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세트] [BL] 멜로우 (외전 포함) (전3권)
니타 / 베아트리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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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섬세한 초동안의 순수한 사슴같은 이언과 순진하고 사회성 없는 사장님을 보모처럼 챙기는 연애에 최적화된 영악한 사랑꾼공 현오의 달달한 리맨물 로맨스. 나이답지 않게 순수한 이언도 사랑스러웠고, 마흔을 앞둔 아저씨가 왜 이렇게 귀엽냐며 예쁘다를 연발하는 팔불출 연하공 현오도 귀여웠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어딘지 멍한 사장님을 무시하기보다 보모처럼 챙겨주는 라온 직원들도 인상적이었고, 권위 의식따위 존재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동료애로 가득한 회사 라온이 부러웠던 책. 


주인공들의 예쁜 로맨스외에도 함오나시, 함토리라는 애칭을 붙여가며 순한 사장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덕질하던 개성넘치는 직원들과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극성스러운 보모처럼 이언을 챙기는 여러 캐릭터들 덕분에 엄마미소 지으며 읽었다. 하지만 주인수 이언이 전혀 중년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굳이 왜 BL에서 흔치않은 마흔을 앞둔 나이로 설정했는지, 존재감 없이 사라진 일부 캐릭터들은 대체 왜 나온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서브공의 비중이 큰데 비해 긴장감은 덜한 잔잔한 전개라 취향탈 수도 있을 듯하다.



낯가림 심한 소심한 아이같은 이언은 끈기와 노력으로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해냈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못했다. 이언은 연애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에게 진심을 표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감정때문에 시작하지도 못한 풋사랑이 슬프고 후회됐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서툴고 느리기만한 이언에게 연애는 어렵기만 했기에 혼자 사는 편이 좋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정말 혼자가 좋은 것도 아니면서. 외로움을 애써 외면한 이언의 무료한 일상은 현오를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 저는 사장님이 조금 더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현오는 먼저 다가와 묻고 성큼 잡아끄면서도 모든 게 느리기만 한 이언을 재촉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려주었다. 자신조차 몰랐던 이언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해주고 한없는 친절과 이해로 편안하게 해줬다. 그와 함께 있으면 침묵이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눈이 마주칠때마다 다정하게 웃어주고 주말에 따로 만나는 것이 마치 이언을 좋아해서 그러는 것만 같아 들뜨게 된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이번에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 함 사장. 좋고 싫은 건 확실하게 표현해.

 그래야 안 놓칠 수 있어. "


 

 

탁월한 외모에 능력있고 매너까지 좋은 이 시대의 워너비 남친 상이지만 사실 현오는 성 정체성을 일찌감치 자각하고 결혼따위 포기한 게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남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이다. 약점이 될 질문은 적당하게 넘기고 습관화된 매너로 사람좋은 척하는 처세술이 일상인 영악한 남자. 사회생활이든 연애든 ​여유롭고 당당하게, 그런 모토로 살던 현오. 직장 생활을 위태롭게할 사내 연애따위 추호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순수하고 귀여운 사장님 이언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틈만나면 호기심어린 눈으로 훔쳐보다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아닌척 숨는 남자가 귀엽기까지 했다.

 

 

" 그렇게 보면 오해합니다.

 저에게 반한 줄 알고 오해한다고요."


아이도 아닌 성인 남자를 보모처럼 챙기는 다른 직원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적당히 맞춰 흉내만 낼 작정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입이 짧은 남자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안달하고 있었다. 섬세한건지 소심한건지,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장님에게 편하게 대해 달란 뜻으로 장난스럽게 대했는데 조용히 웃기만 하자 더 장난을 치고 싶어 졌다. 어떤 행동을 해도 다 받아줄 것 처럼 구는 남자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망각하고 만다. 연애할때는 늘 어른스럽고 다정한 연인처럼 굴기 위해 애썼는데.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고 짓궂은 장난으로 놀리려는 스스로가 낯설고 신기해 왜 이러는지 누구에게든 묻고 싶다. 


