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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는 곳에 있어줘
이치호 미치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읽어갈수록 슬펐다. 7살 때부터 만나 서로를 알아간 두 친구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 사이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자친구 두 사람이 만나지만 슬프기가 이를데가 없다.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부분이 스토리 전체적으로 보인다. 속시원함이 없고 안으로 안으로 삭히는 느낌이다. 주인공들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치고 눈빛으로만 말하고 있는 느낌이라서 읽어가면서 계속 슬퍼졌다.
유즈와 카논은 7살에 처음 만난다. 유복하게 살던 유즈는 어떤 가난한 동네에 가는데,... 엄마는 어떤 아저씨와 30분씩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동안 유즈는 밖에 있는다. 그 때 만나게 된 카논.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카논의 모습이 흥미롭다. 뭔가 불안하게 30분동안 있었어야 했던 유즈는 카논과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만난 15살... 고등학교 교복을 말쑥하게 입고 만난 두 사람. 또 갑자기 헤어지고. 29세에 둘 다 결혼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면 참 반가운 동창일 것 같지만 저자 특유의 헤어질 듯 말 듯 만날 듯 말 듯 하는 스토리 구성 기술로 슬픔을 동반한 만남을 보여준다. 사는 스타일도 달랐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상황도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외로웠다. 그렇게 외로웠던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서로를 물결치게 한다. 이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의 변화를 어린이, 청소년, 성인으로 보여주면서 구성하면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졌던 게 꽤 긴 내용인데도 두 인물로 화자를 번갈아 오가면서 마음속 이야기까지 묘사하는 부분이 아주 탁월했다. 두 인물을 오가는 구성은 이질감이 없이 자연스러웠고 두 인물의 생생한 마음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남성간의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을 쓰면서 매우 유명해진 작가가 이번에는 두 여성 친구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오키상 후보로 계속 오르다가 2024년 <쓰미데믹>이라는 작품으로 제171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일반소설로도 다양하게 자신의 글솜씨를 보여주는 작가로 역량이 충분한 것 같다.
P121
엄마가 넣어주고 카논에게 건네준 채 돌려받지 못했던 것, 파스텔 핑크의 누가 봐도 어린이용인 싸구려 버저 따위 분명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넌 가질 수 없는데 열다섯 살의 카논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일곱 살의 카논이. 그 순수함과 어리석음이, 예리한 바늘이 되어 나를 찌른다.
P191
왜냐하면 내가 유즈라면 유즈를 좋아할 수 없으니까
저자는 이야기가 품고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물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인공인 두 여인에게 딱 어울리는 느낌이다. 삶에 정답이 있겠느냐마는 두 여인에게는 정말 물음만이 있다...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