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추적자는 펴 놓은 반죽에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비추고 기이한 소리를 더한다. 그리하여 시간에 주름을 만든다.

세계의 한복판에 금이 간다.

재는 종이 한 장으로 바뀐다. 맨 위에 사파이어색 잉크로 구불구불하게 흘려 쓴 글씨가 적힌 편지지로.

이 편지는 단 한 번만 읽도록, 다 읽으면 없어져 버리도록 만들어졌다.

세계가 부서지기 직전, 추적자는 그 편지를 다시 읽는다.

p.17



레드와 블루는 각각 에이전시가든의 요원이다.

에이전시가든은 수없이 많은 시간 실들에 요원들을 보내 각자 조직의 입맛에 맞게 시간 실타래를 만든다.

그렇기에 양측 요원들은 직·간접적으로 항상 대립하고 충돌하며, 이러한 충돌을 통해 레드와 블루가 처음으로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레드를 견제하고, 가볍게 조롱하는 식의 내용으로 블루가 시작하였으며, 레드 또한 에이전시에게 들키면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기에 블루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단지 새로운 편지를 통해 조롱에 대한 반격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끝없이 싸우고 잠입하는 등의 임무 속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진정한 벗이 된다.

이렇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위험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는 없었다.

특히, 레드가 자신의 뒤를 쫓는 의문의 추적자를 발견한 후로는.



마치 길을 건너듯 원하는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고, 또 이러한 시간들이 다양한 평행우주와도 같은 구조를 이루면서 무수하게 존재한다는 설정부터 새롭다.

시간을 따라 이동하는 내용들이 다루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현재'라는 어떠한 시점을 두고, 그 현재를 바꾸기 위해, 또는 과거의 어떠한 사건을 막기 위해 특정 기계를 통해서 시간 여행을 하는 식이 대부분인데, 이 책은 제목에서도 나오듯이 두 개의 어떻게 보면 시간으로부터 독립적인 집단들이 벌이는 '시간 전쟁'을 다룬다는 점이 흥미를 유발한다.

다른 시간 속 존재들과는 달리 유일무이한 존재들인 에이전시가든에서 수많은 평행우주와도 같은 시간 실타래에 요원들을 파견함으로써 대립하지만, 그 실타래를 따라 수십 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는 임무를 하면서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더욱 친해져 가는 레드와 블루의 모습들이 인상 깊다.

특히 무엇보다도 아마 모든 독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또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뒤를 쫓는 추적자일 것이다.

시간을 넘어 다닐 수 있기에 가능한 수십 년에 걸쳐 나무에 새긴 편지와 같은 모습들을 보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친밀감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적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상대방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시간 전쟁'을 하는 요원들인 레드와 블루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관계이다.

둘은 확실히 소울메이트인데, 그냥 레드와 블루 둘 다 일찌감치 에이전시가든으로부터 도망치면 더 낫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런 소재와 구성으로 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 판타스틱하다는 찬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

시간 흐름이 순행적인 내용을 쓰더라도 퀄리티가 나오기 힘든데, 단순히 역순행이 아니라 미래와 과거가 꼬이고, 심지어는 인물들까지도 시간을 넘어서 얽혀 있다.

이런 구성만 보더라도 생각해내기 어려울 텐데, 레드와 블루가 주고 받는 편지들의 다양한 방법,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들에 담긴 미세한 감정들과 내용이 진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레드와 블루의 변화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것을 보면 작가는 확실히 천재적인 것 같다.




*리딩투데이에서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