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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평점 :
『길가메시 서사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 최초의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이다.
길가메시는 어머니가 야생 암소의 여신인 닌순으로 반신이며 우루크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이다. 책에서는 "삼분의 일은 신이요, 삼분의 일은 인간이었네." (p.27)라고 되어 있는데 그럼 나머지 삼분의 일은 무엇이란 말이지?
아무튼 우루크에 매우 강력한 성채를 건설했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았던 지혜로운 인물로 우뚝 섰던 길가메시는 처음부터 찬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길가메시는 우루크 성벽을 쌓으며 가혹할 만큼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여성들에게는 무절제한 욕망을 발산하며 초야권을 사용하여 성학대를 저지르는 등 우루크 백성들에게 압제를 가한다. 이에 백성들은 절망하여 신들에게 하소연했고, 신들은 길가메시에 대적할 야생 인간 엔키두를 창조하게 된다.
아루루 여신은 흙으로 빚어 엔키두를 창조한 뒤 야생동물에 의해 길러지고 생활하게 한다. 그러나 매춘부 샴하트와 엿새 낮과 이레 밤 동안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그의 야성은 사라지게 되었고, 짐승들은 더 이상 엔키두를 친구로 여기지 않고 그를 멀리한다. 엔키두 자신도 일주일 전과는 본인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기운이 빠졌고 전처럼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인간으로서의 이성과 넓은 이해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샴하트는 짐승과 같았던 야생 인간 엔키두를 성생활을 통해 문명으로 이끈다. 샴하트의 안내로 길을 떠난 엔키두는 목동들이 머무는 곳에 도착해 목동들을 위해 늑대를 물리치고 사자를 쫓아 버리는 등 목동들의 파수꾼이 되어 그들과 함께 지낸다. 어느 날 결혼식 초대를 받고 급히 가던 사내에게서 길가메시의 초야권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느끼며 우루크로 향한다.
엔키두가 우루크에 도착하자 엔키두에게로 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엔키두가 길가메시의 적수가 될 수 있음을 찬양한다. 길가메시는 초야권을 행사하러 혼사를 치르는 집에 가려고 나타났고 엔키두가 이를 막으며 둘은 싸움을 벌인다.
길가메시는 한 발을 땅에 딛고 무릎을 꿇게 되는데 무릎을 꿇는 순간 신기하게도 가슴속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싸움을 끝낸다. 싸움이 끝난 뒤 엔키두는 길가메시의 우월성을 인정했고, 길가메시는 강한 엔키두를 보고 자신의 꿈이 알려준 것처럼 강한 동지이자 구원자이자 친구가 나타났음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 끌어안고 화해하며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불멸의 명성과 영광을 얻기 위해 삼나무 숲 원정 계획을 세우고 숲을 지키는 훔바바를 죽이러 길을 떠난다. 엔릴의 명으로 삼나무 숲을 지키고 있던 훔바바는 길가메시와 엔키두를 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닌순의 간구에 태양신 샤마쉬가 길가메시를 돕자 크게 당황하고 목숨이 위태로움을 느낀다. 이에 울면서 간절하게 길가메시에게 살려달라고 빌지만 엔키두는 차갑게 그를 죽이자고 말한다. 마음이 흔들리던 길가메시는 훔바바를 죽이라는 엔키두의 말을 듣고 검을 빼들어 훔바바를 죽인 뒤 우루크로 돌아온다.
한편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쉬타르는 훔바바를 쓰러뜨린 자신감까지 더해진 당당하고 멋진 길가메시의 모습에 반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며 그를 유혹한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여러 이유를 대면서 이쉬타르를 조롱하고 면박을 주며 구애를 거절한다.
이에 분노한 이쉬타르는 천상으로 달려가 아버지 아누에게 부탁해 하늘 황소를 달라고 한다. 아누는 이쉬타르를 말렸지만 그녀는 분노해 말을 듣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하늘 황소를 그녀의 손에 쥐여준다.
이쉬타르는 하늘 황소를 이끌고 우루크에 나타났고, 하늘 황소가 나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고 우루크는 피해를 입었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도움으로 하늘 황소를 무찌르고 심장을 도려내 태양신 샤마쉬 앞에 바친다.
이 모습을 보며 비통해하는 이쉬타르에게 엔키두는 하늘 황소 어깨를 찢어 내던지며 그녀를 모욕한다.
엔키두는 꿈에서 아누, 엔릴, 에아, 샤마쉬 등 천상의 신들이 회합하여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하늘의 황소를 죽이고, 훔바바를 죽인 것에 대한 벌로 둘 중 한 명을 죽게 하자는 것을 듣는다. 엔릴은 길가메시가 아닌 엔키두가 죽게 하자고 이야기한다. 엔키두는 또다시 꿈을 꾸고 거기에서 저승으로 끌려가 저승 환상을 본 뒤 앓아누웠고 병세가 깊어져 신이 자신을 저버렸음을 한탄하며 죽는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다. 그리고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영생을 얻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데…….
길가메시는 무려 126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성벽을 건설하고 신전을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길가메시는 위대한 왕이자 영웅이었고 영생을 바랐으나 결국 영생은 얻을 수 없었던 필멸의 존재였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했지만 길가메시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남아 그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길가메시를 잊지 않고 그의 일생을 신비로운 모험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최초의 고대 서사시인 것처럼 주인공인 길가메시는 세계 최초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용기, 끈기, 도전, 고난에 굴욕하지 않는 정신, 고결함 등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이 지녀야 할 덕목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들의 시초와 본보기가 길가메시가 아니었을까.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대홍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나 헤라클레스, 아이네아스 등 많은 신화들의 영웅 이야기를 보면 『길가메시 서사시』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들은 길가메시에 대적할 엔키두를 창조하고는 야생에서 생활하게 한다. 아마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도 포악하며 제멋대로였던 길가메시를 보며 엔키두는 자연에서 무언가 배우기를 바라며 짐승들과 살게 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신들은 서로 협력하다가도 때로는 경쟁했고 사람들을 도와주다가도 재앙을 일으켰다. 신들은 길가메시를 돕기도 하지만 시련을 안겨주어 길가메시가 기쁨과 분노와 좌절이 엇갈리는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리고 헤쳐나가게 한다.
길가메시는 결국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지친 몸으로 우루크에 돌아오지만 결코 빈손으로 모험을 마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긴 모험을 통해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용기와 지혜와 통찰력을 얻게 된다.
그의 탐험은 실패로 끝나지만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고대 원문을 복원하여 원문의 형식을 그대로 드러내 마치 점토판에 쓰인 이야기를 지금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점토판의 공백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들이 적혀 있어 읽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다. 그리고 시적인 요소를 강조해 옮김으로써 마치 노래를 읊조리듯 쉽고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최근 개봉된 마블의 <이터널스> 영화에 나오는 길가메시를 우리나라 배우 마동석이 연기함으로써 영화나 길가메시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현대에 각색된 길가메시를 만나기 전에 본연의 길가메시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길가메시 이야기를 기록했을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의 정서와 느낌이 물씬 느껴지며 노래처럼 읽히는 이 책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