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소소설 대환장 웃음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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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편소설 9편으로 이루어진 괴소 소설은 각편마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위트넘치는 문장을 써서 너무 과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소설 끝머리에 보면 친절하게 작가 후기를 적어 각 단편의 탄생 배경을 적어놓고 있다. 읽어보면 전부 작가 일상에서 작가가 경험하고 생각했던 바를 소설로 적은 것이다. 작가의 취향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리고 작품이 독자의 기호에 맞지 않는 경우는 그럴수도 있다며 쿨하게 넘기는 태도도 보여준다.

히가시노는 버스와 전철을 타고 작업실을 오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울적한 전철>을 적었다고 한다. <울적한 전철>에서는 퇴근길 복잡한 전철에서 승객들이 저마다 처한 상황과 가지고 있는 생각을 시선의 흐름을 따라 옮겨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람들의 생각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그런 생각들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이 시선은 무한정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기점에서 다시 그대로 되돌아 오며 상황을 정리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허를 찌르는 반전이 이 에피소드의 묘미다.

<할머니 광팬>에서의 주인공 가쓰다 시게코는 구두쇠 할머니이다. 남편이 죽은 뒤 의지할 피붙이가 없고, 연금과 남편이 남겨 준 약간의 저금과 생명보험이 수입의 전부이므로 아껴야만 그녀의 생활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우연한 기회에 공짜로 얻은 스기히라 겐타로의 공연 티켓으로 공연을 한번 본 후로 스기히라에 푹 빠져 버린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웃기지만 웃지 못할 일들. '웃프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들을 연출한다.

<고집불통 할아버지>는 본인이 못다한 꿈을 자식이 이뤄주기를 바라는 아빠의 이야기이다. 남동생 유마가 태어나기 전까지 딸인 노조미가 아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야구선수가 되기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구세주 남동생이 태어나고 노조미는 감사하게 아빠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아빠는 유마에게 본인만의 특별 훈련 방법과 훈련도구로 트레이닝을 시킨다. 이것 또한 자신이 못다한 꿈을 자식에게 바라는 우리나라 현실의 부모와 다를바 없어 공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소설은 그 모습을 최대로 희화화 시켜 웃음을 자아낸다.

선생님 복이 없어서 선생님을 싫어한다고 밝힌 히가시노는 <역전 동창회>에서 선생님들을 과거의 영광과 추억에 얽매여 사는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세상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되어 버렸고, 현재를 살아가고 책임지고 있는 제자들의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에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생님들의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는 웃픈 이야기이다.

<시로카네다이 분양 주택>은 도심에서 멀어 세시간이 넘는 통근시간을 감수하더라도 집값이 올라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분양주택을 사서 온 사람들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다르게 자고 일어나면 집값은 뚝뚝 떨어져 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배에 칼을 꽂힌채 죽은 남자시체가 마을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시체를 보고 살인사건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악영향으로 떨어질 집값을 걱정한다. 그래서 선뜻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다른 묘안을 짜내 실행에 옮기게 된다. 집값 걱정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로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가시노 본인의 할머니가 99세에 돌아가신 이야기를 소재로 <어느 할아버지의 무덤에 향을>을 적었다고 한다. 그 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는데 단지 아쉬운 점은 할머니가 100살을 넘기지 못한 것정도 였다고 한다. 정말 100세 시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야기는 한 의사의 젊어지는 비밀 실험에 협조하는 할아버지의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실험은 비밀이었기에 실험 대상자는 사람들과 교류가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게 바로 일본이 직면한, 아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어느날 뉴스로 접하게 되는 독거 노인의 안타까운 죽음. 다시 한번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동물 가족>에서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주변인들이 주인공 머릿속에 갖가지 동물들로 비춰진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자신은 자신이 쓴 단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더이상의 언급을 자제한다. 사람마다 기호는 다양하니까.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말장난으로 웃음을 주는게 아닌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센스. 발표한 지 시간이 조금 된 작품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유쾌한 작품이다. 그것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장점이라 생각된다. 추리 소설가임에도 유머단편을 멋지게 써 내는 히가시노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재미를 내세우는 다른 어떤 유머집보다 마음에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그의 남다른 블랙 유머 작품을 꼭 만나보기 바란다.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재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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