" 저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저에게 이상한 마법을 거신 거 아닙니까? "




순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같은 이언이었기에 영악한 현오에게 마구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수줍으면서도 솔직한 이언의 애정표현과 의도치 않은 밀당으로 알고보면 '선수'가 아닐까 의심할만큼 현오가 휘둘리던 상황들이 웃겼다.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가 없어 사랑에 실패했던 이언과 다정한 연인인척 했으나 사실상 사귀는 상대에게 선을 긋고 허세 가득한 오만한 연애만 했던 현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으려던 주인공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조금씩 변해간다. 서로를 믿고 진심을 내보이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툴지만 진실한 사랑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주인공들이 기특했다. 


완벽한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의 완벽은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완벽한 사랑 대신 서서히 만들어 가는 사랑을 꿈꾼다. 사랑이란 결국 형태 없는 감정.

그것을 어떤 형태로 만드는 것도 두 사람의 몫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도 모두 두 사람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 당신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당신이 나를 선택해줘서 다행이야. " - 『 멜로우 』2권 본문중에서


물고기들의 고향은 짠내 나는 바다가 아닐까. 어쩌면, 인간의 고향도 바다이리라.

눈물로 태어나 고통을 배우고, 기쁨을 발견하고, 희망을 꿈꾸니까.


내가 찾은 바다가 당신이라서 다행이야. 당신을 찾은 게 나라서 다행이야. 현오는 제 고향이 바다라면, 분명 바다의 이름은 '함이언'일 거라 확신했다. 내 일상은 당신으로 인해 아름답고 찬란하며 어여쁘게 달다. - 『 멜로우 』외전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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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피앤피 스토리(P&P Story) (총2권/완결)
VanG / 페르마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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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을 꿈꿀 수 없는 비참한 사랑에 차라리 망치는 길을 선택하고도 찾아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겁쟁이수 서호와 남다른 뇌 구조를 가진 탓에 애정 표현 방식이 어딘지 어긋난 츤데레 순정공 채훈의 길고 긴 삽질 로맨스. 누구보다 상대를 원하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나누거나 이해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에 긴 시간을 허비하며 마음고생을 하고 나서야 '온전한' 연인으로 함께 할 수 있었던 주인공들. '피앤피 스토리'가 무슨 의미인지 나오지 않아 궁금했는데 꽂아서(Plug) 바로 사용(Play) 한다는 뜻의 플러그 앤 플레이인 걸까? 서호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세우는 365일 24시간 쉬지 않는 '편의ㅈ' 채훈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긴 하다.


도채훈의 뇌 구조는 이상했고, 혀는 상했다.

그리고 거시기는 요상했고.


주인공들의 학창시절부터 30대 직장인이 되어서 재회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기에 학원물 + 재회물 + 리맨물 + 비밀 사내연애 + 할리킹 등 독자들이 선호하는 소재들을 모두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도망치고 뒤쫓는 일이 반복되어 고구마 백만 개의 신파성 피폐물이 될뻔했는데 겁쟁이 주제에 은근 앙탈부리는 새침한 서호와 집착 강한 애인과 스토커의 경계를 넘나드는 채훈, 그외 개그스러운 캐릭터들 활약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피폐를 개그로 승화시킨 유머러스한 문장에 감탄했지만 작가님과 유머코드가 잘 맞지 않으면 취향탈 수도 있을 듯 하다.

 


도가 그룹의 후계자로 모든 것을 다가진 데다 우월한 외모의 소유자인 채훈과 한 집에서 나고 자란 동갑내기 서호. 그는 서호의 세상 안에서 가장 대단한 존재였다. 숭배는 어느 사이 사랑으로 변했지만 숭배와 다르게 사랑은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했기에 감정 소모가 엄청났다. 서호를 욕구 해소용 편리한 도구 취급하는 악마인데도 미워할 수도 없었고,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사랑에서 일방적인 약자일 뿐인 서호는 변덕스러운 '집착'하나로 유지되는 관계를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 너는 나보다도 늘 네 자신이 우선이잖아.

네가 나도 위해줄 거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도망친 거고. "


채훈의 곁에 있기엔 서호는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했고, 그렇다고 그의 아내를 용납하기엔 빌어먹게도 욕심이 많았다. 설사 채훈이 진심이라해도 재벌가의 황태자로 태어난 이상 아무리 대단한 채훈이라해도 황제가 펼친 체스 보드 위의 말에 불과했다. 황태자의 정해진 인생에 더부살이로 태어난 그것도 사내인 서호가 끼어들 틈이 있으리 만무했다. 채훈과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끊어내고 도망친 주제에 그를 찾아내 주길 기다리는 스스로가 비참했다. 채훈과의 재회로 숨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두려움보다는 버려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관계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서호에게 채훈은 날선 분노를 쏟아낸다. 


