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만드는 여자
김정하 지음 / 북레시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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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성 1호 브루마스터 김정하.


솔직히 나는 저런 타이틀 보다 맥주 만드는 여자라는 것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수제맥주는 늘 궁금했던 맛이여서, 그 맥주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2019년으로 이제 15년째 수제맥주 펍을 운영하고 있나는 김정하 대표의 글은 전체적으로 시원한 맥주를 닮아 있었다.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처절하면서도 깊은 맛이 가득했다.


책의 내용은 단순히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보다, 맥주를 만들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하는 자서전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딱한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열정이 가득 담긴 이야기는 독자인 나도 열성적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24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기에 주변의 고까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김정하 대표. 게다가 당시 여성이 맥주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고 한다. 체력적인 한계 때문인지 더 고된 작업이라는 맥주 만들기었으나, 김정하 대표는 그 자리에서 단단하게 버텨냈다. 


한 때는 심한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맥주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녀의 이야기. 남들이 먼저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기에 분명 고난도 많았다. 이해할 수 없는 제도들도 많았고, 어렵사리 만든 수제맥주를 국제 맥주 대회에 출품하는 것도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15년동안 한 길을 걸어오며 세월은 많이 변했고 김정하대표는 이제 후세대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계속 맥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자신만의 신념이 이렇게 확고했으니 한가지 분야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구나였다. 지금도 끊임없이 좋은 맥주레 관해 도전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두고 지키는 것 또한 본받을 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수제맥주 펍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언젠가 나도 수제맥주를 경험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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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가지 사건으로 보는 금의 역사 - 왜 사람은 금을 탐하나?
루안총샤오 지음, 정영선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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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광물이자 부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금. 경제위기 때마다 화폐의 가치는 수없이 변해왔지만 금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였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는 금의 역사라고 해서 금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추앙받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줄 알았다. 39가지 사건이라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데.. 조금 방향을 잘못 잡고 시작해서인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부를 나타내는 장신구에서 점점 더 재화적 가치가 더해가는 금. 금은 역사적으로도 귀하고 특별한 것이었다. 황금이 풍부한 나라는 길지 않은 부귀를 누리다 다른 나라들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고, 금이 있는 곳엔 전쟁도 있었다.  풍요는 약탈로 끝맺음 지어지고, 금이 있는 곳엔 사람들의 욕심도 있었다. 39가지 사건을 보면서 금의 역사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세계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역사라는 것이 어느 한 분야만 따로 똑 떼어놓고 보기 어렵긴 하지만 어쩐지 부의 흐름에 따라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사건은 과거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의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약탈로 졸부가 된 스페인 사람들은 경제발전보다 소비에 더 많은 금을 사용했고 그로인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졌다는 것이었다. 부유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안일한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금의 행방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더 인상깊게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알았던 세계사의 이면에도 금이  존재했고, 금은 지금도 세계의 역사 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많은 역사가 부와 전쟁을 통해 반복되어온 만큼, 금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미래의 경제를 예측해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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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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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아이를 출산한 엄마들의 모임 '5월 맘'. 처음엔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던 모임이었지만, 어느새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는 엄마들의 모임이 되었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 있는 엄마들의 유대는 끈끈했다. 그래서 어느날 누군가가 말한다. 하루쯤은 엄마들끼리만 뭉쳐보는 게 어떻냐고. 하지만 엄마들끼리 뭉치기로 했던 날 밤, 끔찍한 유괴사건이 터진다. '5월 맘'의 회원 중 하나인 싱글맘 위니의 아기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생후 6주 된 아기가. 그 일로 아기들을 놔두고 술집에 간 엄마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아기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가 없는데..


도시 여성 스릴러에, 독특한 소재로 눈길을 끌었던 책 '퍼펙트 마더'. 우선 분명하게 밝혀둬야 할 건 일반적인 스릴러를 생각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피튀기는 공포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심리적인 스릴러에 좀 더 가까운. 오히려 이 소설의 초점은 등장인물 간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파헤치는 재미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아기 납치사건도 100페이지 남짓에서야 발생하니 사건 진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편인 셈이다.


