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 좋아서 읽었는데 짧은 단 권이라 금방 읽었다. 낳아준 생모에게 조차 존재를 부정당하며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예운이 서류상 가족일 뿐인 청현의 울타리 안에서 위안 받고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 소개글에 나온 키워드중 아고물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더니 아저씨과 고등학생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취향탈만한 키워드 때문에 걱정했는데 육체적 관계보다는 예운의 섬세하고 불안한 내면 묘사가 부각된 책이었다. 더 길었더라면 답답하고 속 터졌을텐데 주인공들에게 집중된 빠른 전개라 마음에 들었다. 다만 예운의 1인칭 시점의 책이라 어린 예운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주고 집착하게 된 청현의 감정 변화가 궁금해 아쉬웠다.
"동생 삼고 싶진 않아.
그렇다고 그게,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과 같진 않지.”
어머니의 잦은 재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거대한 저택의 도련님이 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예운. 겪어보지 못한 지나치게 풍족한 환경탓에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공간이라는 생각에 잔뜩 예민해진 예운은 없던 불면증까지 생겼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예운을 도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서류상 형제일 뿐인 청현이었다. 동생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선뜻 제 공간을 내어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내어 준 서재의 온기는 이상할만큼 예운에게 안정감을 되찾게 해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불청객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시간.
그 의외로운 감정이 생소해 마음이 일렁였던 그 시간.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것은...... 설렘.
아이러니하게도 예운이 태어나서 불청객으로 여겨지지 않은 공간은 청현의 서재가 처음이었다. 겉모습처럼 냉정하지 않은 청현의 귀찮은 듯 직설적인 화법에도 조금씩 적응되고 그와 한 공간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그곳에서라면 자신도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예운. 하지만 늙은 남편과 장성한 의붓아들의 눈치를 보느라 참시 참고있던 모친의 폭력이 다시 시작되면서 악몽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갑작스런 사고. 천애고아가 된 예운에게 서류상 형제일 뿐인 남자는 후견인을 자처한다.
" ......여기 계속 있어도 된다고요? "
" 있어야 한다고. "
우여곡절 끝에 예운은 그간 서재에서 받은 위안은 그 공간에 머무른 사람의 온기 때문에 이었다는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청현의 호의와 수수께끼같은 그의 말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알게 된다. 모친의 지속적인 학대로 인해 세상사에 무감해지고 감정에도 무지했던 예운이었기에 청현이 수많은 단서를 줬음에도 뒤늦게서야 그 감정을 인지한다. 청현의 집요한 독점욕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수준이지만 당사자인 예운이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기꺼워하니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셈.
" 너야말로 먼저 끝낼 마음이 들면 언제든지 말해. "" ...... "" 너도 죽고 나도 죽으면 되니까. "죽기 전엔 놓아주지 않겠다는 말은 거칠고 살벌했지만, 너무나도 그다운 고백이었다. 맹세라도 들은 것처럼 오히려 위안이 되는." 끝낼 거면 시작도 안 했다는 말이야. " 언제나 생각했었다. 나는 세상을 잘못 찾아온 불청객이 아닐까.그러나 당신은, 처음으로 내가 있어도 될 안락한 보금자리를 내어준 사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불청객이 아니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만큼은.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불청객 』본문중에서
" 너야말로 먼저 끝낼 마음이 들면 언제든지 말해. "
" ...... "
" 너도 죽고 나도 죽으면 되니까. "
죽기 전엔 놓아주지 않겠다는 말은 거칠고 살벌했지만, 너무나도 그다운 고백이었다. 맹세라도 들은 것처럼 오히려 위안이 되는.
" 끝낼 거면 시작도 안 했다는 말이야. "
그러나 당신은, 처음으로 내가 있어도 될 안락한 보금자리를 내어준 사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불청객이 아니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만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불청객 』본문중에서
주인공들이 이복형제인 것은 맞지만 그들의 사랑이 근친상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부모의 잦은 재혼에 질려 서류상 가족따위 애초 형제로 인정하지 않아서였다. 한 집에서 살면서도 서로에겐 동생이나 형이 아닌 그저 송예운과 지청현 그 자체일 뿐이었으니까. 주인공들의 부모가 사고로 죽지 않았더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남남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오히려 부모님의 죽음으로 영원히 법적인 가족으로 묶여버린 두 사람은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얻게 된 건지도 모른다.
생모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으로 스스로를 세상을 잘못 찾아온 불청객으로 여기며 어디에도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 여겨온 예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며 화풀이하듯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해놓고 버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는 생모의 이기적인 말이 어이없었다. 가장 가까운 혈육에게서 입에 담기도 힘든 독한 말을 들으며 지속적 학대에 노출되어 불행하게 살아온 예운이 뒤늦게라도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청현을 만나 다행이었다. 예운이 바라는 한 청현의 영원한 그의 안식처가 되어 줄 것이므로.
" 제 불운이 사장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그 불행에 감사하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