" 내가 아는 건 하나뿐이야. 네가 내 앞에서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지만

속으로는 나를 버릴 생각뿐인, 절대 믿어서는 안 될 종자라는 것. "

 


 

 

 

초반에는 성질 더러운 재벌 2세가 자신의 집에 더부살이 중인 순진한 소년을 농락하는 피폐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채훈은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히는 초딩 같은 녀석이었다. 우월한 외모와 탁월한 두뇌, 막강한 재력을 가졌으나 거슬리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발부터 날리는 개 같은 성격과 복수는 몇 배로 되갚아줘야 하는 뒤끝 작렬에 원하는 것은 죽어도 가져야 하는 '조건 좋은 인간 말종'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 네 주인은 나야.

 누가 뭐래도 넌 내거야. " 

 

?재벌가 후계자로 약점을 잡히기 싫으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세뇌받고 자란탓에 애정 표현도 극악스러운 방식으로 하고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고 뻔뻔하게 우기는 본성이 글러먹은 놈이라 심약한 서호의 심장은 너덜너덜 남아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채훈이 밉지 않았던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서호 하나만을 간절하게 바란 순정 때문이다. 가진 걸 다 팔아서라도 서호를 온전하게 가지고 싶어 늘 초조하고 불안해 하는 녀석이었으니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더이상 삽질로 시간 낭비말고 이젠 그만 행복하길!


" 솔직히 따져서 네가 나보다 비싸진 않을 텐데."

" 이런 씨발, 그래서 뭐? "

" 그런데 왜 이 새끼는, 날 다 팔아도 살 수 없을까. "


그러고 보면 항상 그는 그런 식이었다. 날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나에 대한 건 전부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공간에서는 항상 나만 주시했다. 주위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도채훈 외엔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도 없었다. 왜 그렇지 않을까.

도채훈은 나의 도련님이자 친구이자, 연인.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었다.


스스로를 다 팔아도 날 온전히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던 도채훈의 말이 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나를 그렇게 여겨주는 것이다.  -『피앤피 스토리 』2권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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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피앤피 스토리(P&P Story) (총2권/완결)
VanG / 페르마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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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겁쟁이수와 츤데레 순정공의 길고 긴 삽질 로맨스 입니다. 뻔하디 뻔한 신파물이 될 법한 소재가 작가님의 유머 감각 덕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스토리가 된 느낌입니다. 작가님 책은 처음인데 유머 코드가 잘 맞아서 차기작도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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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이스케이프(Escape) (외전 포함) (총3권/완결)
오더데이트 / 더클북컴퍼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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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를 사람이 아닌 '알파에게 맞춤 제작된 생물'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불량 오메가 글리와 백치나 다름없는 오메가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글리에 대한 흥미로 강한 독점욕을 보이는 행성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오메가를 생산하는 공장의 주인인 알파 해켓. 평범하지 않는 글리를 특별하게 여기고 집착하면서도 그 감정의 정체를 몰라 어긋난 방식으로 글리를 소유하려 한 해켓에 대한 사랑으로 서서히 정신이 망가져 가던 글리가 안스러웠다. 필력이 좋아 끝까지 몰입해서 읽었지만 알파의 백치처럼 알파에게 순종하며 살다 사창가로 팔려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오메가들로 인해 취향탈 만하다.


알파들에게 오메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해켓에게는 그랬다. 

그는 스스로가 관대하다고 착각하는 주인이었다.


외관상 성별과는 상관없이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오메가 버스 세계관의 판타지물인데 비슷한 소재의 책에서도 오메가의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이 책처럼 대놓고 오메가를 물건 처럼 생산해서 알파에게 씨받이로 제공하는 설정의 책은 처음이었다. '배양실험실'에서 생산된 공장 출신에 비해 부모가 있는 자연산 오메가는 그나마 나은 대우를 받는다 해도 인간이 아닌 물건 취급받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오메가란 주인이 될 알파에게 순종하며 쾌락을 제공하고 아이를 낳아 주기 위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에서 규격에서 벗어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남자로 태어난 글리는 쓸모 없는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 너희가 나약하고 쓸모없는 것은 모두 알파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인데

