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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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기생의 삶을 청산해 준 은인인 윤숙의 애인과 눈 맞아 결혼까지 결심하는 순애, 순애의 구원자가 되기로 한 윤숙은 자신의 애인까지 그녀에게 양보하며 둘의 행복을 빌고, 사회운동가인 윤은 윤숙을 애인으로 순애를 동지라 칭하며 두 여인 사이를 오간다.



백 년을 뛰어넘는 김말봉 작가와 박솔뫼 작가의 만남은 무척 신선했다. 특히 1932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망명녀」의 뒷이야기를 2023년 박솔뫼 작가가 그 뒷이야기로 이어 쓰며 「기도를 위하여」로 완성했다. 자신 자체가 이제 구원자가 되기 위해 투신하기로 결심한 순애의 마지막 모습을 박솔뫼작가는 그들의 애틋한 재회보다 계몽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나도 사람이다"

순애의 이 말에 박솔뫼 작가는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그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자의 길로 들어서는 모습으로 보인다. 


<애욕의 한국소설>에서 소개된 길말봉 작가는 이미 파격적인 이야기로 나를 놀라게 한지라 이 책을 읽기 전 이미 상상의 나래를 잔뜩 펼쳤었다. 요즘 흔한 막장드라마 코드가 이미 그 시절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 듯 소개된 세 편의 단편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몰래 숨겨둔 애인을 친구의 여동생으로 소개하며 버젓이 집 근처에 두고 두 집 살림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고행」


또 다른 단편인 「편지」는 남편의 장례식 후 도착한 편지 한 통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편지 속 인물인 '인순'이 남편에게 부족한 학비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며 그의 아내가 마음에 걸린다는 글이 쓰여있다. 아내는 죽은 남편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동안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분노하며 울분을 토하는데, 아내는 뭔가를 결심하고 자신에게 와달라며 남편인 척 답장을 보낸다. 얼마 후, 나타난 편지 속 '인순'을 마주한 아내는 큰 충격을 받는데...


기생이었던 여자가 사회운동가로 변모하고, 불륜을 저지른 뻔뻔했던 남자가 벽장에 갇혀 마치 기도하듯 고행하는 모습에 웃프고, 남편에 대한 믿음이 편지 한 통으로 무너지는 여인의 모습 등이 짧은 단편이지만 무척 흥미롭게 담겨있다. 


특히 「편지」에는 반전이 있었는데, 박솔뫼 작가처럼 그 반전의 뒷이야기를 내가 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라면 상상이상의 파격적인 막장으로 쓸 수 있을 텐데 ㅋㅋ (이건 내 머릿속에만 있는 걸로 ㅎㅎ 너무 위험해)


소설, 잇다로 몰랐던 옛 작가들을 만나는 일은 무척 특별하다. 특히 길말봉 작가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시대를 고발하는 이야기는 분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유쾌한 매력이 있어 그의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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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2 - 2세의 귀환 유정천 가족 2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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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의 귀환, 부제처럼 새로운 등장인물들과 유정천가족의 이야기가 2권의 주요 내용이다. 특히 야사부로의 스승 아카다마 덴구 아들 2세의 등장으로 그들의 세상은 크게 흔들린다.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2세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 덴구와의 갈등을 빚어오다 큰 전투를 치른다. 결국 아버지에게 패한 2세는 사랑하는 여자도 덴구 후계자 자리도 빼앗긴 채 쫓기듯 떠났었다.

이젠 덴구 수장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돌아온 2세, 하지만 아버지는 후계자로 인간인 벤텐을 후계자로 정하려는데, 그는 이 이상 참을 수 없다. 인간 따위가 감히 덴구가 된다니, 하지만 벤텐 역시 그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데, 2세와 벤텐의 무서운 전투가 시작되려 한다.

인간과 덴구와 너구리, 세 개 세력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너구리 명문 시모가모가의 삼남 야사부로는 그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모르는데, 이럴 때 바보의 피가 흐르는 게 참 좋다. 너구리전골을 먹는 금요클럽 회원이 되었다가, 스승의 연적인 2세를 돕기도, 무엇보다 은사를 몰락시킨 배신자, 자신의 첫사랑이자 아버지를 죽인 원수 벤텐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아도 바보의 피가 흐르니 용서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 유일하게 밉지 않는 야사부로, 그들도 야사부로만은 해치지 못하는듯한데...

