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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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하면 은근히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울꺼야, 굉장히 어려운 내용일꺼야... 등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이 책의 저자 장폴 사르트르는 무실론적 실존주의를 기조로 해서 작품을 써온 작가 겸 사상가다. 철학은 어렵다는 생각이 있는데 하물며 실존주의라니... 그래서였을까? 그래도 많은 프랑스 작품들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이 작품은 읽은 기억이 없었다.


 우려했던 것보다 이 작품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 이야기를 이어가는 형식은 일기체로 쓰여 주인공이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옆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로강탱은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는 청년이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말한다


p22

 내가 왜 인도차이나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왜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왜 이렇게 희안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나의 열정은 죽어버렸다. 그것은 몇 해 동안 나를 사로잡아 여기저기 끌고 다녔지만, 이제 나는 속이 텅 비어버린 것을 느꼈다. 하지만 최악은 따로 있었다. 내 잎에 어떤 큼직하고도 흐릿한 ‘상념’이 나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일기 쓰는 것을 시작한다. 바로 구토에 대한 의미를 밝히려고 하나 하나 기록을 하게 된다. 이런 기록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고자하는 실존주의와 부조리에 관련한 것들이라고 한다. 사실 이 소설은 어렵게 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려고만 하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난 로강탱이 말하고자 하는 말투나 주변 상황 묘사 등에 포인트를 두어 더 열심히 읽었다. 사르트르 소설은 예전에 <벽>을 읽어보았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제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기체로 쓰인 이 소설도 좋았다. 로강탱은 여자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는 또 다른 전개가 된다.


p348

 “바로 그거야. 난 증오나 사랑이나 죽음 같은 것은 성금요일의 불의 혀처럼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증오나 죽음으로 찬연히 빛날 수 있다고 믿었지.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지! 그래. 정말로 난 ‘증오’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었어. 그게 사람들에게 강림하여, 그들을 그들 위로 끌어올린다고 말이야. 물론 있는 것은 나뿐이야. 증오하고 사랑하는 내가 있을 뿐이지. 그런데 이 ‘나’는 항상 똑같은 것, 한없이 늘어나고 또 늘어나는 어떤 반족 같은 것이지...얼마나 똑같은지 어떻게 사람들이 이름들을 짓고 구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야.“


 이 소설을 모두 읽어도 실존주의라는 건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대목을 읽다보면 이런 게 실존주의나 부조리 등을 나타내주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소설의 정수를 느껴 볼 수 있는 책들을 더 많이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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