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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9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옌스 포엘은 독일의 신경심리학자이다. 독일에서 심리학, 신경심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로 옮겨 공부하면서 자기공명영상(MRI)를 사용해 우울증, 불안 등에 대해 연구했다. 대표적인 학문적 성과는 사지 절단 환자가 수술 후에도 여전히 사지의 존재를 느끼는 환상 사지 통증의 원인을 규명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현재는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리얼 사이언티스트 독일'을 운영하며 과학자들의 일상과 그들의 다양한 연구 분야를 친근하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옮긴이 이덕임은 지리산과 히말라야, 알프스를 오가며 산다. 이런 떠돌이의 삶에 묵직한 닻이 되어준 일이 번역 작업이라고 한다. 옮긴 책으로는 <구글의 미래>,<시간의 탄생>,<내 감정이 버거운 나에게>,<어렵지만 가벼운 음악 이야기> 등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보니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말도 안되는 음모론도 많고 근거 있는 객관적 사실과 뜬구름 잡는 주관적 의견이 뒤죽 박죽 섞여 있어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의심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시기. 저자는 사실과 의견 사이의 흥미 진진한 회색 지대를 탐색하기 때문에 혼란 스러운 시대를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반드시 읽어 보길 추천한다. 추천한 김범준 물리학과 교수도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는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없어서 얼마든지 대안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책을 읽고 보니 제목과는 정 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우리가 사실로 믿는 것들 중에서 의견일 뿐인 것도 많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왜 이런 오류를 범하는지도 알아본다. 16장에서 저자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극복할 방안 역시 제안한다.
또한 아무리 스스로에게 확실해 보여도 자신의 접근 방식 자체도 늘 의심해야한다는 얘기에 모든 과학자가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16장의 모든 장은 "우리는" 이라고 시작한다.
제목만 살펴보아도 흥미로운 장이 너무 많다.
우리는 관찰도 기억도 잘 하지 못한다.
우리는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관찰한다.
우리는 우리가 측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측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대 없이 관찰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연구 자료를 읽는 방법을 모른다. 등등.
책의 앞부분에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특별서문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다 나은 판단을 위한 지침이 실려 있다.
특별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가짜 뉴스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갈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진실' 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온라인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기에 이러한 혼란은 악화시킨다고 말한다. 신뢰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면서 진실에 관한 스스로의 탐색을 거쳐야 한다. 과학적 사실의 결과 뿐 아니라 이것이 도출된 방식까지도 깊이 이해하고, 그 신뢰성을 판단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탐구 능력은 학교나 직장에서도 배울 수 없다. 그 필요성을 개인 스스로가 느껴야 하고 더나아가 사회에서 의식을 갖고 알려야 한다. 필요성을 느낀다면 과연 어떤 자료를 탐색하며 진실에 대해 깊이 탐색할 것인지가 궁금할 것이다. 그 첫걸음을 이 책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과학적 정보라 해서 무조건 신뢰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비판의식을 통해 평가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문제점들을 식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도 소개되지만 예시를 통해서 '사실'과 '의견' 사이의 흥미진진한 회색지대를 탐색하고, 독자들이 사실의 본질에 도달하여 스스로 정보에 기반을 둔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사실과 의견이 같는 공통점이란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 조차가 매우 신선했다. 왜냐하면 사실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진리이고 의견은 객관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둘 순 있지만 어떤 사람이 갖는 주관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라 전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두 정의의 공통점이란 사실과 의견에 그 정당성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반면 사실과 의견의 차이점은 "이 방의 온도는 섭씨 23도입니다"와 "오늘은 티셔츠를 입기 좋은 날씨네요"의 차이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깊이 탐색할 수록 저자는 사실과 의견의 해석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것이야 말로 심리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는 세상의 핵심요소 라고 말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의견, 사실 그리고 사회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과학은 살인이 법적 행위인지 아닌지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 세계의 법적 테두리 안에 둠으로써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모델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 자체는 윤리적이고 사회적이므로, 사실보다는 의견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즉 사회적 이슈에 관해선느 과학적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에 대한 저자가 말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확실한 사실들이 존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하고 입증할 수 있는 것들에 기초해야 하며, 사실과 무관하거나 자의적인 신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과학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데 이러한 신뢰 조차도 불안정한 기초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고, 그 핵심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과 의견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즉 사실에 동의하기 전에 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사실에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해 먼저 합의해야 한다.
이 책은 간단 명료하게 요약하거나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다행히도 저자가 책 마지막에 각 장을 간단히 요약을 해 놓았다. "보다 나은 판단을 위한 지침"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도 좋겠다. 본문을 읽다가 다소 어렵다면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중심을 다잡고 본문으로 돌아가도 좋겠다. 이 책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쉽지도 않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질문하고 고민해보게 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란 염려 말고 조금은 생산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이다. 집중해서 생각해야해서 에너지를 많이 쓸 수도 있으니 너무 배고프거나 너무 배부르지 않은 상태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