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이 바꾼 세계사 - 인류와 바이러스의 끝없는 공방
나이토 히로후미 지음, 서수지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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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이르러 우리나라는 코로나19가 만연하기 이전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 등 많은 유행성 감염병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이겨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며 벌써 2년째 장기화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고, 개발된 백신조차 부작용 사례가 많고 효과 또한 기간이 짧아 부스터샷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백신을 맞았다 하더라도 돌파감염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전파를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아 감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 시점에서 『감염병이 바꾼 세계사』는 흥미로운 소재의 이야기인 것 같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역병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인간이 역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추상적인 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세계 종교의 탄생에서부터 현재의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관통하여 감염병에 대한 인류의 처절한 생존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역병으로 인해 생긴 제도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인도를 점령한 새로운 지배자들이 인도 내에서 발생한 역병이 두려워 부족 간 격리를 시도하면서 카스트 제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인더스 문명의 주역은 드라비다족이었는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아리아인들이 이동하여 인더스 문명을 정복하였다. 주민들이 문명을 꽃피우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를 버리고 갑자기 떠난 이유가 수수께끼로 남아 역사학자들이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아리아인들이 들여온 역병으로 인해 드라비다인들의 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리아인들은 이들 지역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리아인들 역시 토착 감염병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이렇게 역병에 시달리던 아리아인들이 부족 간의 접촉을 차단해 역병을 방지하는 부족 격리라는 발상에 이르러 오늘날의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제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세 시대의 문을 연 게르만족의 대이동에서도 감염병이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당시 게르만족은 흑해 연안에 거주하며 수렵과 목축을 하며 살았다. 그런 그들이 훈족을 피해 로마 제국을 침입하는 민족 대이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훈족이 왜 서쪽으로 진격했을까?

미국의 세균학자 한스 진저는 자신의 연구에서 훈족의 이동의 원인을 탄저병의 유행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훈족이 방목하던 가축이 어디선가 탄저병을 옮아와 폐사했고, 그 가축과 접촉한 훈족마저 탄저병에 감염돼 사망자가 속출하자 훈족은 미지의 역병이 두려워 탄저병이 없는 지역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훈족의 이동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원인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476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고 중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세 시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감염병 페스트.

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아시아 내륙의 페스트가 유럽에 전파되어 오랜 기간 상상을 초월한 피해를 보게 된다. 이 병은 일명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며 이 병으로 인해 당시 유럽의 인구가 5분의 1로 줄어들었고, 백년전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페스트는 이것보다 훨씬 전에 역사에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러시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출토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인골에서 페스트를 앓은 흔적을 찾았다는 고고학계의 조사 보고가 있다. 6세기에는 비잔티움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대 로마 제국 부흥 정책을 좌절시켰다.

541년 비잔티움 제국을 덮친 페스트는 애초에 이집트에서 발생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를 덮친 이 페스트는 당시 황제 이름을 따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 불린다.


인간이 확실하게 정복한 대표적 바이러스인 천연두 바이러스.

천연두는 신대륙의 인디오를 괴멸시킨 파괴적인 역병이었다. 이 병은 17세기까지는 가벼운 역병으로 취급되었으나 17세기 말부터는 독성이 강해져 치사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이 천연두로 인해 스튜어트 왕가는 대가 끊기게 된다. 이로써 스튜어트 왕조는 끝이 나고 하노버 왕조가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처음 영국에서 천연두 퇴치법으로 시행된 인두법은 인도와 중국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시행되던 방법이었다. 영국에서 18세기 천연두가 유행하자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주재 영국 대사 부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는 자신이 효과를 보았던 인두법을 영국에 소개했고 제임스 1세는 인두법을 시행하게 했다. 그러나 인두법은 한계가 있어 사망자가 발생했고, 천연두 확산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두가 발생한 지역의 의사였던 제너가 우두를 한 번 앓은 환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우두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실험에 성공, 종두법을 발표한다.



현대에 이르러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위생에 대한 인식과 수준도 높아져 예전보다는 감염병의 위협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부터 미지의 새로운 감염병으로 공포에 떨기 시작했으니 바로 에이즈 AIDS의 출현이다. 에이즈에 걸리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파괴되어 건강할 때라면 걸려도 문제가 없는 병에 걸렸을 때 상태가 악화되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에이즈의 원흉은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HIV로 성관계에 의해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감염된다. 이 외에 HIV에 오염된 주삿바늘이나 주사기를 여러 사람이 돌려쓰는 과정에서 감염되거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모자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HIV와 에이즈는 1981년 미국에서 최초로 보고되었는데, 실제 그 이전부터 HIV 감염자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HIV를 빼닮은 감염체를 지닌 침팬지를 사냥해 먹는 부족이 침팬지를 사냥하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최근 우리가 기억하는 2003년의 사스 SARS 유행은 중국 광동성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 11월 광동성의 한 젊은 남성이 발병해 그 지역에서 감염이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사스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가 홍콩 호텔에 숙박하며 그 호텔에 투숙했던 외국인들을 감염시켜 세계 각국으로 병을 전파시켰다.

사스는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병원체로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 밀폐 공간, 밀집 공간, 밀접 접촉에 의해 감염되기 쉽고 감염자가 만진 물건을 접촉했을 때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19와 닮아있다.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로 세계적으로 공황에 빠졌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병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도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중국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눈 깜짝할 사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이로 인해 전 세계는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내놓으며 국경을 폐쇄하고 경제는 올스톱되었으며,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 등 인류 역사에 있어 침울한 암흑기에 놓여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생활의 모습도 많이 바꿔놓았다. 감염을 우려한 비대면을 강조하여 인터넷 플랫폼 사업이 기업 경영의 주요 방식으로 자리하고, 근로자들의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이들의 소속감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 기존의 불필요한 업무에서 해방되어 남는 시간의 효율적 사용으로 인해 새로운 인적자원이나 아이디어의 탄생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혁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멈추어선 현재를 반영하여 도태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인류 역사에 있어 크고 작은 사건과 감염병과의 인과관계를 파헤쳐 인류가 감염병의 지배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고, 열어가야 할지 보여주고 있다.

인류는 발전을 거듭해 미지의 우주까지 개척하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이것은 어쩌면 인류의 발전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미생물에 의한 인류의 존폐를 결정지을 국면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인류의 지혜와 생존을 시험하는 국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역사의 여러 사례를 통찰하여 지혜를 얻고 지금의 사태를 잘 극복하여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 『감염병이 바꾼 세계사』는 선례를 보여주고 지혜와 지식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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