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여왕
가와조에 아이 지음, 김정환 옮김 / 청미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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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굉장히 특이한 소재의 소설이다. 제목이 '수의 여왕'에다가 '수학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서 궁금해졌다. 수학이라고 해도 소설이니까 읽을만하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이 결국 수포자의 영혼을 이겨버려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반부터 좀 박탈감이 들었던 부분은.. 꼬마애들이 속성으로 수학을 배워서 계속 소인수분해를 한다는 것. 1과 자신의 수 이외에는 나누어떨어지지 않는다는 본디의 수, 메르세인 왕국의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운명수, 축복받은 수 등등 생소한 설정과 용어가 많이 나오는 소설은 장벽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잘 읽힌다.


사실 수학적인 이야기를 모두 제거하고 본다고 하면, 소설은 학습+청소년 소설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운명의 수'를 가지게 되는 세계, 다른 사람의 운명의 수를 계산하는 건 철저히 금지된 일. 하지만 메르세인 왕국의 왕비는 운명의 수를 거울을 통해 알아내고 그를 토대로 식수령을 보내 해당하는 운명수를 가진 사람을 저주해 죽인다. 그리고 철저히 쓸모있는 도구로 왕비의 양녀가 된 열세 살 나쟈는 사랑하는 언니이자 왕비의 친딸인 비앙카가 왕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나쟈는 왕비의 거울 속에 갇혀있는 요정을 구해내고, 왕비의 악행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낙원으로 향한다.


소설은 곳곳에 숫자와 계산 이야기가 빼곡히 나온다. 피보나 풀에서도 설마설마 했는데 피보나치 수열이 나오고, 제곱수에 소인수분해는 물론이고 순환수 등등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이야기가 나와서 좀 버겁기도 했다. 나중엔 계산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띄엄띄엄 건너띄고 읽기도 했다. 그렇다고 소설이 재미가 없느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왕비의 딸인 비앙카 캐릭터는 물론이고 주인공인 나쟈의 캐릭터성도 괜찮았고 설정도 흥미로웠다. 모험판타지 같은 느낌이라서 취향에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단 한가지 장벽은 숫자 이야기였을 뿐. 어쨌거나 거울뒤에서 계산 일을 하는 요정들과 인생수를 계산하는 동안은 밖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것이나, 운명수가 바껴서 몸의 모습도 함께 바뀌는 비앙카 이야기 등등 흥미롭게 본 부분이 많았다. 이야기에 수학적 지식을 적절히 녹여내어, 수학에 흥미를 일으키는 독특한 느낌의 소설이라서 수학을 좋아한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물을 단순화해서 파악하고 싶은 유혹은 한시도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문을 품는 것,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지요.

특히 만사가 뜻대로 풀리고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품기가 어렵기 마련입니다. -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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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 있게 사는
권미주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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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로 40대를 살고 있는 저자의 에세이. 제목처럼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한다. 아무튼 잘 살고 있고, 혼자라도 살 만하다고. 20대 중반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독립했고 그때부터 계속 싱글로 지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사회가 보는 비혼 여성,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습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혼자 어떤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 그렇게 일상에서 생각하고 일어나는 일들. 그 외에도 개인심리상담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뭔가 상담 받는 기분도 느낄 수 있기도 했다.


혼자 산다고 말하면 으레 듣는 질문들이 있다. 외롭지 않느냐라는 물음, 멀쩡한데 왜 싱글이냐는 물음, 계속 혼자 살면 고독사 문제는 어쩔거냐는 무례한 물음까지. 비단 이것들 뿐만이 아니라 고깝게 느껴지는 시선 이외에도 어딘가 부러워 하기도 하는 복잡미묘함의 대상인 비혼. 사실 우리 사회에서 비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점점 자신의 삶에서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혼자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식이 생기면서 매체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비혼주의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전히 복잡한 시선의 대상이긴 하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어느 때는 힘들고 또 어느 때는 행복한 그런 사람임은 같다.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있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 그렇게 말하는 문장이 와닿았다. 혼자서 준비하고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은 건 분명 사실이지만, 결혼을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절대적 확신은 없다. 오히려 결혼을 해서도 외로움을 호소하며 상담신청을 해 오는 사람들, 아이들을 키워내니 뭘했나 싶어 우울해진 기혼자들, 성생활의 부재로 고민하는 부부 등등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가치있게 산다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그 모습이 비혼이든 기혼이든.. 어쨌거나 비혼주의자를 택한 저자는 명상을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1년에 몇 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기도 하며, 미래에 비혼주의 공동체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몇 년전에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비혼주의, 책을 읽다보니 몇 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 지 궁금하기도 했다.