아이도 낳지 못하는 오메가라니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글리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남자 오메가인데도 관심을 보여준 강력한 알파 해켓을 만나 기뻤던 것도 잠시 웃는 얼굴로 굴욕적인 폭언과 폭력에 가까운 첫 관계에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고 만다. 1권은 오메가 공장에서 탈출했다가 2년만에 붙잡혀 온 글리를 개처럼 목줄에 묶여 알몸으로 끌려다니는 굴욕적인 방식으로 벌을 주는 해켓으로 인해 상당히 피폐하다. 알파에게 순종하도록 세뇌당하며 자랐음에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글리가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강제 각인당한다. 각인이란 어디까지나 알파가 오메가를 종속시키기 위해서, 알파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만들어 낸 보이지 않은 족쇄였다. 


" 너는 나만을 생각해야지.”


해켓은 다정한 얼굴로 기대게 만들어 놓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글리를 위험한 계략의 미끼로 서슴없이 내던지고 그를 거역한 자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하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글리를 길들이면서도 스스로를 관대한 주인이라 착각하는 이기적인 알파였다. 어떤 알파보다 정점에 선 잔혹한 독재자인 그는 오메가들의 인생을 언제라도 갈가리 찢을 수 있는 포식자였기에 지금보다 더한 시궁창에 내던져 질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강제 각인으로 도망칠 의지까지 박탈당한 글리는 체념하고 오메가의 본능대로 주인인 해켓에게 순종하며 살려 했지만,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누려봤기에 점점 마음이 병들어 간다.


" 오메가치고 지나치게 영리한 저애의 머리가 문제입니다.

더구나 이 년간 도피 생활을 하면서 베타의 세상을 너무 많이 봤어요.

저애는 '인간'이 뭔지를 압니다."  

 

오메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알파따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메가의 본능은 글리로 하여금 해켓의 다정함을 믿고 의지 하고 싶게 만들었다. 단지 독점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도 글리를 특별하게 아껴주는 것은 사실이기에 들떴다가 그의 애정이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매번 좌절한다. 아이를 낳고 쓸모를 상실한 오메가들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태어난 아이가 오메가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될 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달콤한 말로 안심시키는 해켓을 믿을 수 없는 글리. 온전하게 믿을 수 없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알파를 사랑하게 된 스스로를 경멸하고 인간성에 대한 갈망으로 괴로워하는 글리의 정신은 더 황폐해져 간다.

 


" 알파를 믿는 건 바보짓이지.

 그들은 거짓말을 아주 쉽게 하고 책임도 지지 않아."



글리의 정신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망가지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후회 하는 해켓. 그리고 오메가들이 그런 삶을 살게 된 음모의 진실이 드러난다. 오래전에 고장나서 스스로가 강철 같은 사내라 굳게 믿고 이기적이고 어긋난 판단을 내린 어리석은 알파때문에 모든 오메가들이 희생양이 되어 비참하게 살아야 했냐고 분노하는 글리의 심정에 공감했다. 최악으로 치닷는 두 사람의 갈등 해결책은 뻔했지만 최소한의 면죄부는 던져줄 지언정 해켓이 저지른 죄를 억지스럽게 포장하려하지 않은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글리의 사랑은 강제 각인된 오메가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고 어딘지 망가진 해켓은 사랑을 하면서도 그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불완전한 사랑도 사랑이기에 글리는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원인이자 가해자인 해켓과 함께 하는 길을 선택했다. 잔인하고 강력한 알파지만 글리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사내로 전락한 해켓이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글리의 소망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오메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해켓의 강력한 비호아래 글리를 비롯한 의식있는 알파들이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고 있으니 오메가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다.


인간은 불완전한 채로도 앞으로 걸어야만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딘가로 나가간다는 뜻이다. 갈 곳없이 떠도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었다.

내 인생이 그랬고 오메가들의 인생이 그랬다.


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영구히 회복되지 못할 장애를 얻은 내 정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일생을, 똑바로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가 인간답게 살고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나는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오메가였다.

베타들의 세상에 숨어 떠돌 때에도 나는 몇 번이나 느꼈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치명적인 차이들을.

