 음모와 배신으로 어느새 소설 속 고바의 상황에 몰입하며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며 소설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고바 에이미의 진실에 접근하는 이야기도.
아직까지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받았던 충격과 전율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마지막까지 독자의 심장을 놓아주지 않았다.
『언더독스』를 읽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마음껏 날려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