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아는 시체를 파묻고 있는 상황에서 눈을 떴다. 어둠 속 모르는 곳에서 처음 보는 젊은 여자를 땅에 묻고 있었다. 혜수의 짓이 분명했다. 혜수는 항상 이런식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수습은 지아에게 맡겼다. 지아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처벌받기는 싫었다. 여태까지 일로도 족했다. 살인죄는 싫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여자를 묻고는 산을 내려와 도망갔다.

지아는 머리속에서 혜수를 없애 줄 의사가 필요했다.

1980년 초여름 전남 온계리, 갑작스럽게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리더니 평화로운 지아네에 재필이 뛰쳐들어와 군인들로부터 숨겨달라고 했다. 지아 엄마는 그를 장롱속에 숨겨줬고 지아도 그와 함께 장롱 속에 숨었다. 그를 찾으러 온 독개구리 무늬 군복의 군인이 엄마를 때리며 집기들을 부수며 재필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자 포기하고 돌아가려했다. 그 순간 지아가 재채기를 했고 독개구리는 아무도 없다고 거짓말한 지아의 엄마를 죽였다.

재필은 그일이 있고 난 뒤 몇 달이 지나도록 마을을 떠나지 않았고 얼마 후 지아의 아버지 철순은 재필을 통해 서울에 집을 구하고는 지아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이주하는 과정에서 지아에게 분노와 저주와 욕설 목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혜수가 지아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지아가 고1때, 혜수는 처음 밖으로 나왔다.

지아의 병에 대해 알아본 재필은 철순에게 병을 인정하자며, 지아는 예전처럼 대하고 다른 인격은 아예 다른 사람 취급을 하자고 했다.

철순은 착한 딸이 아닌 나쁜 딸은 부담없이 혼내도 된다는 생각으로 혼내는 자책감을 덜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아와 혜수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철순은 항상 지아건 혜수건 혼을 냈다.

지아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혜수가 튀어나왔다. 피를 보거나 몸이 힘들면 그랬다.

지아의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했고 생의 절반은 혜수 차지였다.

1999년 12월 마지막 날 밤, 지아는 좀 더 높은 곳에서 서울을 보기 위해 뱀이 마을 꼭대기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혜수가 연필로 손을 찍었던 축음병원 간병인 노유정의 남편 덕호가 나타나 지아에게 폭력을 썼다.

지아는 항상 이런 놈들의 차지였다. 혜수가 망쳐놓은 인생이었다. 지아는 잘못했다고 빌었으나 덕호는 무자비했다.

지아는 혜수가 나오도록 주머니 칼로 자해했다. 그리고 환영속으로 의식을 맡겼다. 온계리, 엄마, 썰매, 상여, 독개구리…. 모든 환영이 지난 후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지아는 무릎 아래 반쯤 묻힌 여자를 봤다. 지아는 여자를 묻고 산을 내려왔다. 내려와서 이정표를 봤다.

강원도 묵진. 대체 며칠이나 지난걸까.

집으로 가야했다. 그래서 지아는 무작정 서울을 향해 걸었다.

뱀이 마을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려 나온 사람은 철순이었다. 철순의 뒤로 모르는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껏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지아는 드디어 집에 돌아왔지만 혜수로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19년 만이었다.

아무리 몸에 상처를 주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혜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혜수는 겁쟁이처럼 살인을 저질러 놓고 깊숙이 숨어버렸다.

지아는 자신의 잃어버린 19년을 알아야 했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좋아 중반 이후로는 책 읽는 가속도가 났다.

소설은 광주 사태에서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살아남은 소녀가 겪는 정신적 후유증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 시키고 있다.

지아는 엄마가 죽는 순간에 처음으로 타인과 자신의 경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 안에 타인을 만들어낸다. 지아는 무기력했고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인격이 두 개로 분리된다. 살아남은 자신을 비난하는 타인인 혜수. 물론 무의식에 의한 분리이리라.

주인공 염지아는 소심한 피해자의 삶을 살지만 지아의 다른 인격인 혜수는 어둠이고 죄를 짓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혜수는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지식을 갈구하는 반면 지아는 혜수가 나타난 이후 난독증을 심하게 겪을 정도로 끝없이 퇴화하고 무능했다.

지아는 혜수에게 두려움와 적개심을 동시에 느끼고, 혜수는 무능한 지아를 고통주면서 희열을 느꼈다.

타인인 혜수는 지아의 몸을 지배하며 지아에게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고통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사랑을 갈구하는 또 다른 현상이었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만약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어린 지아를 철순이 따뜻하게 감싸주었다면 지아가 이중인격을 겪었을까? 물론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따뜻하게 어린 지아를 안아주었으면 다른 사람을 만들어 본인에게 벌을 주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단서없이 막연하게 혜수의 묵진에서의 행적을 쫓는 이야기는 어떤 놀라운 일이 튀어나올까 흥미진진했고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작가는 소설에서 재필, 관훈, 진희, 규식 등 여러 인물들과 주인공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하나씩 깔끔하게 정리하며 풀어나간다. 모든 인물의 뒷이야기가 있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은 남지 않는다.

이야기는 마지막 3부에서 혜수의 의식에 의한 서술로 모든 의문점과 과거의 일과 진실이 밝혀진다. 3부는 한마디로 폭풍이 부는 듯한 전개이다.

이야기가 끝난 후 진실이 밝혀져 후련함과 동시에 가슴 먹먹한 여운과 울림을 한참 동안 남기는 소설이었다.

혜수는 어딘선가 행복하겠지?


지아를 가장 닮은 혜수는, 그래서 지아를 가장 잘 아는 혜수는, 왼손을 내밀면 기어이 오른손을 돌려주는 존재였다.

p.606~607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