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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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3월 말, 소로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월든 호수가 있는 숲속에 들어가 직접 벌목을 하고 나무를 다듬어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주변의 자연을 즐기며 그 작업을 해 나갔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 후 5월 초에는 이웃과의 유대관계를 위해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만들고 있는 집의 골격을 세웠다.

그리고 집 옆면의 판자 대는 작업과 지붕 작업이 끝나자마자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입주를 한다. 그러나 아직 이때까지만 해도 오두막의 사방 벽들은 갈라진 틈이 많고 비바람에 변색된 판자들을 두른 것이어서 겨울을 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미장 공사나 굴뚝 작업도 없이 비바람만 겨우 가리는 정도였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p.121



소로는 자신이 월든으로 간 이유가 삶의 본질에 대면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삶을 최소화해 불필요한 욕심을 버리고 좀 더 신중한 삶을 영위하고자 했다.

그가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의 조그만 오두막에서 지냈다고 해서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은둔자로 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사교모임을 좋아했으며, 친구들과 이웃들이 그의 오두막을 방문하거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현대와 마찬가지로 당시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었고 사람들은 점점 물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소로는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며, 물질이 아닌 자신이 삶의 진정한 주인임을 증명했으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월든에서의 소로의 삶은 끝없는 경쟁과 노동과 물질에 자아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나, 최소의 노동만을 하고 번잡한 물질의 간섭 없이도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검소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을 통해 이 세상에서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는 것은 고행이 아닌 오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자연의 가치를 알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삶을 관철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 자연과 신과 인간이 하나라는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숲속 생활의 첫 번째 해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오후, 소로는 수선 맡긴 구두를 구둣방에서 찾아오려고 마을에 나갔다가 체포되어 구금된다. 흑인 노예를 가축처럼 사고팔도록 허용하는 주 정부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어 주민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책에 같이 수록된 『시민 불복종』에 잘 나와있다.

하지만 소로는 그다음 날 석방되어 수선된 구두를 찾아 숲속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당시 그의 집은 아무런 잠금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가 하루 동안 집을 비웠음에도 아무것도 도둑맞은 물건이 없었다. 그는 남들은 그렇지 못한 공동체 내에서 남들보다 많은 재물을 축적하고 산다면 반드시 도둑과 강도가 발생할 것이라며 검소하게 산다면 그러한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로는 그가 생각한 진정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관철해 나간 실천가였다. 그는 자연과 공존하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는 완전한 개인적인 삶을 꿈꾸고 실천했다.

우리는 『월든』에서 소로의 삶을 통해 진정한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성공하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앞만 보고 달리며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것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방법이라는 사회 통념 안에서.

하지만 우리는 『월든』에서 간소하며 단순하고 평화로운 자연주의적 삶을 보며 우리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좀 더 충실하게 우리의 삶 자체를 존중하며 우리의 삶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 불복종』에서 소로는 인간은 국민이기 이전에 개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의 다수가 지속해서 정부에게 통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들이 정의롭다거나 소수에게 공정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물리적으로 힘이 세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먼저 인간으로 존재해야지 먼저 국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개인보다 집단, 결사체 즉 전체를 중시하는 것은 개인이 민족이나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 역사 속에서 독일의 나치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가 일으킨 침략행위를 통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비극을 잘 알고 있다.


소로는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이고 더 나아가 아예 통치하지 않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무정부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발달하고 현대로 오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국가도 커졌다. 그러나 국가가 커졌다고 해서 거기에 속한 국민들이 행복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지배층인 국가와 피지배층인 개인들은 자유의 허용범위를 두고 계속되는 줄다리기를 하며 충돌해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개인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게 하면서 국가라는 공동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정부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로의 주장처럼 정부가 권력을 너무 많이 가지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이 전부 정의로운가.


소로는 불복종을 주장하며 정부가 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쓰고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국가나 정부에 좌우되는 삶을 살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주체적이고 강인한 삶을 살게 될 때 내면의 힘은 강해질 것이다. 그 내면의 힘이 강해야 시민 불복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정리하여 우리나라가 개인이 억압받지 않는 이상적 국가로 나아가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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