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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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은 아메미야 사토미라는 인물이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겪었던 일을 작가에게 전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메미야는 5학년 때 전학 온 남자아이 네코와 옆자리에 앉게 되며 자연스럽게 전학생인 네코를 돌보게 되었는데, 전학생에 대한 반 친구들의 관심이 꺼져버린 어느 날 네코의 기묘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쓰야 때 시신 머리맡에 차려놓는 사잣밥처럼 급식으로 나온 밥그릇의 밥에 젓가락을 똑바로 꽂은 뒤 양손을 모으고 뭔가를 비는 행동이었다. 특히 네코가 꽂았던 젓가락이 급식용 나무젓가락이 아니라 손수 만든 듯한 대나무 젓가락이었던 것에 한층 더 놀랐다.

반복되는 네코의 행동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기묘한 행동에 대해 물었더니, 네코는 비밀 엄수의 철저한 약속을 받아내고는 젓가락님에 대한 의식을 이야기해 준다. 얼마 후 네코에게 젓가락님한테서 기별이 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네코의 왼팔에 물고기 모양 비슷한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메미야도 자신의 오빠의 '처리'를 부탁하며 네코보다 늦게 젓가락님 의식을 시작하는데….


두 번째 이야기 쉐시쓰의 <산호 뼈>는 이야기를 읽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자신의 팔자의 무게가 6량 1첸이어서 '류량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샤오청은 친구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젓가락 한 짝을 몰래 바꿔치기하여 들키지 않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젓가락 교환 마법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다들 비슷한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몰래 바꾸는 게 뭐가 어렵냐며, 그렇게 해서 사랑이 이뤄진다면 세상에 실연당하는 사람은 없겠다는 말을 한다. 이에 친구들은 떼로 몰려와 따지며 그렇게 쉽다면 한번 해보라는 말을 하고, 샤오청은 내기를 하며 같은 반 남자아이 한 명을 고른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는 젓가락에 체인을 걸어 목에 걸고 다녀서 젓가락을 바꿔치기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젓가락은 선명한 붉은색에 소용돌이 물결무늬가 있고 젓가락 끝은 은으로 상감이 되어 있는 아름답고 화려한 산호로 만든 젓가락이었다. 샤오청이 젓가락을 안 들고 왔으니 젓가락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하지만 그 아이는 신령이 깃든 젓가락이라며 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의 젓가락을 훔치기 위해 샤오청은 계속 그 아이의 주위를 맴돌며 친하게 지내는데….


예터우쯔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에서 궁팅충과 린리나, 리이즈, 예쓰제는 인터넷 채널 운영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 운영이 어려워지자 구독자 수와 광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거짓 도시 전설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신냥탄의 귀신 신부 이야기를 기초로 다른 세부 사항을 더해 '귀신 신부의 젓가락 저주'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 괴담은 복제하기 쉽고, 공포스럽고, 누구나 참여 가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귀신 신부의 저주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퍼졌고 인터넷에서 핫이슈로 떠올랐다. 그렇게 두 달여간 인터넷이 한창 들끓을 무렵 아충(궁팅충)은 자신의 채널 '시계태엽 레몬'에서 '귀신 신부의 젓가락 저주'의 진실을 터뜨린다. 그렇게 그들은 공격적으로 광고와 구독자 수를 늘렸고, 한 달 후 아충은 다시 한번 더 귀신 신부의 도시 전설이 거짓이고 미신이라는 폭로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경찰은 죽음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그의 죽음은 미제 사건으로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그의 연인이었던 린리나를 범인이라고 속단하고 SNS와 메시지를 통해 그녀에게 악담과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리나는 어느 날 '귀신 신부'라는 인물로부터 스튜디오에서 같이 근무했던 친구들 중의 한 명이 아충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메시지를 받는데…….


샤오샹선의 <악어 꿈>에서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꿈꾸는 듯한 어떤 여자의 고백과 현재의 시간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젓가락 신선 의식에 참가한 아들을 위해 저주를 깰 방법을 찾기 위해 B 초등학교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장원융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꿈꾸는 듯이 고백하는 여자는 매춘부로 보이며, 매번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고향을 먹어치운 악어 이야기와 민며느리로 들어갔던 자신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을 단편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남자의 팔뚝 위의 붉은 모반을 보고는 팔뚝에 붉은 물고기 모양 모반이 있는 사람을 본 적 있는지 묻는다.

