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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소녀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6월
평점 :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손' 이야기로 첫장을 여는 소설 '마녀의 소녀'. 모르는 우화였지만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느 노부부가 손님에게서 받은 원숭이 손에게 큰 돈인 200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하자 아들이 죽어 200 파운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뒤, 아들의 죽음에 상심이 큰 아내의 성화에 남편은 원숭이 손에게 아들이 살아돌아오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러자 갑자기 문을 똑 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아들이 돌아왔다며 반색하는 아내와 달리 무언가 꺼림칙한 남편은 아내가 문을 열어주러 간 사이 원숭이 손에게 소원을 취소해달란 말을 하게된다. 그렇게 문을 연 곳엔 아무도 없었다는 원숭이 손의 우화. 그 이야기를 주인공인 나린이에게 말해준 건 짝궁인 진희였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부터 글의 분위기를 단숨에 휘어잡는 몰입감 때문에 그리고 소원이 뭐냐고 묻는 은근한 물음에, 무조건 재밌겠다는 느낌이 왔다. 아주 드물게 첫 장부터 내 취향을 다 때려넣어 재밌겠다라는 느낌이 오는 책이 있는데, 이번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었다. 중간을 넘어서면서부턴 2권을 가져다두고 시작하는 건데 폭풍 후회가 될 만큼. 이 책의 장르는 미스터리 로맨스다. 하지만 앞부분을 보면서 이게 정말 로맨스가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인 나린이가 빈 소원이 바로 '사랑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소원을 빌게 된 당시 나린이가 좋아하던 사람은 혜정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는 같은 반 남자아이 동준이었고, 대가가 있었다는 게 문제다.
"내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그래? 좋아, 딱 사흘 후면 그 소원, 이루어질 거야."
진희가 말했다. 평범한 일상을 전하는 심상한 투였다. 사흘 후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니..? 에이, 농담이겠지. 그런데 진희가 정색하고 나직이 속삭였다.
"단, 대가가 있어. 나도 책임 못 지는 대가. 그래도 해 볼래?" - 21p
진희의 말을 가볍게 생각했던 나린이는 대가가 뭐라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진희에게서 소원을 이뤄줄거라는 헝겊 주머니를 받아오게 된다. 소원을 이뤄주는 지니의 정체는 빨간 양호와 사람을 빼닮은 인형 등 소원을 이뤄준다는 주술에 쓰일 것들이었다. 꺼림칙한 나린이는 주술을 그만둬야하나 하지만 진희에게 홀린 듯 인형의 배를 가르고 자신의 피를 떨어뜨려 주술을 온전히 치르게 되고 마지막으로 인형을 태운 재까지 먹어버린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 후, 혜정이와 헤어졌다는 동준은 나린에게 꽃다발을 주며 고백하고 나린이는 얼떨떨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자꾸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혜정이가 SNS에 나린이를 저격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살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솔직히 이제껏 책을 읽으며 하드보일드 소설도 꽤 봤었는데 이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그 때는 주로 징그럽고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괴담에 나올 법한 일이 연이어 터지는 통에 정말 재밌으면서도 무서웠다. 거기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동요 '종소리'가 기억나지 않아서 찾아봤다가 더 무서워졌다. 분명히 어렸을 땐 흔치않은 단조의 음악이라서 좋아했던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들으니 섬뜩함이 두 배로 증가하는 기분이었다. 혜정이가 죽은 뒤 친구의 남친을 빼앗은 '통수녀'가 되어 인터넷에서 신상이 털리고 공공의 적이 되는 것도 무서웠지만 마치 귀신이 벌이는 것같은 기현상 때문에 제대로 공포물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 읽어서 그런지 종종 소름이 돋기도 했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희망의 앞날을 알려주려
딩동댕동 딩동댕 들려온다
바람결 따아라 저 멀리서 - 55p
그렇다고 해서 미스터리한 게 그냥 분위기만으로 끝이냐하면 그건 아니다. 마녀인 진희 이외에도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나린이를 지켜주는 현민, 이상하게 마녀의 손아귀에서 비껴가며 나린이를 지켜주는 동준, 그리고 마녀의 또 다른 희생자 혜정. 여러인물들이 얽혀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들을 촘촘하게 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호루스의 눈에 관련된 마녀의 저주가 대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일단 1권에선 나오지 않는다. 미스터리만 진하게 남긴채 아마 2권에서 폭풍같이 풀어갈 것 같은데.. 그래서 책을 읽을 예정이라면 꼭 1권 옆에 2권을 가져다두고 읽어야한다고 말해두고 싶다.
1권에서는 대충 1/3쯤을 넘기면 공포물 분위기가 좀 옅어지고, 그 때부턴 미스터리하면서 살짝 로맨스 기운도 풍기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점점 멘탈이 튼튼해지는 나린이의 옆에 서로 남자친구라고 하며 나린이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달려오는 현민과 동준. 동준이는 처음부터 복잡하게 얽혀서 아마 조연이 될 것 같고, 현민이 남자주인공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저런 비밀있는 캐릭터를 좋아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나린이와 얽히는 일도 점점 많아져서 앞으로 러브라인도 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초장에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감정선은 착실하다.
마녀가 들어주는 소원은 총 세 가지. 1권까지 사용한 사용한 소원은 둘.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사용할지, 혹은 사용하지 않을지. 궁금한 포인트가 너무도 많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하지 못하는 포인트들도 아직 많다. 아직 제목의 미스터리가 밝혀지지 않은 '마녀의 소녀'.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이능력과 괴담, 신화와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나와서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사건 요약을 해보라고 하면 대충 책의 절반정도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휘몰아 침에도 산만하지 않아서 작가님의 필력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도 반전 포인트가 많아서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2권도 분명 만족스러울 것 같다. 하루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