야사부로에게도 위기가 찾아오고 만다.
"이대로, 너구리 전골이 되는가?"
"이대로, 지옥도에 갇히게 되는가?"

1권에 익숙해졌던 걸까 2권은 5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쉼 없이 읽었던 거 같다. 2세, 환술사 덴마야, 아리마 지옥, 에비스가와가의 장남 루레이치로, 야사부로의 전 약혼녀 가이세이, 그리고 비밀에 쌓여있던 금요클럽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훨씬 더 풍성한 이야기로 찾아왔다.

책은 온갖 둔갑술과 술수들이 펼쳐지면서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보여준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 너구리가 그 인간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죽었나 했더니 살아 있고 살아 있나 했더니 지옥에 떨어져 있는 혼돈의 시대. 그 중심에 너구리들이 있었다.

공원이나 하천 주변에서 너구리를 목격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난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너구리 가족'이 먹이를 찾아 공원을 거닐기도 하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놀라는 듯 ㅎㅎ 무심히 지나다 '너구리가 살고 있어요'라는 팻말을 봐도 진짜?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있긴 한 건가 했는데, 유정천 가족을 읽다 보니 어쩌면 내 옆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인간으로 변신한 너구리가 아닌가 싶다. 이제 이 너구리 세계에 적응 완료 ㅎㅎ

지금 공원이나 하천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
인간처럼 보이지만 너구리일 수 있어요.
"좌우지간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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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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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모든 둔갑이 가능한 너구리와 전설 속 마물 덴구, 그리고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인간은 모르지만 분명 너구리들이 이 도시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유정천 가족은 인간으로 변신한 너구리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꽤나 여러 번 고비가 있었다. 그러다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인간으로 변신한 모습이나 너구리의 캐릭터들이 나름 귀엽게 연출되어 거부감이 덜했다고 할까.

다다스 숲의 너구리 명가 시모가모 가문의 아버지가 너구리 전골이 되고 죽음을 맞이한 후 집안은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어떤 이유인지 앙숙이 된 숙부 가문과의 미묘한 신경전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는 형제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자인 시모가모의 삼남 야사부로와 덴구, 덴구의 수행을 받아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 벤텐의 관계 또한 흥미롭게 이어진다.

'아버지를 너구리 전골로 만든 건 누구일까?'
1권은 야사부로가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며 숨겨진 사실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예상치 못한 범인, 야시부로는 충격에 빠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범인을 향해 다가가는데...

아... 너구리 전골, 이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데ㅜㅜ;
마치 비밀결사대인 것 같은 금요클럽은 달마다 연회를 여는데 꼭 너구리 전골을 먹는다. 그 시기에 너구리들은 너구리로 다니지 않고 인간이나 물건으로 둔갑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책의 초반 인간을 하찮게 여겼던 너구리의 호언장담이 참 무색할 정도다. 이 금요클럽이 과연 어떤 클럽인지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있는데, 2권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놓을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숙부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는지 얼른 2권을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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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위로
배정한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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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위로와 환대의 장소. 하지만 자본주의 도시에서 그런 자리는 우리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_책머리에


내 소유는 아니지만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곳.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나는 공원에 간다" 


집 밖에 나와 조금 걸으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곳이 공원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뛰어노는 아이들, 잠시 햇볕을 쬐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과 공원 주변을 돌며 조깅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공원은 입장료 없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위로와 환대의 공간이다. 


