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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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레드필드에게 발신자와 반송주소가 적혀있지 않은 편지 한통을 배달되고 아이린은 편지를 읽지 않아도 발신인을 알 수 있었다.

클레어 켄드리.

편지에는 클레어가 한 때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삶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녀에게 그런 마음이 든건 예전 시카고에서 아이린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에 아이린은 문득 이 년 전의 시카고에서의 모욕감과 분노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년 전 8월 아이린은 시카고에 여행을 와서 여러 날을 머무르며 볼일을 보았다. 바쁜 일정 뒤에 아들 테오도르가 부탁한 그림책을 사러 나갔지만 구하지 못하고 여러 상점을 돌아다니던 중 뜨거운 햇빛에 어지러움을 느껴 택시를 잡아타고 시원한 드레이튼 호텔의 루프탑으로 간다.

그곳에서 음료를 마시며 쉬는 아이린의 옆 테이블로 어떤 매력적인 백인 여자가 자리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아이린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자신의 무례함을 깨닫고 창밖을 보며 그날 저녁에 할 일과 구입하지 못한 아들의 선물에 대해 걱정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니 옆 테이블의 여자가 자신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린은 당황하여 자신의 외모를 체크했지만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상한 시선으로 계속 쳐다보았고 아이린은 속으로 당황했다. 그 여자가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눈치챘을까? 그럴리 없다. 사람들은 항상 아이린을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 멕시코 사람 등으로 보았다. 아이린은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쫓겨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잠시 후 옆 테이블 여자가 아이린에게 천천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이린은 그녀가 누군지 떠올리지 못하다가 오래전 기억속에서 그녀가 클레어 켄드리임을 떠올렸다.

둘은 십이 년의 간극을 수다로 메웠다. 아이린은 클레어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주변인들의 근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린은 예전에 주변 친구들로부터 클레어에 대한 나쁜 소문들을 들었었지만 클레어가 말한 본인의 과거는 지극히 단순했다. 아버지 밥 켄드리가 죽은 뒤 백인인 고모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다 남아메리카에서 성공해 돌아온 잭과 만나 결혼을 한 것이었다.

고모 할머니들은 다른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흑인의 피는 용서할 수 없었기에 클레어가 흑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이웃에게도 철저하게 비밀로 했으며, 덕분에 클레어는 아무런 문제없이 백인으로 그대로 잭과 도망쳐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백인 행세 할 생각이 없었냐는 질문을 한다. 아이린은 경멸적으로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아이린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를 바랐고, 아이린은 바쁜 일정을 핑계로 거절을 했지만 결국에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클레어는 아이린이 머무르고 있던 아이린의 아버지 집으로 끈질기게 전화를 했고,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으려 했던 아이린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호텔로 갔다. 거기엔 뜻밖에도 그들의 오랜 친구인 거트루드가 와 있었다. 거트루드는 백인 행세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남편도 백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을 가졌을 때나 낳았을 때 가졌던 아이의 피부색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며 공감했다. 아이린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은 피부가 검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클레어의 남편 존 벨루가 돌아왔다. 그녀는 아내 클레어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 검둥이."

흑인을 뼛 속부터 혐오한다는 클레어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거트루드와 아이린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못하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인권 운동을 펼쳤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이니 흑인들에 대한 인권은 없었던 시기이다.

'짐 크로우 법'에 의거하여 공공장소에서의 백인과 흑인의 차별과 분리는 합법적이며 당연했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학교, 버스, 화장실, 식당 등 일상생활의 전방위에 걸쳐 백인과 흑인은 엄연히 합법적으로 구분되고 분리되었다.

1920년대에는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백인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굳이 자신이 밝혀서 차별을 받을 이유는 없으니 외모상으로 백인과 차이가 없다면 백인인 척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화가 났던 인물은 패싱을 드러내 놓고 하는 클레어가 아닌 아이린이었다.

아이린은 자신은 떳떳한 척을 하고 절대 백인 행세 할 생각이 없다면서 클레어를 경멸하고 조롱하지만 본인도 선별적으로 패싱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클레어와 재회를 했던 백인 전용 고급 호텔 루프탑을 이용할 때나 일반적으로 돌아다거나 티켓을 살 때 본인이 굳이 흑인이라고 밝히거나 사람들이 오해해도 굳이 바로 잡지 않고 자신도 패싱으로 받는 편의와 특권을 누렸다. 드레이튼 호텔 루프탑에서 본인이 흑인인게 밝혀져 쫓겨날까 두려워하면서도 백인들은 흑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고 속으로 비웃는다.

그리고 존 벨루가 흑인을 경멸하는 말을 내뱉을 때도 본인도 백인인 척 하지 않았나. 그녀는 클레어를 위해 존 벨루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자기 인종을 변호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흑인임을 밝히고 나섰을 때 면전에 쏟아질 존 벨루의 혐오와 비하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클레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내로남불.

그런 반면 클레어는 드러내 놓고 패싱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이루지만 그 속에서 잘 섞이지 못하고 겉돌며 마음 편히 지냈던 옛친구들과 이웃을 그리워하게 된다. 적응하고 조심히 노력하는 클레어 앞에 나타난 아이린을 보고 클레어는 자유롭고 행복하고 안전한 아이린을 동경하게 되고, 그녀 곁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속했던 흑인사회에 다시 어울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백인사회와 흑인사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어찌보면 안타깝고 연민이 드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자유를 찾으려는 클레어를 아이린은 경계하기 시작한다.

아이린은 항상 본인은 깨어있는 지성을 가진 교양인인 척 하지만 실은 자신의 평온한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 어찌보면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야 되는 관심과 애정을 갑자기 나타난 클레어가 받는 것을 싫어했다. 평소 냉소적이던 남편 브라이언이나 데이브가 그녀에게 쏟는 관심을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린이 상상하는 끔찍한 생각은 어떠한 증거도 없었고 근거도 없는 의심이었지만 아이린은 확신했다.

아이린은 자신의 삶에서 클레어를 내쫓고 싶어했다. 그녀는 그녀 삶에서 그녀가 계획한 안정과 평온만을 원했다.

소설 중에 아이린은 흑인이 백인행세 하기는 쉽지만 백인이 흑인행세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옛날 이야기이다. 6~7년전 유력 흑인인권 운동가가 흑인 행세를 해 온 백인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크게 논란이 되었었다. 그 때 그녀가 백인임을 증명한 사람이 다름아닌 그녀의 부모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어릴 적부터 본인 스스로 흑인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작년에는 미 유명대학 교수가 흑인 행세를 하며 흑인들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누려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다.

요즘은 이런 일들이 종종 뉴스에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인종에 관련된 일들이 계속 화제가 될까?

같은 인간임에도 피부의 색에 따라 구분하고 혜택을 주고 차별을 하고 역차별을 하는 제도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세계가 하나인 지구촌 시대에 인종에 관한 문제는 인류가 계속 풀어나가야 할 큰 문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여자의 백인 행세하기가 아닌 여러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같이 고민을 하고 같이 토론을 해 봤으면 하는 소설이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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