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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그윈플렌 커버 에디션 A) - 이석훈 & 규현 표지디자인 ㅣ 웃는 남자 (그윈플렌 커버 에디션)
빅토르 위고 지음, 백연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콤프라치코스'는 중국인들이 목재를 다루는 것처럼 인간을 다루는 집단이었다. 그들이 어린 생명에게 얼마나 묘하게 손을 댔던지 아비도 자기 자식을 알아 보지 못할 지경이었고, 아이의 얼굴만이 아니라 기억까지도 없애 버리는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
콤프라치코스의 손을 탄 수많은 아이들 속에 우리의 주인공 '그윈플렌'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현재 그들에게 버림받고 포틀랜드 해안에 버려진 상태였다.
아이를 버리고 떠난 것에 신이 노여워 한 것일까? 콤프라치코스는 얼마 안 가 바다폭풍을 만나게 된다.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에 회개한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서명을 적은 양피지를 호리병에 넣어 바다에 띄우곤 바다폭풍과 함께 사라지는데... 후에 그 양피지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된다.
그 시각, 홀로 버려진 그윈플렌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 눈 속에 파묻혀 죽은 한 여인을 발견한다. 여인은 죽었지만 여인의 품안에 있던 아기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고, 그윈플렌은 주저없이 아기를 자신의 품에 거둔 후 또 다시 목적지없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만약 이대로 걷고 걷다 배고픔과 추위에 못이겨 쓰러졌다면 우리는 '웃는남자' 그윈플렌의 전성기를 못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맙게도 우르수스와 호모(늑대)의 눈에 띄게 되고, 그들에게 거두어지면서 노인 하나와 두 아이, 그리고 늑대 한 마리로 구성된 가족은 두터운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우르수스의 츤데레 면모를 많이 볼 수 있다.)
항상 학대만 받다가 모처럼 따스함을 느낀 아이에게 전해지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우르수스가 문득 화를 내듯 무뚝뚝하게 말했다.
"젠장, 어서 먹으라니까!"
"그러면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잡수실 것이 없잖아요?"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나 다 먹어라, 불한당 같은 녀석! 너에겐 그렇게 많은 음식이 아니야 나에게도 넉넉하지 못한 양이니까."
아이는 포크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러나 더는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르수스가 부르짖듯 고함을 질렀다.
"어서 먹으라니까! 나 때문이냐? 누가 너에게 날 걱정해 달라더냐? 이봐, 가난뱅이 교구의 맨발 벗은 못된 새끼 사제 녀석아, 어서 다 먹어. 너는 먹고 마시고 잠자러 이곳에 온 거야. 그러니까 먹어, 그러지 않으면, 너와 너의 우스꽝스러운 꼬마 년을 쫓아내겠어!"
우르수스가 위협하자 아이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p276)
엄청 무뚝뚝하고 말투도 험악하지만 항상 츤츤모드인 우르수스, 그리고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르는 그윈플렌과 갓난 아기에서 어엿한 소녀가 된 데아. 그들은 떠돌이 곡예사로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을 하며 돈을 벌었는데, 특히나 그윈플렌의 인기가 대단했다. 귀밑까지 찢어지도록 벌어지는 입술과, 저절로 접혀 눈까지 닿는 귀, 인상을 쓸 대 안경이 그려질 만큼 기형인 코, 바라보면 그 누구라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하는 막간극 '정복된 카오스'도 단연 최고의 인기였는데 막이 내려지면 사람들은 광란적으로 그윈플렌을 다시 불러냈고, 모두들 "정복된 카오스를 보셨나요?" 그러면서 그윈플렌을 향해 달려가기도 했다. 무사태평한 사람들, 우울한 사람들, 나쁨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웃으러 왔다.
런던에서 공연을 하던 어느 날, 처음으로 '귀족을 위한 전용칸'에 누가 앉아있는 모습을 본 그윈플렌. 그 여인은 다름아닌 앤 여왕의 자매이자 여공작인 '조시안'이었다. 그윈플렌은 이미 데아와 혼인을 한 사이었지만 포근하고 생생한 피부, 대리석상의 정교함과 물결의 일렁임으로 표현되는 몸매, 고결하고 냉정한 얼굴, 세련되고 우아하고 불가해한 매력을 지닌 조시안을 보고는 그만 설레버린다.
그윈플렌만 그녀에게 유혹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던지, 자신의 시종을 시켜 그에게 쪽지를 보낸 조시안. 그 쪽지엔 [너는 혐오스럽고 나는 아름다워. 너는 어릿광대이고 나는 여공작이야. 나는 최상류인데, 너는 최하류지. 나는 너를 원해. 나는 너를 사랑해. 내게로 와.] 라고 적혀있었다.
이 사실도 참 놀라운데 더 큰 놀라움이 그윈플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 옛날, 바다에 동동 떠다니던 양피지가 발견되면서 그윈플렌의 과거사가 드러난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오늘, 우리 주님의 1690년 1월 29일.
인적 없는 포틀랜드의 해안에 열 살 된 아이 한 명이 냉혹하게 버려졌던 까닭은 아이가 배고픔과 추위, 고독에 의해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는 두 살의 나이에, 지극히 자비로우신 제임스 2세 폐하의 명에 의해 팔렸다.
아이는퍼메인 클랜찰리 경으로, 클랜찰리이며 헌커빌 남작이고 이탈리아의 코틀레오네 후작 및 영국의 중신이자, 고인이 된 린네우스 클랜찰리 경과 역시 고인이 된 그의 부인 앤 브래드쇼의 아들로 단 하나뿐인 적자이다. (중략) 우리들은 아이를 웃는 가면, 즉 '마스카 리덴스'로 만들겠다고 결정했다. 라고 적힌 양피지의 내용 덕분에 떠돌이 곡예사에서 클랜찰리 경으로 급 신분상승을 하게된 그윈플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윈플렌에게 조시안과 자신의 새로운 신분은 아주 큰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윈플렌이 아닌 클랜찰리 경이 되어버린 그의 앞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데아와 우르수스와의 관계, 그리고 조시안의 관계는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책을 덮고 난 후에도 큰 여운을 남기는 『웃는남자』.
괜히 빅토르 위고의 명작이라고 불리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되면 꼭 뮤지컬도 접해보고 싶다. 이 많은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추리고 연기할지, 넘버는 또 얼마나 좋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