혼자 잘 있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나와 내가 잘 만날 줄 알아야만 

싱글의 삶은 더욱 괜찮은 삶이 되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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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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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조앤 롤링을 제친 무서운 신인의 소설 '숲과 별이 만날 때'. 별 정보 없이 판타지라고 들었기에 모험판타지인줄 알았다. 몽환적이고 반짝이는 표지가 너무 예뻐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고. 그런데 책을 펼쳐들고 시작된 이야기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우기는 한 소녀 얼사와, 암을 앓고 유방과 난소를 적출한 조류학자 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달걀장수 게이브 세 사람의 힐링 판타지물이었다. 아무래도 해리포터를 제친 신인의 소설이라고 해서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인줄 생각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던 책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조가 숲 속에서 바베큐를 해먹다가 자신이 큰곰자리에 있는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하는 소녀를 만나고, 숲 속에 혼자 있는 소녀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음식을 나눠주면서 시작한다. 요정이 버리고 갔을 지도 모르는 아이, 바람개비 은하에서 왔다는 정체모를 소녀라는 초반의 내용 때문에 소설은 더욱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몸의 주인이 이미 죽었고 이 몸을 잠시 빌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점이나 다섯개의 기적을 모두 보아야 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녀의 말 덕분에 판타지 느낌도 물씬 났다. 혹시 소녀, 얼사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됐고. 책의 중후반부쯤에는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한다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일이 생기기 전에 얼사 본인이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등 일이 벌어지니 능력이 왜 하필 이런 식으로 능력이 발동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얼사와 조, 게이브 세 사람이다. 새 둥지를 관찰하는 조류학자로 숲 속에 잠깐 머무르고 있던 조는 매번 계란을 사기 위해 게이브와 마주치면서도 접점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의 앞에 외계인 소녀가 나타나며 상황은 변한다. 얼사는 조와 게이브 두 사람의 집을 왔다갔다하며 두 사람을 계속 이어놓고, 방치된 얼사를 경찰에 신고하고자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망가기도 한다. 때문에 점점 타의에서 자의로 얼사를 맡기 시작한 두 사람은 점점 가슴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준다. 하지만 세 사람을 덮쳐오는 위기는 길을 비껴가지 않았다.


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본인도 죽을 뻔 했던 조와 기막힌 가족사의 희생양이자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있는 게이브. 그리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사랑스러운 얼사. 얼사가 기적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세 사람은 숲 속의 둥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상처받아온 마음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얼사가 중개자가 되어 풀어주기도 하고, 두 사람끼리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조와 게이브 두 사람이 얼사 문제때문에 골머리를 앓을때면 내 이야기 하는거냐며 천역덕스레 묻던 얼사가 귀여웠다. 


소녀의 정체가 정말 외계인인가 아니면 조와 게이브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똑똑한 꼬마일 뿐인가하는 문제는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낼 수 있다. 명확히 못을 박아두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얼사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는 쪽으로 결론을 내기로 했다. 다 읽고보니 소설은 분명 일반적인 판타지소설은 아닌 것 같다. 외계인이 나와서 판타지인가 했다가, 조와 게이브의 로맨스인가 했다가,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져서 스릴러인가 했다가, 결말부에서는 어찌됐든 상관없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힐링 판타지에 훨씬 더 가까웠던 소설. 조용하고 몽환적인 숲을 절로 떠올리게 될 만큼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읽히는 소설이라서 좋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엄마가 많이 편찮으실 때 

태비가 날 억지로 데리고 나와서 이상한 일들을 시켰어요.

나의 우울한 작은 나라의 국경을 벗어나면 

크고 멋진 세계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면서. - 4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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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1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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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두툼한 책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2권으로 마무리되는 소설 '부적'. 세계적인 이야기의 거장 스티븐 킹과 피터스트라우브가 함께 공동집필한 소설이라고 한다. 처음 읽기 전부터 몹시 두껍고 환상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길래 기대를 많이 한 책이었는데, 후에 알고보니 1984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두 공포 작가들이 뭉쳤다는 사실에 많은 화제가 됐던 책이라고. 스티븐 킹의 소설은 몇 종을 읽어보았지만, 피터 스트라우브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아서 더 궁금해졌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왜 하필 부적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미국작가가 말하는 부적은 무슨 뜻일까 싶기도 했고.


소설의 주인공은 한 소년이다. 평범한 소년처럼 보이지만, 이 소년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이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소년의 이름은 '잭 소여'로 톰 소여의 모험에서 영향을 받은 스티븐 킹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때문인지 용감하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헤매거나, 방랑자 잭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생각보다 오래된 작품이었지만 상상력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현세계와 다른 이세계 테러토리. 두 세계를 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두꺼운 책장을 계속 넘기게 했다.