시간에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기와, 그런 아기에게 매달려 좋은 것만 해주고 싶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엄마들. 중간중간 나오는 5월 맘의 게시글은 어쩐지 자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과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범인을 찾아나서는 엄마들은 아이가 살아있다는 끈끈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끝이 좀 허망한 느낌이 있었지만 나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가 없는 나는 엄마인 독자처럼 공감할 수는 없었겠지만.. 오히려 엄마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당연한 시선과, 초짜 엄마들의 육아가 더 공포스러웠다면 이해가 될까. 그런 점에서 보면 아이를 가진 엄마의 공포는 어떠한 형태로든 끝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있는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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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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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참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친밀한 것 같은 주인공을 만났다. 1965년. 자신의 젊은 날을 회고하는 듯 쓰여진 소설 '아일린'은 카드리뷰를 읽고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된 책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고 해방되고 싶었으며, 마침내 총을 쥐고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몰고 탈출하는 이야기라니 궁금했다. 주인공인 아일린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나 결말에 관해서.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은 앞부분과 뒷부분을 조금씩 제외하면 일주일. 고작 일주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면서도 한 사람의 삶을 대부분 알아보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만큼 주인공인 아일린에 대한 묘사는 세심했고, 행동 또한 엄청나게 특징적이었다. 비록 그 모습이 완전한 호감형은 아니었지만.. 그래서인지 아일린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회상하는 부분과, 그녀의 이상한 정신세계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다.  초반에 진행되는 부분은 솔직히 지루했고, 읽기에도 힘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일린은 조금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뜩 비틀린 인물이었으니까.


아일린은 성적인 상상을 하며 자신을 위안하고, 자기비하게 깊이 절어 자신을 모든 쓸모없는 사물에 빗대고 있었으며 폭력적인 묘사도 서슴치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강하게 거부감이 들었던 건 성적인 묘사나 상상이었는데, 정말 원초적인 본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낯설면서도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고 이상하기까지 했다. 종종 소설을 읽으며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몇몇의 소설이 있기는 했었지만, 이 소설은  아일린의 어휘가 심상지 않아서 더했던 것 같다. 빈도도 굉장히 놓았고. 초반부에 무슨 내용의 책을 읽는지 물었다면, 읽는 사람이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책을 읽고 있다고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아일린의 가정은 그녀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불명예 퇴직을 한 아일린의 아버지는 환각을 보고 홤청을 듣는 굉장한 알콩중독자에,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없었으며, 자매인 조우니는 집을 떠나고 아버지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결국 아일린에게 떠맡겨진 아버지는 웃기게도 아일린의 자존감을 죄다 갉아먹고 비하를 일삼으며 술만을 찾는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나아가서는 자신이 소속된 X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일린을 어떻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평안하지 못한 가족들 사이에서 비틀어져버린 아일린은 드러내지 못하는 조용한 분노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에 대한 위안으로 온갖 상상과 그 바탕이 되는 주변인들을 관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일린은 유일한 출구는 상상. 펼쳐낸 상상속에서 아일린은 멋진 연애를 하고, 아버지를 벗어나며, 미래는 나을거라고 위안한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 넷이었지만 인생을 다 산것처럼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아일린이 과거를 회상하는 건 1964년.  그녀가 겪은 일은 모두 먼 과거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도 소설 속 아일린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놓인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내재된 생각이야 어떻든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녀를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었다.


내성적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동경하는 사람을 만들고.  낯설지 않은 성격이다. 오히려 아일린에게서 공통점이 발견될 때마다 놀랍기까지 했다. 아일린은 좀 극단적인 상상을 하긴 하지만.. 폭력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자신이 비정상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일린은 일련의 행위(극단적인 상상 같은)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덕분에 아일린에게서 나 자신을 온전히 분리해서 읽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벗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비슷하기도 했고. 총이라는 단어를 먼저 보고 시작해서인지 아일린이 자신의 내면을 터뜨릴 곳을 찾고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눈썹을 올렸다. 정말이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돌려야 할 정도로. 나는 절박할 정도로 잘 보이고 싶었다. 그녀도나와 같이 느끼고 있다는-우리가 콩깍지 속의 콩 두 알처럼 닮았다는- 명백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 143p


그러던 어느날, 아일린의 앞에 리베카라는 여성이 나타난다. 하버드대라는 학력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람. 아일린은 그녀를 보고 대화를 나눈 순간 아일린은 리베카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감정을 품는다. 남몰래 흠모하여 상상하던 남자를 깡그리 잊어버릴 만큼 강렬하게.


