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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에 미쳐서
아사이 마카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1
캔슬은 무섭습니다.
그중에서도 기대를 품고 매달린 작품 위로
난데없이 떨어지는 관계악화적 캔슬이 제일 무섭습니다.
인쇄 데이터까지 출력해 놓은 단계에서 얻어맞은 일격은
회복을 기약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난감했습니다.
2
오사카에서 태어난 작가는
결혼과 동시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일을 그만두었지만
소설가의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여 50세의 나이에 데뷔.
5년 만에 전국 서점원이 뽑은 시대소설 대상과
나오키상을 동시에 석권합니다.
3
어릴 때부터 유독 식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데뷔작에서는 꽃을 재배하는 종묘 가게의 부부 이야기,
두 번째는 센다기초에 거주하는 정원사 이야기를 썼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한 바 있지요.
그 세 번째 작품이 『야채에 미쳐서』라는 소설입니다.
4
전국의 쌀과 야채가 모이는 ‘천하의 주방’ 오사카.
막부의 비호로 이곳의 야채 유통을 독점하던 상인회가,
먹고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재배한 야채를 팔려는
농부들을 탄압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에 불합리한 유통을 개혁하기 위하여 나타난
‘스카탄(얼간이, 라는 뜻의 오사카 사투리)’이 있었으니,
바로 상인회 대표의 큰아들이었습니다.
5
도매상과 생산자 사이의 알력이 낳은 소동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테마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도스토예프스키적 전개는 역사소설의 매력과
시대소설의 재미, 양쪽을 마스터한 작가의 장기라 하겠습니다.
6
한편 스카탄인 그를 못마땅해하던 주인공 지사토가
그 행동의 원천이 되는 정의로움을 깨달으며 전개되는
로맨스의 행방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오사카 도매시장 한복판에서
경매 중간에 대뜸 사랑을 고백하는 박력무쌍한 광경에는
누구라도 만족할 거라는 점만 말해둘까요.
마포 김 사장 드림.
덧)
아울러
『야채에 미쳐서』는 Osaka Book One Project 선정작입니다. 이 상은 ‘한 군데 서점의 힘으로는 어렵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하여 평소 라이벌 관계에 있던 도매상, 대형서점, 독립서점이 함께 만든 문학상입니다. ‘독자들이 정말로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을 팔자’가 모토이며,
(1) 오사카와 관련된 이야기일 것(오사카 진흥을 위하여)
(2) 문고본일 것(비교적 저렴한 가격)
(3) 저자가 살아 있을 것(저자와 함께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이 세 가지가 선정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Osaka Book One Project에는 다른 지역판 서점대상에는 없는 특색이 있습니다. 수상작의 판매 수익 일부를 오사카의 아동 시설에 책으로 기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기증하는 책을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직접 신청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책을 기증하기 위해 기부금을 받는 형식이 아닌, 책을 팔아서 기금을 마련한다는 발상이 상업도시 오카사의 마인드를 보여주는 듯하여 재미있지요.
이러한 사해동포적 취지 덕분인지 대상으로 선정이 되면 증쇄 때마다 수만 부 단위가 걸릴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사카 진짜 책 대상>은 매년 7월 25일 판매를 시작하여 이듬해 1월 31일까지 오사카의 모든 서점에 진열되는데, 선정작이 발표되면 오사카 서점의 풍경이 대대적으로 바뀌는 장관이 연출됩니다.
역대 ‘Osaka Book One Project’ 수상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회 『은전 두 관』(다카다 카오루)
제2회 『성불하지 못하고』(미우라 시온)
제3회 『야채에 미쳐서』(아사이 마카테)
제4회 『용사들에게 전언』(마스야마 미노루)
제5회 『환상언덕』(아리스가와 아리스)
아래 사진은 『야채에 미쳐서』가 선정됐을 당시의 서점 모습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 신기하게도 오사카에 가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