아마도 나는 영원히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룰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이룰 수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가 그것을 이루길 바랐다. 가능하다면 가까운 곳에서.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 『이스케이프 』2권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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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불청객 [BL] 불청객 1
꽃낙엽 지음 / 시크노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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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 좋아서 읽었는데 짧은 단 권이라 금방 읽었다. 낳아준 생모에게 조차 존재를 부정당하며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예운이 서류상 가족일 뿐인 청현의 울타리 안에서 위안 받고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 소개글에 나온 키워드중 아고물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더니 아저씨과 고등학생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취향탈만한 키워드 때문에 걱정했는데 육체적 관계보다는 예운의 섬세하고 불안한 내면 묘사가 부각된 책이었다. 더 길었더라면 답답하고 속 터졌을텐데 주인공들에게 집중된 빠른 전개라 마음에 들었다. 다만 예운의 1인칭 시점의 책이라 어린 예운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주고 집착하게 된 청현의 감정 변화가 궁금해 아쉬웠다.

  

"동생 삼고 싶진 않아.

그렇다고 그게,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과 같진 않지.”

 

어머니의 잦은 재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거대한 저택의 도련님이 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예운. 겪어보지 못한 지나치게 풍족한 환경탓에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공간이라는 생각에 잔뜩 예민해진 예운은 없던 불면증까지 생겼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예운을 도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서류상 형제일 뿐인 청현이었다. 동생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선뜻 제 공간을 내어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내어 준 서재의 온기는 이상할만큼 예운에게 안정감을 되찾게 해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불청객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시간.

그 의외로운 감정이 생소해 마음이 일렁였던 그 시간.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것은...... 설렘.


아이러니하게도 예운이 태어나서 불청객으로 여겨지지 않은 공간은 청현의 서재가 처음이었다. 겉모습처럼 냉정하지 않은 청현의 귀찮은 듯 직설적인 화법에도 조금씩 적응되고 그와 한 공간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그곳에서라면 자신도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예운. 하지만 늙은 남편과 장성한 의붓아들의 눈치를 보느라 참시 참고있던 모친의 폭력이 다시 시작되면서 악몽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갑작스런 사고. 천애고아가 된 예운에게 서류상 형제일 뿐인 남자는 후견인을 자처한다.


" ......여기 계속 있어도 된다고요? "


" 있어야 한다고. "

 


우여곡절 끝에 예운은 그간 서재에서 받은 위안은 그 공간에 머무른 사람의 온기 때문에 이었다는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청현의 호의와 수수께끼같은 그의 말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알게 된다. 모친의 지속적인 학대로 인해 세상사에 무감해지고 감정에도 무지했던 예운이었기에 청현이 수많은 단서를 줬음에도 뒤늦게서야 그 감정을 인지한다. 청현의 집요한 독점욕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수준이지만 당사자인 예운이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기꺼워하니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셈.


" 너야말로 먼저 끝낼 마음이 들면 언제든지 말해. "

" ...... "

" 너도 죽고 나도 죽으면 되니까. "

죽기 전엔 놓아주지 않겠다는 말은 거칠고 살벌했지만, 너무나도 그다운 고백이었다. 맹세라도 들은 것처럼 오히려 위안이 되는.

" 끝낼 거면 시작도 안 했다는 말이야. "

 


언제나 생각했었다. 나는 세상을 잘못 찾아온 불청객이 아닐까.

그러나 당신은, 처음으로 내가 있어도 될 안락한 보금자리를 내어준 사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불청객이 아니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만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불청객 』본문중에서 


주인공들이 이복형제인 것은 맞지만 그들의 사랑이 근친상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부모의 잦은 재혼에 질려 서류상 가족따위 애초 형제로 인정하지 않아서였다. 한 집에서 살면서도 서로에겐 동생이나 형이 아닌 그저 송예운과 지청현 그 자체일 뿐이었으니까. 주인공들의 부모가 사고로 죽지 않았더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남남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오히려 부모님의 죽음으로 영원히 법적인 가족으로 묶여버린 두 사람은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얻게 된 건지도 모른다. 


생모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으로 스스로를 세상을 잘못 찾아온 불청객으로 여기며 어디에도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 여겨온 예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며 화풀이하듯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해놓고 버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는 생모의 이기적인 말이 어이없었다. 가장 가까운 혈육에게서 입에 담기도 힘든 독한 말을 들으며 지속적 학대에 노출되어 불행하게 살아온 예운이 뒤늦게라도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청현을 만나 다행이었다. 예운이 바라는 한 청현의 영원한 그의 안식처가 되어 줄 것이므로. 


" 제 불운이 사장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그 불행에 감사하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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