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 교유서가 소설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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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짧은 아홉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단편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를 제외하고는 평범한 일상과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외출>에서 지방대 인문계열을 나온 현경은 오랜 구직활동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중, 생각을 고쳐먹고 인맥을 이용해 남들도 부러워하는 광고대행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지만 실상은 잡무를 하는 아르바이트 생에 지나지 않았다. 현경은 일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그녀 스스로 주변인을 이용하여 멋지게 성공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이용을 당하고 회사에서도 잘리게 된다.

노력과 실력이 학벌과 인맥이라는 포장에 가려 제대로 된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학원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졸업학교를 위조해야 됐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인맥을 이용해야 했고, 아르바이트 생임에도 겉으로는 PD명함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내심 우쭐해했던 현경의 모습은 결코 허구가 아닌 현실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몇십 년 전의 과거 뿐아니라 현재에 있어서도 만연하여 씁쓸함을 자아냈다.

<이사>에서의 주인공은 임대아파트 입주가 결정되고 며칠 뒤 회사의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 해고된다. 꿈이 룸펜이었던 주인공은 솔직히 본인의 해고를 다행스럽게 여겼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짊어질 생각을 하니 아직 가장은 아니었지만 그런 미래를 늦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단편에서도 역시 주인공을 해고로 몰아낸 것은 학벌, 학연, 인맥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해고되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중요한 일을 별 다른일 하고 있지 않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인수인계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왜 중요한 일을 맡아 일을 하고 꼭 필요한 사람은 왜 하는 일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구분되어 있는 현실이 동일한 아파트 내에서 바리케이드로 분리된 분양동과 임대동의 모습같아서 씁쓸했다.

<사루비아>에서는 기면증에 걸린 여자의 독백이 아무런 감정을 지니지 않고 나온다. 그리고 작은 방화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기 위한 현실의 모습과 교차된다. 기면증을 경계로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의 모호함… 그리고 추악한 현실의 모습과 진실.

월드컵 경기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해 연극업계에서 일하던 주인공은 축구경기 때문에 공연계가 힘들고 자신들의 공연까지 배우의 부상으로 공연이 힘들어지자 월드컵 경기를 보러간다. 그 경기에서 아웃 오브 플레이 상황에서 공을 요구하는 선수에게 공을 건네주기를 거부하던 볼보이의 등을 기억하며 그 볼보이가 왜 그랬을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단편은 규정대로 한 것, 개인의 취향이나 의견이 집단성에 몰려 공격당하는 세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집단적으로 반드시 축구를 즐겼어야 했고 축구에 관심없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애국심이 결여된 사람처럼 집단적으로 공격받고 소수의 취향이나 의견은 묵살되고 반드시 축구에 환호해야 했던 분위기를 소수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목포행 완행열차>에서는 집은 서울 끝자락에 있지만 떠나고 도착하는 열차를 보기 위해 역사 근처 파출부 사무실에 등록하고 찜질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내는 주인공의 인생의 굴곡이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목포행 완행열차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완행열차를 타고 가며 인생의 발자취와 무게를 되짚어 볼 수 있을까?



<햇빛 밝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죽음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모두가 그것을 두려워하고 늦추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어느때는 죽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살기 위해 힘을 다해 아등바등 줄을 타고 절벽을 오르지만 줄을 타고 오르던 줄을 놓아버리던 계속 올라가던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다. 죽음의 선택이야말로 삶에 대해 유일하게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의 의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 모임의 사람들은 실제 죽기 위한 방법을 알기 위해 모였다기보다는 서로의 힘든 점을 듣고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기 위해 모인것 같다. 진짜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은 단호하게 실행하지만 여기 모임의 사람들은 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들으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삶을 위로받는 모습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호출 1995>에서는 결혼식을 앞두고 예전 물건들을 정리하던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예전 사귀었던 애인들에게서 선물받은 삐삐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과거의 어느 모습과 인연을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다.

이 단편을 읽으며 나도 바쁘게 지내며 잠시 잊고 지내던 그 시절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자전거 타는 여자>에서 주인공은 어린시절 옆방에 세들어 살던 노부부의 밥상에서 먹음직스런 묵을 보고 한덩이 먹었다가 금방 뱉어냈다. 묵이 상했는지 쓰고 텁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엄마로부터 옆방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주인공은 떫고 씁쓸한 맛을 느끼며 토를 했다. 그 후로 죽음에 직면하면 항상 목구멍에서 떫고 쓰고 역한 맛이 역류하는 것을 느낀다.

죽음이란 산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주인공은 죽음을 처음 접했을 때 자신이 먹고 떠올렸던 맛의 느낌에 비유하고 있다. 죽음을 대하는 주인공과 주인공 가족의 모습에서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단편을 제외하고는 일상의 평범한 이웃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며 또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하는 이야기라 공감이 가며 어렵지 않게 읽혔다.

주제는 단순히 한 가지가 아니라 개인적인 추억부터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이나 인간의 삶과 죽음같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고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깊은 울림을 주는 단편들이었다.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고 고민해보게 만드는 어렵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이런 일상들이 좀 더 밝고 웃을 수 있는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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