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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27살의 젊은 여성 데이지. 암 치료 후 행복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던 어느 날, 데이지에게 남은시간은 6개월 뿐이라는 잔혹한 선고가 내려진다.
책의 초반부엔 누가 이 부부에게서 행복을 앗아갔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이 간간히 비춰진다. 데이지와 잭은 보통의 부부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서로 사랑하며 챙겨주고 챙김받으며 소소한 행복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초반 이런 분위기는 후의 반전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암치료기념일에 데이지가 재발한 암에대해 다시 말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시 재발한 암. 손쓰지도 못하고 그저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그 상황을 데이지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한 달 뒤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별로 망설임없이 대답했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데이지는 상황을 부정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데이지는 젊고 충분히 미래를 꿈꿀수 있는 나이였다. 잭 역시 마찬가지다. 젊고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데이지는 생각한다. 내가 없으면 잭은 어떻게 될까?하고.
내가 죽으면 누가 그 양말을 치워줄까?
내가 죽으면 누가 잭의 어깻죽지 바로 아래를 긁어줄까?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창문 틈을 막아주고, 바닥 업자를 부르고 바닥을 쓸고, 도시락을 싸고, 청바지를 찾아주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장을 보러 가고, 침대 정리를 하고, 잭이 매번 식사로 망할 시리얼을 먹지 않도록 해줄까? - 136p
마침내 남은 시간동안 해야할 일을 찾은 데이지는 잭의 아내가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 늘어놓는다. 무려 24가지나 되는 조건은 그녀의 엉뚱함을 보여주면서도 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라는 걸 알게해주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자신이 사라지고 없더라도 끝까지 잭의 아내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과 그의 행복을 위해 새로운 아내를 찾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침내 잭의 새 아내 조건에 맞는 완벽한 여자가 나타나자 데이지는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분명 남편을 위한 일일텐데 잭의 입에서 그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점점 힘들다. 데이지는 곧 죽을테고 남겨진 두 사람은 미래가 있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책의 내용은 다소 서글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은시간을 쓴다라고 하는 것부터 유쾌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책 표지와 띠지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더 서글펐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렇게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데이지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였기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암울한 상황에서 신세한탄을 하기보다 남편의 새아내 찾기에 신경을 쓰고 남은 사람들이 이별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줄만큼 강인한 여자이기도 했고. 청승맞기보다는 엉뚱하고 유쾌한 구석까지 있는 데이지 덕분에 책은 걱정했던 것 보다 축축 쳐지지도 않고 담백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용이 막바지로 향해갈 수록 데이지의 혼란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홀로 남겨질 잭을 위해 아내를 알아보며 갈등하면서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울컥했다. 당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여서일까 데이지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더욱 더 잘 전달되고 심정이 이해되었기에 더욱 더 공감하며 읽어갈 수 있었다. 다 읽고나니 죽어가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마지막에서야 데이지가 감정을 온전히 드러낸 부분, 잭과 마지막으로 대화하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데이지의 마지막부탁은 말할것도 없고. 어쩐지 웃음이 나오는 부탁에 정말 데이지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둘만 이해할 수 있는 장난을 하며 홀로남은 잭이 데이지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놓치않을 때 다시 울컥했다.
글을 읽는 내내 몇 주전 병원에 다녀온 경험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병이 찾아오면 그 병을 가진 당사자도 힘들지만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든 점이 많은 것 같다. 시한부 인생이라면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는 생각만해도 언제나 마음아픈데. 어떤 상황이든 곁에서 사람이 떠난다는 건 슬픈일이다.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죽을 수도 있지만 데이지는 적어도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라고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던 나는 그래서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슬픈 결말이 될 수 밖에 없지만 가끔 이런 글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삶과 죽음 상실과 사랑에 관하여.. 이런 내용은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살아갈 수 있는 날이 6개월이라면 어떨까? 나도 데이지처럼 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뭘까?하고. 어딘가 엉뚱하고 유쾌했던 27살의 데이지. 나도 그녀가 어디에 있든지 웃기를 바란다.

'애도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기분이 나아졌다 나빠졌다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울한 때보다 즐거운 때가 좀 더 길어지기를 바란다.' - 4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