아일린의 속 생각이야 어떻든, 계속 참고 또 참으며 착한 딸의 범주조금 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에 나타난 리베카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때부터 아일린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일린이 보기에 리베카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보였다. 아일린은 그녀의 사소한 부분도 동경하며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그레서 나만을 바라봐주는 친구를 원했고 아일린은 그런 그녀에게 적당한 미끼를 투척하며 그녀를 붙여놓았다.


그리고 문제의 12월 24일. 아일린의 세상이 뒤집힌다. 생각해보면 그날은 아일린이 아빠의 모습을 투영해냄과 동시에 리베카의 숨겨진 모습을 보고 자신의 신념대로 심판까지 내리는 날이기도 했다. 잔뜩 동경했던 리베카지만, 리베카의 말에 처음의 아일린은 보수적인 입장을 공수한다. 그렇게 살아야 했으니까, 아일린에게는 그것이 당연했다. 그쯤의 아일린의 태도를 보며 나는 그녀가 머리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범죄의 범주에 들어가는 짓은 대놓고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비슷한 의문을 품고 몇 년 동안이나 마음속으로 논쟁을 벌여왔다. "죽이는 게," 나는 대답했다.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어야겠죠."' - 310p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아일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늘 논쟁을 벌여왔던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다. 리베카는 아일린의 끝을 보지 못했디만 그게 뭐 어떤가, 아일린은 그런 것쯤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움직여 자신을 틀에맞춰 생각했던 마을과 폭력적인 아버지를 떠난다. 나에겐 그 모습이 시원스럽기도, 유쾌하게도 느껴졌다.


탈출하는게 유쾌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건 드디어 아일린이 제대로 된 욕망 표출을 해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탈출 전에 아빠를 흉내내며 말하는 부분도 굉장히 인상깊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아빠를 흉내내는 아일린을 보며,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범해진 폭력에 물들지 않고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찌되었든 아일린의 가정환경은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수많은 일들에 치이면서도 자신만의 표출구를 찾았었으니 말이다.


끝부분을 보고 난 뒤에 재밌게 읽었다는 감상이 들긴 하지만 사건진도는 느린편이다. 카드리뷰를 보고 초반부터 스펙터클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그것이 전체 줄거리였다. 종종 현재 시점에 섞여드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엔 그랬다라는 어투가 덤덤하게 얘기하는 것같아 더 안타깝고, 모두 떨쳐낼때까지 어땟을까 더 궁금해지게 만들기도 했다. 분명 호흡이 긴 책이었지만 미래에는 이렇다 하는 그 짧은 문장과 과거에는 그랬다 하는 문장들 때문에 숨이 조금 덜 막혔다.


초반부의 아일린은 분명 이상한 이미지였지만, 다 읽고난 지금은 아일린이 마치 친구처럼 느껴진다. 자기혐오가 가득하고 비틀린 아일린.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했고, 비호감인 주인공임에도 계속 지켜볼 수 있는 이유는 아일린 속에서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름마저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을 리베타를 통해 잠깐 맛보고 영원히 실현한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가든 거짓으로 살아가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든 적어도 아빠와 살때보단 자유롭고 솔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가 끝난 후 내 앞에 나타난 게 천국으로 직진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당신도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헛디딤과 뒤틀림이 적절히 예비된 옳은 길로 들어섰다고 믿는다.' - 357p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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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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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


