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대물림 - 부모의 감정은 어떻게 아이의 삶이 되는가?
조민희 지음 / 보아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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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이란 단어에는 DNA 유전, 부의 유전, 성격-감정의 유전, 식생활 유전(가족력) 등등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부모의 업(업장)이 그대로 후손에게 이어져 그 후손이 보를 받기도 합니다.

요즘 왕사남 영화가 화제죠.

단종 이홍위의 역사는 완벽한 악의 승리이자 역적의 승리입니다.

조선의 역사를 좀 더 길게 보면 단종의 전생은 태종 이방원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국내 세계적인 전생 리딩 상담가인 박진여 전생 연구가 선생님도 비슷한 얘기를 해서 놀랐습니다.

역사에서 인과를 따라가다 보면 그게 언뜻 보입니다.

정도전은 피로 조선을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로 피의 역사가 계속 반복순환되는 게 두려웠으니까요.

그렇지만 권력의 욕심이 결국 이방원과 그의 추종세력을 움직였습니다.

그 보는 조선 역사 내내 왕실의 불안 요소가 됩니다.

갑자기 '마음의 대물림'에서 '왕사남'이야기가 나온 건 우연이 아닙니다.

부모의 욕심이 자식을 통해서 업을 짓고 보를 받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팔야식에 심의식 심층에 새겨져 결국 화를 부르는 것이죠.

아이나 반려동물들은 어떤 새로운 상황이 맞이하면 부모나 주인의 눈치를 봅니다.

이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할 수 없어서 부모나 주인에게 의지하는 겁니다.

이때 부모의 반응이 곧 아이의 반응 시스템이 됩니다.

감정은 날씨 같아서 그냥 흘러간다고 말하지만 존재는 감정에 지배를 받고 그 흔적이 마음에 남습니다.

감정은 이성보다 우선합니다.

뇌종양 수술받은 사람 중 전두엽 근처를 잘못 절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후에 보니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일에 중요도, 즉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이성은 그대로인데, 감정이 사라지자 '우선순위 판단'이란 게 감정과 함께 사라진 것이죠.

부모의 잘못된 가치 판단 체계가 아이에게 전해지면 그 아이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모 시대에는 옳았던 그 체계가 아이의 시대에선 오류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오디션에 나왔던 딸의 도전을 아버지가 매우 반대했습니다.

가수로 성공하는 건 너무 어렵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다시는 사회에서 일자리를 못 얻을까 하는 걱정이 앞섶기 때문입니다.

그 아버지는 인생에서 직업을 얻고 밥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자신의 인생을 통해 배운 것을 딸에게 강요한 것입니다.

참으로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매우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딸은 그 결과인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그저 도전하고 인생을 경험하는 과정이 더 소중했을 겁니다.

인생은 그저 경험하는 것이고 결과는 부가적인데 말입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과정은 더욱 소중합니다.

부모가 인생을 통해 얻은 결론이 진리나 명제는 아닌데 말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답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꼭 참고서처럼 답만을 강요하는, 과정이 생략된 결과론으로 인생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큰 오류에 빠진 삶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아직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백지 도화지입니다.

거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적어도 부모나 주변 어른들이 아이의 경험을 공감하고 존중하고 함께 배워간다는 자세로 함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를 자신과 똑같은, 적어도 분신 정도로 동일시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은 따로 각각이자 거의 각자도생인 것을 인식한다면 적어도 '마음의 대물림'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표지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고 있자니 정말 섬뜩한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반복 순환되는 '대물림'의 은유적 표현이 날카로웠습니다.

#부모의감정 #아이의삶 #감정교육 #감정훈육 #마음의대물림 #마트료시카 #러시아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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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대물림 - 부모의 감정은 어떻게 아이의 삶이 되는가?
조민희 지음 / 보아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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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감정을 아이에게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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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온도
이윤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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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여자이면서 엄마이자 딸인 여성의 존재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여성을 통해 엄마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옵니다.

엄마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정말 극명합니다.

책표지 이 책의 정체성 그 자체를 표현하는 일러스트입니다.

책표지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커플티처럼 엄마와 딸이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데에 따뜻한 온기를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참 지혜롭습니다.

집안일, 즉 가사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룰 줄 압니다.

아이유 양은 할머니가 심란할 때 몸을 움직이는 것을 배워 자신도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독서와 바느질 취미가 있습니다.

'바느질 명상'이란 것을 소개하는데요.

'무념무상'에 빠져서 좋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심란하고 답답할 때는 마음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걱정이 가득할 때는 마음이 미래에 가 있기 때문이고요.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 때 마음은 평화를 찾습니다.

수행자가 호흡을 자각하여 지금 이 순간에 머물 듯

저자는 '바느질 명상'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무념무상에 빠집니다.

엄마와 딸의 에피소드와 엄마로서 자신과 딸로서 자신에 대한 소회를 보며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다만 에피소드 말미에 나오는 책 정보는 이 에피소드가 저자 자신의 이야기인지 책의 내용인지 헷갈리고 혼란스러움을 주어 아쉬웠습니다.

대체 에피소드 말미에 책정보를 넣은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독자를 혼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경험 #엄마의온도 #내생에가장따뜻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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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온도
이윤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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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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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성장시키는 세계 문학 명문장 필사책 - 영원히 사랑받는 명작 소설 영어로 따라쓰기
제인 오스틴 외 지음 / 현익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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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성장시키는'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게 '빨강머리 앤' 만화나 소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절망스러운 나날들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대사나 지문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필사'가 출판계 대유행인가 봅니다.

'필사'를 겸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데요.

필사를 좀 더 쉽게 하려면 책을 180도로 쫙 펼쳐야 하는데, '사철제본'이 제격입니다.

사철 제본은 실(絲)을 사용하여 종이 묶음(대)을 꿰매어 엮는 고급 제본 방식입니다.

책등이 없어서 누드제본이라고도 하는데, 책등이 있다면 바로 '양장본'이 됩니다.

역시 '세계 문학'이다 보니 '빨강머리 앤'의 필사도 있었습니다.

몇 에피소드에 관련된 문장이 나왔지만, 이게 왜? 세계문학에도 손색이 없냐면 앤의 대사가 천진무구하면서 촌철살인의 인생담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는 너무 많은 '앤'들이 있는 거 같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썽 많은 사람인 건가 싶어지기도 해.

단 하나의 앤이었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그러면 지금만큼 흥미롭지도 않았겠지."

사실 여러 모습의 '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건 내면을 바라보는 사람 외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작가는 그러한 디테일을 대사에 녹여냅니다.

부처는 '무아'를 얘기했었습니다.

'무아'란 한자식으로 '나가 없다'라는 뜻글자이지만, 이 속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의 말씀이 한자로 번역되면서 오역이 정말 많습니다.

아침에 희망에 찬 모습과 점심때 우울했던 모습, 저녁때 편안한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모습 중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요?

부처는 말씀합니다.

그 어느 것도 나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계속 변화 속에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모습이 '나'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앤은 그 여러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말썽이 생긴다는 것을 압니다.

부처도 그 다양한 나의 모습을 나와 동일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그것을 흘러가게 두라고 합니다.

'나와 동일시'하는 작용을 멈추면 번뇌도 멈추기 때문입니다.

앤의 번뇌는 바로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자기라고 동일시하면서 생기는 혼란입니다.

작가는 그것을 본 것이죠.

세계문학은 이렇게 문장과 에피소드를 잘 살펴보면 궁극의 무엇을 얻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필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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