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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열일곱 살의 에나 유키는 통통한 체형에 공부와 운동은 잘하지 못하지만 유순하고 남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남자 고등학생이다. 에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럭저럭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영위했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교내 카스트 제도 상류층에 있는 이노우에와 앞뒤로 자리가 배치되며 이노우에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고, 매일 이노우에의 부탁을 받고 들어주는 사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시작했다.
이노우에는 자신의 청소 당번이나 간식 구매 등을 에나에게 시켰고, 에나는 착취를 당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자신이 순한 양에서 포효하는 짐승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유머스러운 가벼운 저주를 걸면서 그 상황의 굴욕에서 벗어나곤 했다.
그런 에나는 교내 카스트 제도의 정점에 있는 고고한 왕녀 같은 미소녀 후지모리 유키에를 좋아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이던 어느 날 저녁, 친구들 사이에서 LINE으로 떠돌던 지구 멸망 이야기가 뉴스에서 방송되었다. 미국 CNN 방송에서 지구와 소혹성 충돌을 속보로 전했고 이 소식을 접한 미국 내에서는 폭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영화 같은 이야기에 에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일상의 생활을 이어갔지만, 다음날 밤 그런 사람들의 일상을 깨뜨리는 수상의 기자회견이 방송되었다.
"한 달 뒤, 소혹성이 지구에 충돌합니다."
지구 멸망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세계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일본의 대도시에서도 약탈과 파괴 행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에나가 짝사랑하는 후지모리는 인기 절정의 여성 가수 Loco의 도쿄 돔 라이브에 가고자 부모님 몰래 도쿄행을 감행했고, 에나는 엄마 시즈카의 허락을 받고 지구 멸망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후지모리를 지키기 위해 후지모리의 뒤를 몰래 따라나서는데….
소설은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단편에서 말하는 화자들은 첫 번째 단편의 에나 유키를 중심으로 유키의 엄마인 에나 시즈카, 시즈카의 옛사랑인 메지카라 신지 그리고 인기 절정의 여가수 Loco로 서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Loco 같은 경우는 유키, 신지, 시즈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지구 멸망의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의 마지막 종착점이 되는 인물이다.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지구 멸망의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멸망한다는 지구보다 인간들이 먼저 망가지고 인간들이 이룩한 세상이 무너져간다. 정작 푸른 하늘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너져가는 인간들을 초연하고 평화롭게 내려다본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죄책감과 도덕심과 상식이 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주인공들이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은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메시지를 주고 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들의 삶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우울한 미래를 생각하며 그냥 지구 전체가 리셋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내일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나 목표 없이 무의미하고 지루한 삶을 죽지 못해 살아가거나, 행복한 가정이라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꿈꾸며 노력하지만 평생 가도 이루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삶을 힘들어하기도 했다.
다들 자신들보다 더 행복한 줄 알았다. 그 안에서 자신들만 홀로 쓸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구 멸망을 앞두고 무너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다들 자신들과 비슷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주인공들은 정해진 죽음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 시간이 무섭고 슬프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남아있는 미래를 바라보며 매시간, 매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자신들의 삶의 목표를 이루거나, 무의미했던 자신의 인생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기쁨을 느끼고 삶의 이유를 찾아낸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에서는 깨닫지 못했을 인생의 진리와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되지만 그들은 예정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가수 Loco는 눈부신 환희의 감정으로 생명을 노래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욕망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살며 자신을 몰아세워도, 아무런 목표 없이 허송세월 보내어도, 인생의 정점에 서 있어도, 인생의 바닥을 헤매고 다녀도 결국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은 자신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오직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인생은 결코 혼자이지 않고 조금만 마음을 열고 둘러보면 우리의 삶을 같이 나눌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록 지구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나와 우리라는 존재 자체를 생각하며 삶을 보게 한 따뜻한 이야기였다.
소설은 유쾌한 문체로 시작해서 전개되지만 각 단편의 시점에 따라 점점 무게감을 더해가며 삶에 대한 고찰과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주고 있다.
Loco가 부른 생명의 노래를 상상하며 소설 속 내일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나의 오늘과 내일도.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