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은 없다
고자카이 도시아키 지음, 방광석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민족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나 실재하는 민족은 있다. 이것이 <민족은 없다>의 주된 내용이다. 도발적으로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사회심리학적 분석과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민족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졌을 정도로 한 울타리 세계 즉 글로벌 빌리지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는 피부색이나 언어, 혈족을 통한 민족의 개념은 희박해 졌으며 문화적, 지역적인 경계를 통해 구분되어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이나 언어의 경우는 각 민족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시대적 환경과 언어사용환경의 편리성에 따라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일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각 나라들(우리 나라를 포함하여) 또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피부색이나 언어, 혈족의 계통적 구분은 모호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족은 없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민족은 존재한다' 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존재는 사회적 허구를 통해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허구는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닌 사회가 실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또한 허구는 역사와 현실을 만들어내며 허구를 통한 기억의 축적이 민족적 동일성(또는 민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라는 사회 심리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또한 비록 허구를 통해 만들어진 민족(혹은 공동체)이지만 민족의 연속성이 계속되는 한 집단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과거의 잘못이라고 해서 책임과 집단을 분리해 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기존의 다민족·다문화주의 개념과 보편주의의 맹점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인 열린 공동체라는 개념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로 대표되는 혈연주의적 국가개념이 폐쇄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나타난 다민족·다문화주의는 민족의 실체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혈연주의적 국가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다민족·다문화주의는 소수파의 문화를 옹호하는 데 역점을 두고 다양한 세계관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지만 실재로는 외국인 배척정책에 쓰이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또한 보편주의가 지니고 있는 개인주의적 관점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로부터 비롯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열린 공동체의 개념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열린 공동체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이 사회적 소수파라는 것과 이방인이 존재함으로 인해 순수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열린 공동체에 대한 필요성은 비단 저자가 일례로 들었던 일본의 재일조선인 이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 또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민족은 없다>는 급변하는 민족의 개념과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를 사회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재정립하고 있다. 민족에 대한 실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소수파와 이방인이라 존재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부각시킨 점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혼의 비행
리처드 바크 지음, 도솔 옮김 / 이레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갈매기의 날갯짓은 계속되고 있나보다. 이 책에서의 리처드 바크는 여전히 푸른 창공을 그리며 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비행은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듬뿍 안겨다 준다. 편안하게 앉아서(또는 누워서) 잠시 숨 고르고 상상 속에 빠져들면 찾아오는 세계와 자신이 생각한 것이 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 속에 전해 준 것일 지도 모른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은 독자에게 기분 좋은 간지러움으로 다가온다.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가볍게 또는 기분 좋은 데자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루안 - 시공로고스총서 35 시공 로고스 총서 35
조너선 밀러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조너선 밀러는 맥클루언의 연구가 독창적이며, 그는 특별한 사상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성숙했다는 생각을 파격적이거나 혹은 충격적일 정도로 뒤집어 버린다. 또한 조너선 밀러는 이 책을 통하여 맥클루언의 사상적, 문화적 연구 업적은 그 동안의 선례의 축적된 결과로 이루어져 왔으며,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의 주장에 대한 오류와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맥클루언의 주장에 대한 오류와 맹점은 이 책을 통해 조너선 밀러가 이미 충분히 입증하였으므로 비판보다는 맥클루언 주장하는 논지들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맥클루언은 매우 상이하고 겉으로는 관련되지 않은 사실들과 상황들 중에 상징적 일관성이 들어 있을 수도 있으며 이는 생각들과 이미지들이 형식적인 관련성이 없어도 자유롭게 서로가 의미하는 함축적이고도 암시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러한 암시적으로 교차하여 인용하는 능력을 문자 해독 능력이 박탈해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을 문자의 선형적인 구조로 인하여 이러한 능력을 박탈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맥클루언은 문자 문화의 선형성을 경계하여 문자 문화의 메커니즘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시도도 하였다.)

맥클루언은 구텐베르크 혁명으로 대변되는 인쇄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자 문화가 발달했으며 이는 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즉 음성 자체의 공감각적 의미, 구어의 전달에 수반되는 감각들의 통합, 직접적인 말의 즉흥적 다양성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한 문자 해독능력은 '거짓된 믿음'(맥클루언의 말)을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문자는 그 자체로 객관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문자(쓰기)는 구어와는 달리 잘못된 표현이나 오류를 계속적으로 수정해왔으므로 문자(쓰기)스스로 객관성을 축적해 왔다고 생각한다.-월터 옹의 저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말한 것을 유추해서 글쓴이 스스로가 언급해 보았다.] 텍스트의 순차적인 행들을 읽다보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단 하나의 시점을 받아들이고 다원적 시간의 상실에 따른 직관과 상상력을 잃어 버렸고 말하고 있다. (맥클루언은 선형성을 따름으로 해서 잃어버리는 직관과 상상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스스로 이러한 선형성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맥클루언의 주장은 자기 중심적이고도 편향적인 성격을 띄고 있을 수도 있다. 허나 이 책에서 조너선 밀러가 언급했듯이 맥클루언의 여러 가지 주장들로 인하여 그의 주장을 반박 또는 옹호함으로써 진리의 가능성에 더욱 가깝게 다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불교에서 고승들이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자신도 해답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카트린느 장틸 지음, 한덕화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난 TV를 보고 있었다. TV 속에선 기자가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기사와 예상 공격 방법, 지상군 투입의 여부 등 전쟁의 상황을 계속해서 보도했다. 조금 지난 후 미국의 함대가 발사하는 미사일의 장면이 등장하며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는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굉음을 울리며 날아가는 미사일이 향하는 그곳엔 분명 이라크인들 그들의 가족, 연인,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봤던 TV속엔 가족도 연인도 아이들도 없었다. 단지 전파를 타고 TV 브라운관을 비추는 짖게 깔린 어둠과 화염으로 휩싸인 바그다드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쟁의 모든 것이다.

이 책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는 우리가 보아온 전쟁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전쟁 속 얘기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까트리느 장틸은 메이저 언론사들이 특종으로 보도하는 최신식의 무기도 고도의 작전 전략 등 소위 말하는 특종 보도에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 전쟁의 위기가 극도로 고조되어 있는 순간에도 톱 뉴스의 타이틀이나 내용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녀가 사탕을 쥐어주며 웃어 주었던 한 소녀가 무사하기를 기도했고 전쟁의 고통이 그 어린 소녀에게 비켜가길 간절히 기도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그 평화를 누려야할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 과연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희생을 최소화하는 정밀한 공격이라는 기사가 톱 뉴스가 되기보다는 그 최소한의 희생을 당한 사람, 그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

전쟁은 그녀에게 상처를 남겼고 슬픔을 주었지만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게 그들의 아픔을 얘기한다. 전쟁의 화염 속에서 신음하는 그들이야 말로 그녀의 가족이며 연인이며 그녀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평화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그녀는 기꺼이 분쟁지역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은 희망의 모습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