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탐정의 부재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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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갑자기 발생한 천사의 '강림'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하늘을 가르며 내려온 빛줄기에서 천사들이 튀어나왔고, 그들은 살육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땅속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러한 일은 세계 각지에서 동시에 일어났고, 한 명은 죽여도 괜찮지만 두 명 이상 죽인 자는 빠짐없이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강림 이전에 저지른 죄는 심판받지 않았으므로, 이전의 흉악 무도한 연쇄 살인범들은 살인을 멈춘 채 지옥에도 떨어지지 않고 아무런 벌도 받지 않은 채 숨죽이며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천사들의 모습은 인간의 상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날개는 있었지만 깃털이 전혀 없고 거무죽죽한 혈관이 불거져 보이는 것이 박쥐 날개와 비슷했으며 몸통 또한 잿빛으로 팔다리가 이상하게 길쭉했다. 눈코입이 존재하지 않는 얼굴은 표면에 아무것도 비치지도 않고 빛조차 반사되지 않았을뿐더러 아무런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그 모습은 자칫하면 악마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들 이 생물을 '천사'라고 불렀다. 천사일 리 없다고 화내던 이들도 실제 그들과 마주하고 나면 천사라고 인정하고 불렀다.


그러한 천사들은 죄를 지은 인간들을 지옥에 떨어뜨릴 때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건만 죄 없는 인간 앞에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약했다. 그리하여 평소 하늘을 해파리처럼 부유하는 천사를 붙잡는 것은 너무 쉬웠다.

인간들은 천사를 붙잡아 연구를 했다. 그리고 인간의 호기심은 연구를 넘어 천사를 죽여봤다. 처음 천사를 죽일 때는 그 사람 주위로 아무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을 죽이고 두 번을 죽이고 또 죽여도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두 마리 이상의 천사를 죽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아오기시는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아닌 죽은 예전 동료들을 위해서다. 아니, 사실 천국이 있다면 정의의 사도를 꿈꾸던 그들도 보답을 받겠지만 아오기시 자신이 구원받을 거라 생각했다.

지옥이 있는 것은 보았지만 천국이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예전 아오기시 탐정 사무소의 동료 아카기 스바루는 납치 사건의 피해자로 아오기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여 찾아낸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후 아카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아오기시를 동경하며 정의의 사도가 되고자 아오기시의 탐정 사무소에 조수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채용을 반대했던 아오기시였지만 그의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에 함께 일하기로 했고, 그 후 아카기가 스카우트한 인재들과 그가 형성한 다양한 인맥 덕분에 아오기시의 탐정 활동은 폭이 넓어졌고 예전보다 이름을 알리며 사무소도 커졌다.


그러나 그렇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세상 한구석에서 노력하던 동료들은 죽임을 당했다. 천사의 강림 이후 등장한 이상한 논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한 명까지 죽일 수 있다면 죽이는 게 이득이다. 그것은 신이 용납한 살인이다.

또 두 명을 죽이고 지옥에 갈 바에야 한꺼번에 많이 죽여 길동무로 삼는 것이 낫다.

정신 나간 생각이지만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대규모 무차별 살인사건을 일으켰고, 아오기시 탐정 사무소의 정의의 사도들은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

그날 아오기시도 죽었다.


그런 아오기시에게 천사의 섬으로 유명한 도코요지마섬의 주인 쓰네키 오가이가 섬으로 초대를 했다. 오면 아오기시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아오기시는 섬에 왔고, 그날 저녁 쓰네키는 섬에 온 손님들을 이끌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쓰네키는 특별 이벤트로 자신이 모셔둔 천사를 손님들에게 공개했다. 그 천사는 지금껏 알고 있던 천사와 달랐다. 우는 것 같기도,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목소리를 내는 천사는 모든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아오기시는 그 천사에게 팔을 붙잡히고는 정신을 잃고 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섬의 요리사 오쓰키가 아오기시를 깨우러 왔다. 그리고 쓰네키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는데…….



처음 접해보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 소설이다.

작가는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가 으스스하고 섬뜩한 천사 같지 않은 '천사의 강림'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고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여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사람을 두 명 이상 살해한 자는 천사가 지옥으로 심판한다.

얼핏 보면 살인을 예방하는 것 같지만 한 명까지는 죽여도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살인을 용납하는 신이라니.

이에 사람들은 그 용납된 기회를 쓰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을 정립한다.

읽으면서 과연 천사 강림은 세상을 낙원으로 만든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세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런데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천사의 강림 후 생겨난 세계의 법칙 하에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에 천사의 강림 후 계속해서 탐정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회의적이던 아오기시는 깨달음을 얻는다.

천사가 있든 없든 탐정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천사가 없을 때는 사법부가 범인을 심판했지만 천사가 강림하고는 천사가 범인을 심판한다. 다만 사법이 천사로 교체되었을 뿐 탐정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탐정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천사의 역할이라면 탐정의 역할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 아닐까.


이 소설은 천사의 강림이라는 특이하고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탐정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일반 현실 세계에서의 추리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하여 독자들에게 생각과 추리의 재미를 배가시켜주고 있다.

처음에는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설정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으나, 읽을수록 오히려 상상력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 더욱 빠져들 수 있는 추리소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 끝나 갈수록 책을 덮고 싶지 않고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드는 소설이었다.

혹시 아오기시의 다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 본다.


그리고 아오기시는 그토록 알고자 했던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해답을 찾았을까?

대답은 소설 속에 나와 있다.

『낙원은 탐정의 부재』의 천사 강림 후 세상으로 다 같이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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