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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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해지지 않게 나름 치열하게 살아오며 내 자리에서 잘 해왔다고 생각하고 어느 순간 뒤돌아봤더니 내게 남은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내 삶은 그저 누구나 다 사는 평범하다 못해 눈에 띄지 않는 삶이었고, 나의 이름은 지워져 누구 아내, 누구 엄마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오롯이 날 위해 살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 대한민국의 아니 전 세계의 엄마들은 거의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나도 꿈 많은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그 꿈은 언제 사라졌을까, 나는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라는 여러 가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이 『완전한 이름』이라는 책을 만났다. 정말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만난 이 책을 보며 지친 삶에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권근영 작가가 미술담당 기자를 하며 알게 된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과 삶의 날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자라는 이름만으로 폄훼되고 무시당하거나 잊혀졌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여인들은 어땠을까?

100여 년 전 스코틀랜드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외세의 억압에 시달리던 한국에 와서 당시 한국의 풍경과 인물에 대해, 특히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는 여성과 여자 어린이에 대한 연민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가장 행복한 결혼식 날의 한국 신부를 보고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고 평했다. 신부는 결혼식 날 마치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눈 감은 채 온종일 그녀에게 쏟아지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신랑을 기다려야 했다.

키스는 여성의 예리한 시선으로 이국의 풍속을 화폭에 담으며, 여인들의 삶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색안경을 끼지 않고 올바르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연히 발견된 그녀의 작품을 통해 오래전 나라를 잃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 특히 여성들의 삶이 우리에게 가감 없이 전해지게 되었다.



독일에 사는 노은 화가의 <빨간 동물>은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카프카의 「변신」과 함께 실렸다.

파독 간호사로 갔지만 실제 2년 동안만 근무했고 그 후 병원의 주선으로 대학에 진학하며 그림에 매진하여 함부르크 국립조형미술대학 교수가 된다. 그 후 불탄 함부르크 알토나 성요한니스 교회의 유리 조형물 복원작업에 참여하였고, 2019년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이 노은 화가의 영구 전시관을 개관하는 등 미술가로서의 큰 족적을 남기게 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파독 간호사였다는 것을 소개한다. 마치 그것이 그녀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 마냥.



마네 동생의 부인이며 인상파 화가이기도 한 베르트 모리조는 그녀의 뛰어난 예술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마네의 「발코니」에 그려진 모습만 확인되며 책을 통틀어 인상파 화가인 그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모리조는 꾸준한 작품 활동에도 남들이 하찮게 여겼던 여인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기에 비주류 인상파 내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활동과 결과에도 불구하고 '무직'으로 세상과 작별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 버네사 벨은 생활의 예술가였다. 부양가족을 돌보는 것과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그녀는 큰아들을 스페인 내전으로 잃고 뒤이어 동생 버지니아 울프도 잃지만 꿋꿋하게 삶을 살며 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리고 그녀는 후대에 자신의 이름 버네사 벨로 살아남았다.


아버지의 작품으로 오해받거나 한 수 아래 기량의 남편 이름에 가려졌던 유딧 레이스터르.

성폭력의 피해자였음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했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역시 생전에는 성공한 예술가였지만 사후에는 아버지 오라치오의 작품으로 오인받아 이탈리아 바로크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졌었다.

그 외에 이름을 찾아가는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과 이야기가 이 『완전한 이름』에 녹아있다.



나는 여자라고 해서 특혜를 바라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똑같이 노력하여 남성과 똑같거나 더 나은 성과를 이룩했음에도 그 노력과 성과가 폄훼되는 것은 더더욱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의 딸,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자 노력했던 그들. 그러나 시대는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들보다 못한 남자들의 이름 밑에 무명이나 조력자로 남기를 요구했다.

여성이 많은 기회를 갖지 못했던 시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성과를 이룩한 여성 미술가들.

남자 못지않게 노력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그들에게 이제는 그들의 이름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노력에 합당한 자부심을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다. "완전한 이름"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고 역사가 한때 부정했었던 여성 미술가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과 인생을 통해 현실에서 지워진 오롯한 나의 삶과 이름을 생각하고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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