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을 찾아서
하라다 마하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0월
평점 :
세계적 천재 지휘자 가지가야 소이치로와 명문 오케스트라 일본국제교향악단의 수석 첼리스트인 토키에의 딸인 와온은 어릴 때 첼로를 했지만 그 첼로 레슨과 연습으로 인해 친구도 없는 외톨이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어느 순간 외로움을 느낀 와온은 첼로와 음악에서 멀어져 갔고 어머니는 그런 와온이 첼로 레슨을 계속 받도록 노력했다. 그런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와온은 첼로를 접었고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와온에게 첼로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안에는 점점 적막이 찾아왔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아버지는 방관자였다.
적막한 집안 분위기가 싫었던 와온이 떼를 써서 카나리아를 기르기 시작했지만 1년 정도 길렀을 때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도 갑자기 아버지와 이혼한 뒤 와온을 아버지 곁에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아버지는 오케스트라 일로 항상 바빴기 때문에 와온은 어머니가 떠난 열한 살부터 거의 혼자 지내왔다. 그리고 곧 있으면 아버지는 보스턴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보스턴으로 떠나고 완전히 와온 혼자 일본에서 지내야 된다.
아버지 소이치로의 일본국제교향악단 전임지휘자로서의 고별 연주회가 끝난 다음날 와온은 하교 후 친구들이랑 놀다 보니 평소보다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어차피 아버지는 평소처럼 늦게 돌아오실 테니 집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집 가까이 다다랐을 때 집 식당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와온이 조심스레 집안으로 들어간 순간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 CD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는 곳에서는 낯선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음악에 몰두하며 연주를 듣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수상한 사람이라는 판단에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당황해하는 와온과 눈이 마주친 여자는 거침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가워, 가지가야 와온 양. ……나는 네 엄마야."
소설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짜증 나는 상황들이 많이 겹쳐졌다. 자신의 음악 세계를 추구하면서 딸에게 무관심한 아버지, 딸의 곁을 떠나면서도 아무런 설득과 이해 없이 그냥 떠나버린 어머니, 남의 삶에 무작정 쳐들어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마유미를 보면서 화가 났다.
당사자 와온에게는 아무런 말이 없었기 때문에 와온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가 버린 카나리아 토와와 떠나버린 어머니와 무관심한 아버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아버지 옆에 남겨두고 떠난 어머니에게 처음에 느꼈을 배신감. 와온은 자신을 복수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손이 많이 가는 여자아이를 남겨두고 떠남으로써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복수.
그렇게 가족에 대해, 삶에 대해 아무런 목표와 기대 없이 조용히 살아가던 와온의 삶에 갑자기 나타난 마유미라는 존재. 소설을 읽다가 처음에는 뜬금없고 무대뽀인 그녀의 존재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유미는 방황하던 와온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주었고 와온이 지닌 가슴의 불꽃을 찾아내 다시 타오르게 하여 와온이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게 해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자신의 우상이었던 와온의 어머니 토키에의 자리에 꼭 마유미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굳이 어머니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와온의 멘토로 옆에 있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와온이 열여섯 살이 되는 때에 어머니 토키에에 대한 오해와 마유미에 대한 오해가 한꺼번에 풀렸다.
한없이 밝은 것만 같던 마유미도 원래부터 밝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삶에 가해진 장난 같은 운명에 굴하지 않고자 무너지지 않고자 억지로 자신을 추스르고 다그치며 밝게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 뒷부분 마유미에게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이 나면서부터 소설을 읽는 내내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와온과 마유미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전하며 음악을 통해 그 고난을 이겨내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미래로 향하는 모습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와온이 늘 바라왔던 가족을 이어줄 그 무언가는 바로 음악이었던 것이다. 와온과 아버지의 소통의 단절은 음악으로 점점 채워지고 이어져 간다. 그들이 그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와온은 자신의 진심을 음악을 통해 어머니와 마유미에게 전할 수 있었다.
음악이란 물론 귀로 듣는 것이지만 귀로 들을 수 없다면 분명 마음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울리고 마음에 와닿는 연주. 그 진실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은 음악을 마음에 새기며 힘든 마음을 치유를 한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시간과 공간과 국경을 넘어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가 불행을 겪을 수 있다. 그럴 때 누구나 약해지며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같이 느낀다.
그러나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질 때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결코 사람은 혼자이지 않다. 내가 스스로 만든 마음의 빗장을 열기만 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힘든 일을 겪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음악을 통해 이겨내고 치유받아 내일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디라고 격려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극에 치닫는 갈등 없이도 충분히 소설이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극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초반에 아버지 소이치로와 와온과의 약간의 부녀 갈등은 있었지만.
와온은 자신의 '영원'을 찾았을까? 그리고 자신만의 새장을 벗어나 우는 법을 배웠을까?
마음을 흠뻑 적시는 음악성장소설이었다.
빨리 벚꽃 피는 봄이 와서 가슴을 저미는 'G 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며 그때 다시 이 소설의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다.
나도 나만의 '영원'을 찾고 싶다.
기대했던 것처럼 정말 실컷 울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