띠지의 묘한 문구 때문에 궁금해졌던 게 사실이다. SF물에 로맨스라니 혹시 안드로이드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전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섣불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색다른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아마가이 치히로에겐 허구를 사랑했던 부모님이 있었다. 현실에서 느끼는 공백을 메우고자 가상의 아내, 가상의 자식에 대한 기억이나 가상의 멋진 추억거리를 담은 의억(義憶)을 사는 부모님. 하지만 어린 주인공에게는 가상의 기억을 주입시키지 않았다. 그것이 주인공 부모의 교육방침이었다. 하지만 가상의 기억인 '의억'만을 좇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사랑하는 방법도, 사랑받는 방법도 모른 채 자랐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의 기억에서 통째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자 '의억'에 증오를 품게 된 치히로는 생각한다. 의억으로 자신의 추억을 채우기보다 모든 것을 없애버리자고.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것을 채우기보다 채울 수 있는 그릇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발상으로 주문하게 된 기억을 지우는 약 '레테'.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주인공에게 온 나노로봇은 레테가 아닌 '그린그린'이었다.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한다는 나노로봇 '그린그린'. 결국 카운슬러의 실수로 치히로에겐 원하지 않았던 추억이 강제로 생겨버린 셈이다.


'그린그린'의 영향으로 경멸해 마지 않았던 허구의 추억이 생긴 치히로에겐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소꿉친구가 생겨났다. 나쓰나기 도카라는 소꿉친구는 가족이자 연인의 포지션으로 암울했던 과거에 찬란한 빛을 불어넣어 주었다. 치히로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생겨난 가장 이상적인 소꿉친구. 치히로는 조작된 기억이라는 걸 알면서도 '의억' 속 나쓰나기 도카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한 순간, 거짓말처럼 도카가 치히로의 앞에 나타났다. 치히로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도카가.


도입부를 읽으며 과연 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고.. 아마 소설 속 세계에서 산다면 나도 엇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알츠하이머의 치료법을 연구하다 인공기억에 대한 기술력이 한없이 높아졌다는 세계관부터  그럴듯하며 왠지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나. 어쨌든 인공기억인 '의억'이 넘쳐나는 시대에 의억을 증오하는 주인공은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인공 기억을 맹신하고 멋대로 기억을 조작하는 부모님을 보며 치히로는 자신의 소년 시절 기억을 무로 돌리고자 한다. 아무것도 없이 모두 떨쳐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느낌을 원했을 것이다. 종종 나도 수많은 정보나 선택의 기로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하지만 치히로에게 배달된 것은 기억을 지우는 레테가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줄 가상의 기억이었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타인이 만든 가공의 이야기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 너의 이야기 20p


의억의 존재를 증오하던 치히로에겐 처음으로 주입받은 의억이었다. 소꿉친구라는 도카는 치히로의 원래 기억 속 틈틈이 덧입혀져 사소한 설정까지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서 작가의 잔잔한듯 세밀한 묘사가 놀라웠다. 주입받은 의억이 원래 기억보다 잘 잊히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긴 했지만 정말로 추억을 그려낸 듯 아름답게 나타내고 있어서 순간 이 소설이 그냥 평범한 로맨스가 아니었나 착각할 정도였다.


어쨌든 사소한 것까지 탄탄한 기억은 치히로의 머릿속을 촘촘하게 파고들었지만, 분명 도카는 없는 사람이다. 의억의 모델을 실재하는 사람으로 삼는 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던 것을 한번에 덮어버리듯 치히로는 완벽한 도카의 모습을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이후로 치히로의 감정은 부정과 기쁨의 연속이었다. 완벽한 의억 속의 도카가 수상하기 짝이없는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지만, 치히로가 도카의 '의억'을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도카를 거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를 믿고 싶지 않은 마음과 믿고 싶은 마음. 정말로 도카와 함께 한 기억이 실제 과거였나 증거와 사례를 찾아가는 사이에도 믿고 싶은 쪽으로 마음의 추가 기울었다. 하지만 20살의 여름, 거짓말처럼 찾아온 그녀가 20일을 함께 보내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후, 중후반부에 배치된 반전격의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준비했음에도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도카의 정체가 귀신이나 망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모두 틀렸다.)


미아키 스가루의 전작을 읽으며 받았던 느낌이 좋아서, 망설임없이 도전했던 소설인데 이번에도 너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내게도 의억이 심어진다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재밌었고, 주인공이 과연 도카의 기억을 지울 것인가 남길 것인가하는 결말을 추측해보느라 더 빠르게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청춘로맨스물 같이 풋풋한 감성이 여기저기에서 묻어났고, 촘촘하게 맞춰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동안 청량한 여름같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결말 또한 나름 좋았다. 치히로에게 도카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왔던 것처럼, 내게도 이 소설이 색다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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