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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나'는 에스테피의 사회복지과 공무원으로 인디오 공동체 통합 계획을 추진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며 모범 사례로 꼽힐 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정부로부터 산크리스토발의 녜에 인디오 공동체에 거주하는 3천 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정책을 시행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집과 산크리스토발 사회복지과 과장직을 제의받는다. '나'는 곧장 사랑하는 여인이자 산크리스토발 출신의 마이아에게 달려가 청혼했고, 그녀와 그녀의 아홉 살 난 딸과 함께 에스테피를 떠나 산크리스토발에 정착한다.
지방 소도시의 생활은 아주 예상 가능할 정도로 규칙적이었고, '나'와 마이아는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산크리스토발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그런 단조로운 산크리스토발의 생활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이질적인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엔가 산크리스토발의 거리에 출신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의 무리가 몰려나와 구걸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회복지과 회의록에 의하면 처음 아이들 무리가 구걸한 날이 1994년 10월 15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이들은 아홉 살에서 열세 살 사이로 어느 누구도 그 아이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떻게, 왜 산크리스토발에 모여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외국어처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자기들끼리 대화했다.
아이들은 혼자 돌아다니거나 무더기로 떼를 지어 다니는 일은 결코 없었고, 셋, 넷 아니면 다섯 명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 가끔씩 어떤 아이들이 몇몇 무리를 통솔하기는 했지만 확실한 전체적인 리더는 없었다.
처음엔 구걸을 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엔가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라는 어린아이의 위치를 이용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약탈과 강도 짓과 테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고 그 비난의 화살은 사회복지과, 특히 '나'에게로 향했다.
심지어 그들은 행인들의 금품과 물건을 갈취하는 것을 제지하던 경찰들을 공격해 경찰관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으킨다. 하지만 시장을 포함한 긴급회의단에서 채택한 공식 성명으로 그 경찰관의 사망은 공무 집행 과정에서의 비극적 사고로 처리되었고, 아이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 대처방안을 내놓지 않고 회피하는 사이, 아이들은 산크리스토발에서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만들어가며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 산크리스토발의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고요하고 순수했던 산크리스토발의 아이들은 자신들과 그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알았지만, 그들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들과 어울려 함께 지내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게 위태위태하던 상황은 1995년 1월 7일 다코타 슈퍼마켓 습격 사건으로 완전히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날도 아이들은 평소처럼 오전 일찍 다코타 슈퍼마켓에 나타나 먹을 것을 구걸했다. 그러고는 평소와는 다르게 슈퍼마켓을 떠나지 않고 주차장에 모여 자기들끼리 놀다가 정오가 지나 다시 슈퍼마켓에 들어와 음료수를 훔치려 했다. 이에 경비원은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했고 아이들은 슈퍼마켓에서 쫓겨나 주차장에 있던 다른 아이들과 섞여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주차장에 모인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감시 카메라에 잡힌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은 어느 순간 다 같이 슈퍼마켓 안으로 진입했다. 경비원이 들어오려는 아이들의 앞을 막아섰으나 한꺼번에 밀려드는 아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무리 중 하나를 쫓아다니던 흰 개가 경비원에게 덤벼들어 물었고, 그 순간 아이들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슈퍼마켓에 침입한 아이들은 물건을 파괴하며 놀다가 어느 순간 표정을 바꾸며 슈퍼마켓 안에 있던 어른들을 향한 처참한 살육을 시작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아이들의 문제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들과 모습이 겹쳐지며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사용하고 특정한 리더가 없는 새로운 집단을 형성해 생활함으로써 기존의 현실 속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과 형태를 창조했다. 작가가 '빛의 공화국'이라 표현한 그 아이들의 지하 세계는 인간들의 꿈이 반영된 자유로운 공동체를 향한 이상적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살아간 그 집단이 이상적인 세계인 것일까?
아이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폭력과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고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린 것을 기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작가는 소설 속에서 어른들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넣어 범죄자 취급을 했다지만, 나는 그들은 범죄자가 확실하고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작가가 이상적인 세계인 것처럼 묘사한 아이들의 세계에는 매춘부의 공간이 따로 존재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권리만 난무하고 의무와 책임은 없는 사회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아동보호도 좋지만 보호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하고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보호만 강조하고 그들에게 잘잘못을 가르치지 않으니 이를 악용하는 아이들에 의해 법을 지키는 선량한 피해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촉법소년 제도가 그러할 것이다.
처음 법을 제정했을 당시는 좋은 의도였을지 몰라도 지금 그 법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너무 많아 악법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너무나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일일이 언급할 수 없지만 가장 최근에 발생한 주차장에서 주차되어 있는 차를 아무 이유 없이 파손시킨 여자아이들 사건이나 무인 문구점에서 주위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상습적으로 물건을 훔치며 CCTV를 보며 조롱하듯 춤까지 췄던 아이들의 사건들을 보면 과연 이런 아이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법의 보호만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범법소년들로 아무런 법적 규제를 받지 않고 훈계 처방받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부모들조차도 연락을 받지 않거나 피해액을 흥정하는 등 자신의 아이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미성년자들이 그들을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도리어 자신들이 인권침해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은 사건도 있었다. 10대 후반임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촉법소년이라 주장하며 경찰 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현 우리 사회는 법을 잘 준수하는 일반 시민들만 바보나 피해자가 되어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아이들이 아이들의 순수함을 믿는 어른들을 기만하는 또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사파타 남매는 자신들의 꿈에 사라진 아이들이 나타나 그들과 교감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이를 믿은 사회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나온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의 부모는 아무런 미안함이나 사과 없이 사파타 남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아이들이 장난삼아 한 짓이라고 잘 이해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그 소동을 유야무야 끝낸다.
현대를 살아가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의 유효 나이는 몇 살까지 일까?
순수함과 무지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아이들이 똘똘 뭉쳐 다녔던 것을 아이들이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청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개인으로는 약한 그들의 힘을 무리를 지어 강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소설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세계와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나는 과연 미성숙한 아이들의 논리와 세계를 어른들이 그대로 따라주고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야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아이들을 무조건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이끄는 것 또한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문제가 반영되어 심란함을 많이 느끼며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아닌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같이 읽고 아이들에 관한 문제의식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