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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씨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첫 번째 단편 <편지>에서 리지 웨스트는 그림을 공부하러 파리까지 왔으나 능력의 한계로 좌절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미국 화가 빈센트 디어링 씨의 딸 줄리엣을 2년째 가르치고 있다.
디어링 부인은 딸 줄리엣의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약 냄새 풍기는 공간에서 홀로 책만 읽으며 시간을 보냈기에 줄리엣에 관한 일은 디어링 씨와 이야기해야만 했다.
줄리엣은 공부에는 관심 없고 말을 듣지도 않을뿐더러 요리사와 보모가 들려주는 가십거리에만 신경을 썼기에 참다못한 리지는 그것에 대해 디어링 씨와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야기 도중 디어링 씨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에 리지는 감정적으로 무너지며 그와 입맞춤을 한다. 이후 리지와 디어링 씨가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던 중 갑작스레 디어링 부인이 죽는다. 이에 디어링 씨는 아내의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줄리엣을 친구 집에 맡겨 놓은 채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빗장 지른 문>에서 휴버트 그래니스는 유명 변호사 피터 애스첨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래니스는 10년 전 사촌 조지프 렌먼으로부터 유산을 받은 후로 끊임없이 유언장을 손보아왔으나, 오늘 애스첨을 초대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래니스는 재산을 얻은 후 자신이 바라던 극작가가 되기 위해 희곡을 썼지만 거듭 퇴짜만 맞았다. 그래서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결과는 대실패. 그 후 모든 종류의 희곡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좌절한 그래니스는 사는 게 힘들어 자살하려고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애스첨을 초대해 저녁 식사 후 자신이 사촌을 죽였음을 실토하며 자신의 염증 난 삶을 끝내주기를 바라는데….
세 번째 단편 <석류의 씨>에서 케네스 애슈비는 뜨겁게 사랑했던 첫 아내 엘시가 갑작스레 죽은 후 절망을 겪으며 자살할 뻔했지만 일에 빠져 지내며 그 위기를 극복했고, 샬럿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 샬럿은 회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받는다. 정확히는 남편 케네스 앞으로 온 편지였다. 그녀는 회색빛 봉투에 적힌 필적이 기억은 안 나지만 전에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생각했다. 케네스는 봉투의 희미한 글씨를 보더니 편지를 열어보지 않고 말없이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샬럿과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뒤 케네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찍 침대에 들었다.
그 이후로 편지를 받는 날이면 케네스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편지를 뜯어보았고, 저녁 식사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나타났을 때는 몇 년은 늙고 생기 없어 보였다. 그러고는 샬럿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 저녁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거나, 그녀가 집안일하는 방식에 꼬투리를 잡곤 했다.
샬럿은 회색 편지가 오기 시작한 후 낯설게 느껴지는 케네스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편지 봉투에 적힌 필체가 남성적 곡선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쓴 것이라고 확신하며 케네스에게 말을 꺼내는데….
마지막 <하녀의 종>에서 앨리스 하틀리는 장티푸스를 앓아 병원에서 석 달을 지내야 했고, 병이 낫고 나와보니 그녀를 하녀로 고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며 그럭저럭 점잖아 보이는 광고에는 연락을 전부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하틀리는 더욱 야위어갔다.
그러던 중 자신을 미국에 데려와주었던 귀부인의 친구 레일턴 부인과 우연히 마주쳤다. 레일턴 부인은 그녀의 몰골을 보고 그녀의 사정을 물었고, 사정을 들은 레일턴 부인은 하틀리를 자신의 조카딸 브림프턴 부인의 하녀로 취직시켜 준다.
시골에 위치한 브림프턴 가에 도착한 하틀리는 다른 하녀에게 자신의 방을 안내받던 중 정체 모를 여자와 마주치지만 안내를 하던 하녀는 그녀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 후 하인들의 방에서 다 같이 모여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 여자가 들어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여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브림프턴 부인은 하틀리 방에 직접 연결된 종이 있음에도 그 종을 사용하지 않고 번거롭게 다른 하녀를 불러 하틀리를 부르는데….

이 책은 네 개의 단편 모음집으로 <빗장 지른 문>의 주인공 휴버트 그래니스만 제외하면 전부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아마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을 잘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편지>를 읽으면서 결혼 전부터 이미 짐작하여 알고 있던 진실이 마침내 눈앞에 드러났음에도 애써 외면하려 하고 현실을 부정하여 모래 위에 쌓아 올린 행복을 선택할 것 같은 리지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물론 리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지만 앤도라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눈 막고 입 닫으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이제까지의 삶이 유지될 것이란 생각을 하는 리지를 보며 안타깝기만 했다.
<빗장 지른 문>에서 주인공 그래니스가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계속된 실패로 삶에 염증을 느끼고 마지막 남은 양심으로 실제 자신의 과거 범죄 사실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고자 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써 실패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 스포트라이트라도 한 번 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까?
결국 그러한 노력조차 실패를 거듭하자 좌절하며 내면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마는 불쌍한 인물만 남게 되어 안타까웠다.
<석류의 씨>는 읽는 내내 공포의 근원적인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짐작만 하게 함으로써 심장을 옥죄게 했다.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숨기고 제재하고 금지하는 남편 케네스의 행동에 샬럿은 점점 의심만 깊어지지만 당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남편의 실종….
끝까지 편지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고 답답한 상황은 그대로지만 샬럿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처음으로 행동에 옮긴다.
마지막 <하녀의 종>은 브림프턴 가에 등장하는 에마 색슨의 유령이라는 존재와 저택에 깔려있는 음침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브림프턴 씨의 폭력성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계속 마음을 졸이며 읽어야 했다. 그러고는 다른 소설처럼 자신의 죽음이 억울해 원한을 품은 유령이 복수해 주기를 바랐다. 선량한 브림프턴 부인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단편들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나 인간의 이상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다루어 등장인물의 불안과 공포를 잘 표현하며 전달하고 있다. 거기에다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당시 여성들의 억압받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군데군데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고딕소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졌으며, 이디스 워튼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대면하는 공포의 근원과 실체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섬세한 여성의 내면을 잘 표현한 고딕소설을 읽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