현실에서는 타이완에서 제일 유명한 요괴 추리 소설가의 '젓가락의 주술적 성격'에 대한 강연이 끝난 후 작가에게 주간지 기자 장원융이 이야기를 걸어온다. 그는 강연의 주제 '젓가락에 관련된 괴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B 초등학교가 그 괴담에 나오는 학교랑 평면도가 똑같음을 이야기하며, 지금은 페이추이 댐으로 인해 물에 잠긴 B 초등학교의 비밀을 같이 조사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작가는 그와 헤어지며 그가 준 명함에 적힌 그의 이름을 보며 운명에 사로잡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 찬호께이의 <해시노어>에서는 <악어 꿈>에서 송신을 위해 잠시 나왔던 장원융의 아들 장핀천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핀천은 이전 홍콩에서의 교통사고 때 도움을 받았던 아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젓가락 신선' 의식에서도 살아남아 소원을 이룬 뒤 홍콩을 다시 방문한다. 그가 아버지 장원융의 추궁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젓가락 신선' 의식을 계속했던 이유는 지난해 그가 다니는 대학에서 진행했던 교류단에 참여해 홍콩에 머무르며 만났던 여학생 샤오쿠이를 위해서였는데….



이 책은 타이완, 일본, 홍콩 3국을 대표하는 장르문학 대가들의 괴담 경연을 모은 책이다.

이야기는 5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이야기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과 괴담을 매개로 공통점이 있고, 읽다 보면 이야기들이 전부 연관이 되어 마치 한 작가가 이야기의 속편들을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관성이 있으며 이야기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진행된다.

하지만 문체 면에서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면이 있어서 다른 작가라는 것은 확실하게 구분되며 작품들마다 개성이 느껴진다.


오컬트 마니아로서 처음 네 편은 호러가 적당히 가미된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괴담의 초자연적인 현상보다는 젓가락 괴담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의 행위와 의지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벌어진 사건 또한 젓가락 괴담을 이용해 인간이 벌인 일 위주로 이야기들이 진행되니 젓가락 괴담의 괴기스러움보다는 드러나서는 안될 비밀과 그것을 감추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많이 그려져 그런 듯하다.


<젓가락님>은 읽고 역시 미쓰다 신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듯 괴담을 이야기하며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하고 있음에도 결국에는 인간의 의지가 들어간 것 같은 마무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야기는 대체 의식을 끝마쳤다는 건가 아닌가, 인간의 의지였는가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모호함을 남기고 있다.


<산호 뼈> 같은 경우에는 읽으면서 공포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남자 주인공의 운명에 그저 가슴 아팠다.

우는 샤오청을 달래기 위해 부드러운 스킨십을 해주는 장면에서 그냥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거부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거부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엔 벗어날 수 없었던 태어날 때부터 지워진 무거운 운명의 무게를 담담히 받아들인 어린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그냥 먹먹했다.

잊지 않고 지니고 있던 박하사탕에는 눈물이 터졌다. 그 긴 시간 박하사탕을 가지고 다니며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을까.


내가 제일 재미있게 봤던 작품은 바로 다섯 번째 찬호께이의 작품 <해시노어>이다.

고대 중국 설화와 역사와 신명의 개념을 SF와 적절히 잘 연결하고 풀이하여 번뜩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 잘 적응한 신명의 모습은 취향 저격이었다. 마치 내가 아주 좋아하는 미드 「수퍼내추럴」에 나오는 현대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신들과 천사들의 모습이랄까. 그러나 그것과는 또 다른게 이 소설에서는 신명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

앞의 이야기들이 어둡고 침체된 분위기라면 이 소설로 완전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 소설은 앞에 나왔던 이야기들을 깔끔하고 기분 좋게 총정리해 주면서 책 읽기를 개운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덮으며 <해시노어>는 주인공들의 또 다른 모험을 그리는 속편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쾌 : 젓가락 괴담 경연』은 공포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원하는 마니아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덤으로 찬호께이의 코믹스러움과 위트와 재치도 볼 수 있다. 다른 어느 소설보다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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