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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는 실제 진찰을 하고 있는 의사다. 현직 의사이면서 계속 소설 작품들을 쓰고 있다. <신의 카르테>라는 작품으로 제10회 쇼가쿠간문고상을 받으면서 데뷔를 했다고 하니 저력이 있는 작가의 기질도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참 따뜻하다. 주인공 데쓰로는 교토의 작은 지역병원에서 일하는 내과 의사다. 여동생이 조카를 남기고 죽자 조카를 위해 지역의 작은 병원으로 왔다. 생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의 환자들을 왕진가는 데쓰로는 다른 의사들처럼 뭘 하질 말라는 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남은 생을 지내라고 한다. 다른 의사들은 데쓰로가 환자들을 ‘안심’시키는 것 같다고 한다. 환자를 안심시키는 의사라니 얼마나 멋진가. 전문가의 느낌이 느껴지면서도 서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모습의 의사라서 더 좋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는 언제나 느긋하고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다, 데쓰로의 환자들은 집에서 ‘느긋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원하는 죽음이라... 참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데쓰로는 환자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철학자 스피노자의 철학을 즐겨 읽는 데쓰로는 계속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갈 뿐이다.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메시지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p178
의사라는 일은 제게 책임이 너무 무거워요. 하지만 별달리 할 줄 아는 일도 없어서 이 일을 게속하고 있네요. 그런데 그 얼마 없는 용기마저 금방 고갈되네요, 그래서 쓸모없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여기 와서 종종 용기를 나눠 받아요
용기를 나눠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일까? 저자 나쓰가와 소스케는 실제 자신의 직업이 의사이고 진료를 하면서 느꼈던 다양한 이야기를 책 안에 녹여내 소설의 흐름도 자연스럽고 병원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서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졌다. 표지도 은은한 수채화의 초록색 수양버들 나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쓰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가득 담긴 진찰실은 죽음조차도 버겁게 만드는 게 아니라 느긋하고 서둘지 않게 삶을 즐기게 만든다. 저자의 철학이 잔뜩 느껴지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