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박찬욱 감독을 만난 술자리에서 ‘공동 각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친절한 금자씨>를 만들 때부터 정서경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컴퓨터 하드는 공유하면서 각자 가진 키보드로 정서경이 초고를 쓰면 박찬욱이 수정하고 박찬욱이 쓴 초고를 정서경이 고치는 식으로 완성해 나간다”고 하더군요. 예컨대 정서경 작가가 “너나 잘해”라고 써놓은 걸 박찬욱 감독이 “너나 잘하세요”로 바꾸면서 명대사가 탄생한 거지요. ‘공동 각본’이라는 것은 말이 쉽지 실행하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서로에게 즉각적인 영감을 주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될 공동 작업을 출판사가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건 이승엽 선수가 개인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2015년 무렵의 일입니다. 자주 해외의 서점을 구경하러 돌아다니던 마음산책+북스피어+은행나무의 편집자는 이런저런 서점에서 맞닥뜨린 광경에서 영감을 얻어, 신간을 전면 띠지로 가리고 저자와 제목을 알 수 없도록 만들어 판매한 ‘개봉열독’(2017년 4월) 시리즈와, 한 작가의 소설 산문 편지를 동시 기획함으로써 다채로움을 조명해 보자는 콘셉트의 ‘웬일이니! 피츠제럴드’(2018년 6월)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지요.
아아 그리하여 올해로 세 번째인 ‘마음산책+북스피어+은행나무의 합동 프로젝트!’는 일찌감치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확정할 수 있었어요. 왜냐면 출판사라는 곳에는 늘 예비 저자들의 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몇 번인가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을 메일이나 칼럼의 형식으로 쓰긴 하지만,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거기에는 너무도 많은, 여러 형태의 노하우가 있을 테니까 말이죠. 세계 문학사를 찬연히 수놓은 유명한 작가들도, 이렇다 할 족적 없이 골방에서 쓸쓸히 죽어간 무명의 작가들도 모두들 자신의 글쓰기 방법이랄까 노하우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세간에 알려진 이른바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스템 밖에서 암중모색을 거듭하며 분투하다가 마침내 책을 내고 작가라 불리게 된 이들이었습니다. 어딘가에 당선되거나 유명한 상을 받거나 평론가의 상찬에 힘입어 데뷔한 경우가 아니라 ‘대관절 저 사람은 언제, 어떻게 작가가 되었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케이스 말이죠. 언뜻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싶은데 공식적인 추인을 받고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뭐가 어떻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작가들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더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저는 야구 학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하다하다 야구를 돈 주고 배우는 사람도 있구나’ 같은 말을 들을까 봐 어디 가서 자랑은 하지 않지만, 사회인 야구 시합에 투수로 등판했다가 엄청 두들겨 맞은 다음 날 인터넷을 검색하여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맨투맨으로 지도해 준다는 야구 연습실을 찾았습니다. 일산에 위치한 작은 건물의 지하실이었습니다. 이런 델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는데 웬걸, 상당히 많은 사회인 야구팀 소속 선수들이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틈에 끼어서 저도 매일 어깨가 부서져라 공을 던졌습니다. 아니, 그러다가는 몸이 상한다는 코치의 친절한 충고에 따라 허리와 손목 쓰는 법을 익혀 나갔지요.
분명히 큰 틀에서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조언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볼을 컨트롤하는 마음가짐이라거나 경기 운영의 노하우 같은 것들은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전에 비하면 시야가 한결 넓어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직접 지도한 프로 선수는 어째서 제가 타자 옆에 있으면 자꾸 볼을 놓치는지, 야구공이 똑바로 날아오면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이 왜 비행기를 못 타는지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제아무리 설명해 봐야 실감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에 비해 나보다 한참 먼저 이곳에 온 ‘고참’ 선수들은 저의 고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들도 저와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즉 쟁쟁한 경력의 프로 선수보다, 반보쯤 앞서간 고참 선수의 조언이 세부적인 면에서 저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됐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전국구적 후련함이 내포된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으로, ‘어떻게 하면 눈에 띌 수 있을까’ 하는 시장조사적 머뭇거림이 담긴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곽재식(북스피어), 도대체(은행나무), 백두리(마음산책) 작가는 따지자면 후자의 경우지요. 이들이 당신의 특보(특별 보좌관)가 되어 데뷔, 독서, 슬럼프, 창작에 관하여 세 출판사의 편집자가 던진 ‘똑같은’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글쓰기 밑천을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소상하게 들려줄 겁니다. 이론 따위는 빼고, 심플하게!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낼 수 있나요”라는 당신의 궁금증이 조금쯤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포 김 사장 드림.
덧)
아울러 ‘마음산책+북스피어+은행나무의 합동 프로젝트 제3탄 작가특보 시리즈’ 세 권을 전부 구매한 독자에게는 세 출판사 편집자가 함께 나누어 읽고 선별한 69권의 긴급 출동 서비스 메뉴얼 『어느 날 글쓰기를 물어보고 싶을 때』(비매품 특별부록)를 증정합니다.
부록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만 쓴다는 완벽주의형, 남들이 안 쓰면 내가 쓴다는 독고다이형, 글쓰기 전문가들의 온갖 자질구레한 준비 과정을 시시콜콜 밝힌 국정조사형, 애쓰지 않아도 가만히 기다리면 쓸 수 있다는 안빈낙도형, 일단 많이 쓰는 것이 장땡이라는 다다익선형,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는 시나브로형,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어쨌든 쓴다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막무가내형, 좋은 글을 주야장천 베낀다는 문장복사형 작가들의 글+책 쓰기 밑천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