한 편으로는 뒤틀린 동화같고, 또 한 편으로는 환상적이기도 했으며,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 이세계 '테러토리'. 테러토리는 현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긴 트위너들이 사는 세계로, 현 세계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현 세계에서 주인공 잭 소여의 어머니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테러토리에서 그녀의 트위너 또한 위중한 상태였으며, 현 세계에서 잭과 그의 어머니를 위협하는 사람이 테러토리에서도 동일인이라는 것 등등이 연관되어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테러토리는 중세의 어느 판타지마을처럼 왕정제이며 오염되지 않은 시골마을 같이 깨끗한 공기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세계를 다스리는 여왕은 잭의 어머니이자 트위너. 하지만 여왕의 아이여야 했던 잭의 트위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문의 노인인 스피디를 통해 늘 백일몽이라고 생각했던 테러토리의 풍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잭. 그는 스피디에게서 마법의 주스를 받아들고 어머니와 테러토리의 여왕 모두를 살리기 위해 서쪽바다로 여정을 떠난다. 이쯤에 와서야 제목인 '부적'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스피디는 부적이 크리스탈 공처럼 생겼다고 말하며 책임이자 십자라가는 알쏭달쏭한 소리를 한다. 


너는 여정을 시작할 만큼은 알고 있단다. 부적을 찾게 될 거다, 잭.

그것이 너를 끌어당길 테니까. - 117p


현 세계와 테러토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두 세계를 이동하는 건 오로지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을 통해서만 해야한다. 중간에 마법의 주스를 마시게 되면 상응하는 땅 위로 이동된다는 설정때문에 잭의 여정은 고단하기만 하다. 자신의 처지를 숨기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내가며 히치하이킹을 하고,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무 연고도 없는 테러토리에 가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신을 숨긴다. 스피디가 전해준 기타피크를 통해 조력자를 만난 것도 잠시, 잭의 뒤를 추적하는 모건 슬로트를 피해 다시 현세계로 도망쳤다가 테러토리로 돌아왔다가 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해보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새로운 세계와 기존세계를 넘나들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두 세계의 어머니를 구해야하는 책임. 그 속에 어린 소년의 불안함과 고민,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있어서 절로 주인공의 여정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는 주인공의 길이 굉장한 고난길이라 계속 응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1권의 마지막에 등장한 늑대인간 울프도 든든한 조력자가 될 줄 알았더니.. 어쨌든 잭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궁금해진다. 두 세계의 어머니를 어떻게 구하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될 지 2권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얘야, 아무도 세상의 짐을 혼자 질 수는 없다고 말하지 않겠니?

너도 할 수 없고, 다른 누구도 혼자 그 짐을 다 질 수는 없단다.

왜냐하면 말이지, 첫째, 세계를 짊어지려고 하면 일단 네 허리가 부러질 것이고,

그러면 기분이 팍 상해 버리지 않겠니? - 4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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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 여인의 초상화 속 숨겨진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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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에 등장한 여자들의 이야기만 모은 책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라는 마크와 더불어  부들부들한 표지의 촉감, 홀로그램 박 덕분에 첫인상부터 몹시 기대되는 책이었다. 더구나 목차를 쭉 훑어보고 난 후에는 궁금해졌던 이야기가 있었다. 지난 1000년의 회화 여정 속에서 다양하고 선명한 여정을 남겼다는 여인들. 책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엔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알고 있을 사람도 있었고, 이 작품의 모델이 따로 있었구나했던 그림도 있었으며, 명화 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었구나 싶었던 그림도 있었다.


책의 첫 장은 폼페이 벽화에 그려진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의 그림으로 시작한다. 서기 55~7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하는 프레스코화. 하지만 상태가 굉장히 좋아보여서 놀랐다. 그리스 시인 사포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그림으론 처음만나는 것이라 첫 장부터 확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대부분 시대순이라고 보면 된다. 고대의 여인들을 그린 그림들부터 시작해 마지막엔 지극히 현대적이며 개성적인 그림들까지. 여인의 발자취들을 따라가다보면 시대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또 그 시대의 가치는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표지를 장식한 그림 '오필리아'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등장인물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죽음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비극적인 죽음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한 시대,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몇 시간동안 차가운 물 안에서 고생한 오필리아의 모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더 놀라웠다.


예술이 시작된 이래로 여성은 수많은 그림에 등장해왔다. 나신의 여인은 여신과 님프 정도만 그릴 수 있었을 때도 있었고, 신과 종교적인 그림은 이상적인 신체비율로만 그려야 할 때도 있었으며, 평범하기만 한 일상 그림이 파격적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 모든 시대를 지나 누구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은 사회의 소외계층이 등장하고 점점 더 개성있는 모습의 여인 그림들이 등장하는 걸 보니 새삼 많은 발전이 있어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그림이든 사회의 시선이든. 어쨌든 개인적으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깊이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몇몇 알고있는 그림도 있었지만 여성의 모습에 집중해서 그런지 새롭게 보는 느낌이었고, 그림을 그린 화가의 상황이나 당시의 시대상들도 적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그림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배경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읽고 정보를 알아갈 수 있어서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그녀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지금의 우리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사랑에 아파하고 때로는 비참하고, 때로는 환희에 넘쳤다. - 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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