책은 저자 배정한 교수가 국내외 공원을 걸으며 사색한 것을 담은 책으로 약 40여 곳의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을 받은 성기훈(이정재)이 1년간 상금을 전혀 쓰지 않고 폐인처럼 살아가며 강가에 앉아있던 곳이 양화한강공원이었고 (이곳은 곧 사람들의 성지순례가 되었다) 쓰레기산 난지도가 하늘공원이 되었으며, 낙후된 도시의 뒤편 폐철로 부지가 경의선숲길이 되었다. 높고 넓은 하늘이 머리 위에 가득 펼쳐진 광교호수공원,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맘껏 뛰노는 전주 맘껏숲놀이터, 나무가 주인공인 땅 대구 미래농원, 도시와 함께 성장하는 서울 숲공원, 변신을 꿈꾸는 엘리제의 들판 파리 샹젤리제등 국내외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들이 책 속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공원은 거리에서 바로 걸어 들어가 야구 경기를 조감할 수 있는 창원NC파크였다. 도시 가로와 외야 상단의 높이가 똑같아 야구장의 열광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구조가 특이해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됐다. 그리고 초록 잔디밭에 분필로 띄엄띄엄 그려놓은 듯한 하얀 원형의 나열, 샌프란시스코 돌로레스 공원은 코로나 시대가 낳은 가장 역설적인 도시 풍경으로 사람들은 감염 수칙인 거리 두기를 위해 하얀 원형 안을 벗어나지 않고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곳곳에 공원이 있어 참 좋다. 낯선 곳에 가더라도 공원은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어 내 몸 하나 쉴 곳이 돼주어 고마운 곳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공원을 걷고 화창한 날이면 테이크아웃한 커피와 책 한 권을 들고나와 독서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유독 마음이 가는 공원이 있다. 특히 난 공릉동의 경춘선숲길을 매주 걷는데, 폐철도 노선을 산책길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트레킹 코스다. 거기다 맛집과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카페들이 곳곳에 숨어있어 마치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직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공원 나들이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올해 할 것도 많은데 공원 나들이까지 추가되다니 ㅋㅋ 하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랬다고 나에게 위로와 환대가 필요할 때 이 책과 함께 공원 나들이를 해봐야겠다. "그곳을 걸으면 눅눅한 머릿속이 바삭해진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가끔 이렇게 쉬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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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살았네 - 지친 하루를 포근히 안아주는 '힐링곰 꽁달이'의 응원 오늘도 잘 살았네
고은지 지음 / 김영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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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애썼어.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느라

할 일을 하느라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피곤한 와중 밥 챙겨 먹느라

그럼에도 웃음 짓느라


정말 애썼어.

_001 오늘도 애썼어



동글동글 귀여운 '힐링곰 꽁달이'가 오늘 하루 애썼다고, 잘 살고 있다고, 오늘도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나의 하루에 위로와 용기를 전해준다. 이 책을 힘든 자취생활할 때 읽었다면 홀로 눈물짓지 않았을 텐데... (그때 배고프고 돈도 없고 얼마나 서러웠는데 ㅜㅜ 수돗물로 배 채워봤냐규 ㅠㅠ) 비록 작은 2D그림과 몇 글자 메시지이지만 엄청 위로가 됐을 만큼 따뜻함이 가득하다. 


복잡하고 과한 언어들이 없다. 그냥 옆에서 친구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일상의 언어를 편하게 내뱉는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읽다 심쿵 하게 되고 감동받는다. 힐링곰이 소듕한 나에게 보내는 100일의 토닥임. 우리도 한 번 받아보자. 분명 마음이 말랑말랑 포근해질 것이다.


어느 곳이든 널 경계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

누군가 널 싫어한다는 사실은 참 힘들지.


그런데 있잖아,

그 사람이 널 좋아하지 않는대도 조금도 위축되지 마.

너에게 애정을 두지 않은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마.

그 사람이 너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으니까.

너의 가치는 너만이 결정할 수 있으니까.

_011 누군가 널 싫어해도


오늘 하루 어때써?

밥은 잘 먹었구?

누가 핀잔주는 사람은 없었어?

마음 아플 일 없이 하루 잘 보냈기를 바라.


오늘도 고생 많았어.

잘 자, 소중한 사람. 

_050 너의 마음이 안녕하길


하얀 눈이 하루 종일 내린 오늘, 기타 수업을 째고 싶었지만 수업 자주 빼먹는 엄마에게 핀잔주는 아들 녀석 눈치 보느라 결국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왔다. 그런데 웬걸 소복이 쌓인 눈 위에 뽀드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니 기분이 좋았고 나뭇잎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마치 팝콘을 튀긴 듯 뽀얀 모습에 또 기분이 좋았다. 펑펑 온 세상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우리의 작은 일상도 펑펑 팝콘 튀기 듯 행복이 몇 배로 커지 길 바라본다.


우리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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