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귀신요괴전 1 - 중국 괴력난신의 보고, 자불어 완역 청나라 귀신요괴전 1
원매 지음, 조성환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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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릴 때 어른들을 붙잡고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듣는 중엔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듣고 나면 혼자 화장실을 못 가서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고, 어쩌면 그 무서운 이야기로 인해 악몽까지 꿀 것이 분명한데도, 귀신 이야기는 마치 중독성 있는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우리를 유혹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귀신 이야기'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귀신과 요괴라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로부터 두근거림과 짜릿한 긴장감과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서워서 옆에 있는 사람의 옷을 잡아당기거나 소리를 꺅꺅 지르면서도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이 인기 있는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듣거나 본 귀신 이야기가 많아짐에 따라 이 이야기가 저 이야기 같고, 저 이야기가 이 이야기 같은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뭔가 쌈박한 귀신 이야기가 없나 찾던 중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청나라 귀신요괴전』이다.



이 이야기의 작가 원매袁枚는 중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다소 생소한 작가라 생각된다. 『청나라 귀신요괴전』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온갖 귀신과 요괴, 괴담 이야기들을 묶은 일종의 필기 소설집이다.

원제목은 『자불어子不語』로 공자의 『논어』 중 「술어」편의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해석하면 '자불어'는 '공자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뜻이다. 바로 공자가 말씀하지 않으신 '괴력난신' 즉 '괴상하고 폭력적이며 난잡한 사건과 귀신들의 이야기'의 모음집이 바로 『자불어』 즉 『청나라 귀신요괴전』인 것이다.


『청나라 귀신요괴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 『자불어』는 포송령의 『요재지이』와 기윤의 『열미초당필기』와 더불어 청대의 3대 문인 소설에 속한다.

원매는 자신이 이 책을 장난삼아 엮었고,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 혹은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소일거리로 지은 것이며 성정 도야와 정신 분발을 위해 지은 것이라며 『자불어』 서문에 이 책의 창작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지 귀신 요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과거제도의 폐단이나 혼란하고 어두운 당시 사회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인 「평양 현령」은 악독하고 잔인한 성격을 가진 평양 현령 주삭의 이야기이다. 주삭은 관아에 두꺼운 족쇄와 거대한 곤장을 별도로 만들어 두고 여성과 관련된 사건이면 무조건 간통으로 몰고 가서 심문을 일삼았다. 기녀들에게는 더없이 잔혹한 형벌을 내려 고통을 주었다.

이렇게 잔혹했음에도 주삭은 임기가 차자 승진을 하여 다른 곳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부임길에 가족과 함께 투숙한 여관의 2층 객실이 잠긴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주인에게 물으니, 2층에는 귀신이 나타나 열어놓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주삭은 오만하게 코웃음치며 자신을 말리는 가족들을 뿌리치고는 혼자 호기롭게 2층 객실방에 검을 차고앉아 귀신을 기다렸다.


삼경이 되자 수염이 하얗고 붉은 모자를 쓴 노인이 나타나 주삭에게 공손히 읍을 하며 자신을 토지신이라 소개했다. 그러면서 주삭이 요괴를 소멸시키는데 자신이 기꺼이 도움을 주러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귀신이 곧 나타날 것이며 그때 주삭은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고, 자신도 힘껏 돕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주삭은 크게 기뻐하며 감사했고, 곧이어 토지신이 말한 대로 연이어 귀신들이 나타나 주삭에게 다가왔다. 주삭은 그들을 모두 검으로 베었고, 귀신들은 모두 아프다고 울부짖으며 죽었다.

주삭은 귀신들을 모두 죽이고는 기뻐하여 뽐내며 여관 주인을 불렀는데, 여관 주인 가족들이 초를 들고 비춰보니 곳곳에 주삭의 아내와 첩, 자녀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이에 주삭은 본인이 요괴에게 희롱당한 것을 깨닫고 통곡하다가 기절해 죽었다.



이처럼 나쁘게 살아온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권선징악적인 교훈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그냥 귀신과 요괴의 장난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의 혼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빙의한다거나 인간을 보고 반한 요괴가 인간으로 변신해 그 인간과 정을 나누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이야기, 돌림병을 일으키는 귀신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저승사자로부터 구해 되살리는 이야기, 조조와 연관되어 유명한 하후돈 묘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 양무제의 넷째 아들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 등 소재와 이야기가 다양하고 끝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바꿀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사주팔자를 다시 써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인물에 대해서도 나온다. 그러나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책에서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98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벽돌책 임에도 단편들의 모음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소재와 이야기도 새롭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아주 뛰어나다. 그리고 짧은 단편들이고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어 무서운 이야기를 견뎌낼 튼튼한 심장만 가지고 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읽기 적합하다. 아마 손에 든다면 이야기에 매료되어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이제 무서운 옛날 귀신 이야기하면 공동묘지에서 "내 다리 내놔~" 하고 다리 하나로 뒤쫓아 오는 귀신 이야기와는 작별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전설의 고향'에서 봤을 법한 귀신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가득 품은 『청나라 귀신요괴전』이 항상 우리 옆에서 자신을 읽어주기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같이 『청나라 귀신요괴전』을 읽고 청대의 시대 상황이나 생활 모습을 엿보며 가슴 쫄깃한 귀신 요괴 이야기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1권을 끝내고 한없이 수위가 높아진 귀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청나라 귀신요괴전 2』를 시작한다.

우리 함께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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