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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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야기하는 화자는 전부 여자들이다. 초등학생부터 팔순의 할머니까지.

그들의 특별하지는 않지만 공감가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냥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처음 나오는 단편 <매화나무 아래>라는 단편이 가슴 먹먹하고 잔잔한 메시지를 전해주어 좋았다.

주인공은 팔순의 할머니로 치매걸린 큰언니와의 이야기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자식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치매에 걸린 큰언니의 돌봄을 손자 승훈이 한다. 키운 정때문일까?

하지만 승훈은 그냥 할머니가 좋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가 쓰러져 의료기기의 도움으로 누워있을 때 가족들은 전부 보내드리자고 하지만 손자 승훈만 고집을 피운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누가 의미있다고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어떻게 사는것이 의미 있는 것일까?

소설 속 할머니 동주도 자신의 자식은 눈을 못떠도 좋으니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목숨만 붙어있게 해 달라고 했었다. 만약 그렇게 동주할머니의 자식이 병원에 누워있었다면 그 삶의 의미가 있고 없고는 누가 정의 내리는 것일까?

소설 속 승훈의 이 한마디는 그 상황과 어우러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단편 <오기>에서 주인공은 소설가로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을 잠시 그만 두었던 시기, 옛 고교은사의 부탁으로 대학특강을 갔고 뒷풀이로 선생님과 학생 2명과 술을 마셨다. 그 후 술에 취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작가의 옛 기분나쁜 기억을 불러내었고 작자 자신의 본인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는 철칙을 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폭력적인 아빠와 오빠, 고압적이던 엄마.

그런데 그 소설이 출간되고 선생님에게서 어떻게 본인의 이야기를 뻔뻔하게 쓸 수 있냐며 항의를 받는다. 악플에 많이 시달린다.

가부장적 사회였던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어른들 중에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이 왜 없다고 생각할까?

<가출>에서는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처리하던 반듯한 아버지가 가출한 후 가족들은 소통을 더 자주 많이 하며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가끔 아버지에게 드렸던 주인공의 신용카드 사용 문자가 온다. 그 문자는 아버지 자신이 잘 있다는 메시지 같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읽으면서 김혜수 주연의 '직장의 신'이 생각났다. '직장의 신'에 나오는 슈퍼갑 계약직 미스 김처럼 이 회사 미스 김도 엄청난 능력자이다.

물론 능력은 뛰어나지만 슈퍼갑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렸다.

경력은 길지만 직급은 제일 낮고, 연봉도 제일 낮은 미스 김이 회사의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조율하고 진행했다. 미스 김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잘린 뒤 회사에서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현남 오빠에게>는 요즘 사회적으로도 이슈화 되었던 전형적인 가스 라이팅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먹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을 느꼈지만 10년 가까이 사귀다 이제야 이별을 통보하고 헤어진다. 그간 현남 오빠가 배려인척 해 주었던 모든 만행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주인공.

말도 경어체에서 점점 더 반말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던지는 속시원한 한마디.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간 우리 사회에서 여자들은 보호받아야 될 존재라고 규정지으며 틀안에 가둬놓고 마음대로 여자의 삶을 규정지으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오로라의 밤>에서 주인공은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가져온 엽서 속 오로라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꼭 보고싶은 꿈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사는데 떠밀려 나중으로 자꾸만 미루다가 쉰일곱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결혼한 딸은 자기 자식을 주인공과 할머니가 키워주기를 바랐다.

방학동안 캐나다에 가겠다니 엄마는 자기를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하고 싶은거 다했지 않느냐고 섭섭해 한다.

이 소설의 시어머니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지만 사고가 정말 트인 인물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옛날이 좋았는데…', '그때로 돌아갔으면…' 이런 말들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과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었지만 현실에 충실하며 지금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담담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일곱 번째 단편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읽으면서 화가 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상습적으로 여자아이들을 희롱하는 남자아이들을 문제 삼기위해 일부러 남자아이들이 오게 상황을 연출하여 덫에 빠지게 하고, 학폭위가 열리게 한다.

물론 상습적으로 여자아이들을 희롱한 남자아이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들을 벌주기 위한 방법이 올바른가 하는 점이다.

굳이 민망할 정도로 짧고 타이트한 교복치마를 입고 일부러 남학생 사물함 위에 걸터 앉으니 치마는 더 말려 올라간 상황에서 두 발을 앞으로 뻗었다 놓고 뻗었다 놓는 장면은 같은 동성이 보더라도 불쾌한 장면이다.

그들이 한 상황연출이 떳떳하다고 생각한다면 주인공은 딸 주하에게 그 사실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할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밝혔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으면서 남자아이들에게도 화가났지만, 본인들 스스로도 밝히지 못할 덫을 파고 유도한 여자아이들에게도 어이없어 화가 났고, 어른으로서 바르게 인도하지 못하고 침묵하라고 말한 주인공에게도 화가났다.

<첫사랑 2020>은 귀엽게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하는 것 같다가 코로나19 유행으로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어이없이 끝나버린 초등학생 아이들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정말 내 주변의 초등학생 아이 누구나가 해 봤음직한 귀여운 첫사랑 이야기이다.

서연이가 헤어지자니 울면서 헤어질거면 자기가 선물로 준 마스크 내놓으라는 승민이.

어른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진상이지만 아이가 했다고 머리속에 그려보니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이야기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적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잘 읽혔다.

잔잔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조금 과격한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화나무 아래>와 <오로라의 밤>이 생각해 볼 거리도 많고 잔잔한 감동을 줘서 좋았다.

나도 앞으로 저절로 들어가는 나이지만 나이를 잘 먹기 위해 노력하고, 내 나름대로 의미있게 살자고 다짐도 해 보게 된다.

내 인생의 의미는 나에 의해 정의내려지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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