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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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은 빈민층 출신이었지만 '원자론'의 제창으로 프랑스 과학계에서 나폴레옹도 누리지 못하는 영예를 누리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돌턴의 원자론이 그 자체로는 허점이 많기에 처음부터 과학계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반대 의견은 점차적으로 사라졌지만, 돌턴의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독선적이고 고집스런 태도가 원자론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비판을 초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돌턴의 원자론이 확립되던 시기 프랑스 화학자 게이뤼삭이 각종 기체가 화학 반응을 일으킬 때 부피가 일종의 비례 관계를 가진다는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표했다. 이 법칙은 돌턴의 원자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였고, 이 법칙을 이용하면 원자 질량을 쉽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돌턴은 그가 가설을 발표하자 마자 곧바로 반박하며 부정하며 가설을 의심했다. 원래 돌턴이 원자론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게이뤼삭과 같은 가설을 세웠으나 모순이 발견되어 포기했었던 것이다. 돌턴은 발견된 모순으로 인해 원자론을 수정하는 대신 실험으로 입증된 기체 반응의 법칙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둘 사이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논쟁이 시작된 다음해 이탈리아 화학자 아보가드로의 고찰로 게이뤼삭의 가설에서 '원자'라는 단어를 '분자'로 바꿈으로써 '원자론'도 거의 수정하지 않으면서 '기체 반응의 법칙'도 부정할 필요가 없이 모든 모순점이 전부 해결되었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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