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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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과학자들은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그들의 과업을 이룩했을 것이다. 그 노력과 시행착오가 없이 한 번에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시행착오를 '흑역사', '삽질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대신하여 놓으니 넘사벽의 위대한 존재가 왠지 친근한 인간미를 가지며 다가오는 느낌이다.


사실 당시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에 이르거나 인정받지 못한 연구 결과가 후학들의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거나, 시대를 너무나도 일찍 앞선 획기적 연구로 당대에는 관심을 끌기는커녕 푸대접을 받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인정과 주목과 찬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시행착오를 겪은 과학자들을 천문학, 생물학, 수학, 화학, 물리학의 다섯 분야별로 모아 소개하고 있다.


1935년 영국 왕립 천문학회에서 인도 출신의 천문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인 '상대성이론적 축퇴'를 발표했다. 그는 스스로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해냈다고 뿌듯해했으나 발표의 끝에 그가 존경하는 당시 천문학계를 이끌고 있던 물리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이 찬드라세카르의 발표는 터무니없는 것이며 '상대성이론적 축퇴' 따위는 없다며 그의 발표는 헛소리라고 주장했다.

찬드라세카르는 임계질량을 넘는 항성은 필연적으로 복사 에너지 방출과 수축을 계속하다가 반지름이 수천 킬로미터가 될 때까지 작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중력이 어떤 복사 에너지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커질 것이므로 이 항성은 마침내 평온한 상태가 된다고 했는데 에딩턴은 그런 일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항성이 그처럼 멍청하고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막아줄 자연법칙이 반드시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찬드라세카르가 주장한 항성의 결말이 '블랙홀'이라 불리며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 일이 있은 후 찬드라세카르는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항성의 진화 문제를 떠나 다른 분야를 연구했고 그것은 찬드라세카르에게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평생 습관적으로 즐기는 기분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해 도전하며 계속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었고, 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천문학 분야에서는 에딩턴의 권위적인 행동 때문에 항성 진화에 관한 연구가 20~30년 늦어졌다고 평가된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조르주 퀴비에는 생물학계의 독재자로 불리며 진화론을 철저히 배격했다. 생물학계는 퀴비에가 확립한 비교해부학 덕분에 생물학 연구의 지평이 넓어지고 기초가 단단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비에는 비교해부학이 제공한 생물 진화의 증거를 무시하며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모든 생물도 창조했으며 그 이후에 생물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변화되지 않는다'라는 종의 불변을 주장하였다.

또한 퀴비에는 화석을 깊이 연구하여 지층이 형성된 시대에 따라 발견되는 생물화석이 다름을 발견했음에도 눈과 귀를 닫아 버리고 종의 불변을 지지했다.

결국 진화론의 모든 증거가 퀴비에의 손에 있었음에도 그는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성공을 거부했다.

진화론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주장하기에 그는 너무나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오일러는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고등수학 범주에 들어가는 내용까지 암산이 가능한 수학 영웅이었다. 그만큼 그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었고, 그도 인간이었기에 그 무수한 노력 중에서 실수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무한급수의 제논의 역설을 반박할 때 범한 오류였는데, 그것은 무한급수가 무한히 많은 항으로 구성되어 있어 유한한 수의 항을 가진 다항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는 다른 수학자들을 자극하여 빛나는 수학적 성과를 이끌어낸다.

​또 다른 하나는 방진에 관한 것이었는데, 오랜 연구 끝에 오일러는 행과 열이 (4K+2)가 아닌 3, 4, 5, 7, 8, 9 일 때만 해답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그 가설은 170년이 지나 인도의 학자들에 의해 뒤집혔고, 어니스트 틸든 파커는 10×10 방진이 존재함을 밝힌다.


1909년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하여 그것을 공업화하여 천연 질소 비료에 의존하는 것을 탈피해 농업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하버는 맹목적 애국심으로 군수공업에 매진했다. 독가스를 연구 개발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전쟁 중 독가스로 사망한 숫자는 엄청났고 1918년 전쟁이 끝나자 하버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비난을 받으며 오랫동안 숨어 살아야 했고, 그의 아내는 남편에 항의하며 자살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1919년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은 191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하버라는 발표를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항의하고 하버를 멸시하고 모욕했으나 하버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다.

분명 공기 중 질소를 분리해 암모니아로 합성한 것은 인류에게 큰 도움을 주는 과학적 성과였지만, 전쟁 독가스 무기를 만든 것은 과학자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 외에도 세 번이나 잘못된 가설을 세우고도 노벨상을 받은 앙투안 앙리 베크렐, N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르네 블론로, '벌컨'이라는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측했던 르베리에, 친구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피렌체로 돌아간 갈릴레이의 비극 등 수많은 과학자들의 불운한 흑역사들이 책에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실수들이 개인사에서는 오판이나 정서적, 성격적 문제 등에 의한 비극적인 것도 있지만, 과학적인 업적에서의 실패는 결코 비극이 아니며 이런 위대한 노력과 연구가 있었기에 후대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토대로 더 발전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의 시행착오를 그저 웃어넘기며 실수나 실패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과학자의 흑역사』를 통해 평소 높은 장벽이 느껴지던 과학 분야에 접근하여 과학자들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와 함께 과학 이론들을 접하니 새삼 과학에 대해 괜한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롭게 얻게 된 과학 지식들로 뿌듯함을 느꼈다.

절대 어렵지 않고 과학에 대한 흥미 유발 만점의 책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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