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런 욕망이 내 안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좁고 어두운 방. 붉은 기모노를 입은 소녀. 옆에서 정성껏 소녀를 돌보는 남자.
《봉인된 빨강》 중에서 p.12
『거짓의 봄』은 다섯편의 범죄 추리 소설 단편의 모음이다. 전혀 상관없는 단편들의 모음이 아닌 가미쿠라시와 경찰 가노 라이타와 연관된 범죄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들은 각 단편들이 범인들의 관점에서 적혀 있어서 범인이 누굴까하고 의심하고 추측하게 하는 긴장감은 없다. 그러나 독자들만 알고 있는 범인이 극중에서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 그 이면에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 튀어나온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소설이 <봉인된 빨강>이었다.
<봉인된 빨강>에서 주인공 미야조노 다케루는 어릴 때 어디에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붉은 기모노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뇌리에 박혔고, 성장기 내내 의식 깊은 곳에서 그의 내면을 침잠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욕망을 결코 드러내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외할머니와 재혼한 할아버지 후지키가 치매로 요양원에 입소하자 아버지는 대학생이 된 다케루에게 비어있는 할아버지의 집을 돌보는 것을 부탁한다. 다케루는 마지못해 할아버지의 집을 찾지만 그것은 다케루의 욕망을 분출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그것은 과연 본인 스스로 원한 진실된 다케루의 욕망이었을까?
이 단편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 『거짓의 봄』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단편 <거짓의 봄>에서는 미쓰요라는 고령의 여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 미쓰요는 고령의 남성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기단의 리더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기단의 멤버 아케미와 노조미가 돈을 들고 사라졌다.
거기서부터 일이 꼬였을까? 엎친데 덮친격으로 미쓰요는 의문의 협박장도 받게 된다. 멤버가 돈을 들고 사라지자 이 일을 접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마음 먹었던 미쓰요다. 그러나 가족도 의지할 곳도 없는 그녀에게 옆집의 꼬마 하루토는 그녀에게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했다. 사기꾼이었지만 불쌍한 인생의 미쓰요에게 조금은 동정이 가는 이야기였다.
<이름없는 장미>의 주인공 쇼고는 전과가 있는 도둑이다. 나이도 40이 넘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쇼고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재배한 장미를 선물하며 친절히 대하는 하마모토 리에라는 20대 간호사와 가까워진다. 쇼고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 잘 알기에 그녀에게 확실한 선을 그으려 자신의 도둑 신분과 전과 사실을 밝힌다. 리에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장미를 훔쳐다 달라는 부탁을 하며 그를 떠본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그 훔친 장미 한송이가 두 사람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낯선 친구>의 미호는 친구 나쓰키에게 약점이 잡혀 그녀의 말은 거역을 하지 못하는 대학생이다. 그녀는 나쓰키가 그녀의 약점을 잡고 아닌척 그녀를 조종하고 부려먹는 순진한 천사의 가면을 쓴 악랄한 악마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더해져서 드디어는 나쓰키를 죽이고 싶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나쓰키는 사고를 당하고 범인을 추리해 내는 과정에서 역시 가노가 등장하지만 여기서 가노는 파출소로 좌천되기 전의 가노이다. 마지막 또 하나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다.
다섯 번째 단편 <살로메의 유언>은 아이돌 성우 우타모리 에밀리가 등장부터 주인공 다카기 카기 앞에서 죽는다. 다카기의 모든 행동은 그가 범인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단편은 에밀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보다 다카기에 관한 이야기가 더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충격과 반전을 안긴다. 마지막 이 다섯번째 이야기에서 유능한 가노 라이타 형사가 현경 수사1과에서 지역 파출소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 있다.
다섯 편 모두가 군더더기 없는 흐름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든다. 작가의 이름을 모르고 그냥 읽었다면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섯 편 모두 재미있고 짜릿한 반전을 주지만 여전히 <봉인된 빨강>의 반전은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왔던 문구가 머릿속에 너무 강렬하게 새겨졌다.
'좁고 어두운 방. 붉은 기모노를 입은 소녀. 옆에서 정성껏 소녀를 돌보는 남자.'
이 문구만으로 긴장감과 스릴과 어두움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범죄심리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경찰 가노는 허술해 보이는 외모에 날카로움을 숨기고 사건을 예리하게 캐치하고 해결해 나간다. 그의 추리과정 또한 군더더기가 없어 너무 쉽게 범죄해결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것이 복잡한 범인의 범죄심리와 사건을 정리하는데 깔끔한 장치가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가노가 활약하는 다른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허를 찌르는 반전과 깔끔한 뒷마무리의 범죄 심리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주저없이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출판사 블루홀식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