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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기억의 끝에서 우리가 말하수 있는 건,
“롤런드는 미소 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피할 수 없는 후퇴가 시작되었다. 또다시 만일이라는 가정이 등장한다….만일 …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의 습관처럼 기억의 순간순간 나를 붙잡는 말, 만일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러나 삶은 이미 흐르고 역사는 계속해서 삶을 나이들게 한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어쩌면 기억 그대로 그때의 삶을 돌아보는 것, 마주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지 않을까. 작가는 [레슨]이라는 거대 장편소설이 자신의 첫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작가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들게 되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이러한 소설을 꼭 한편은 쓰게 되나보다. 자신의 삶이 들어간 소설같은 소설을, 작가 이언 매큐언의 삶도 거대한 역사와 함께 굴러간다. 역사의 변화속에서 인간의 삶은 아주 작은듯 평범하게 보이기도하나 소설을 읽다보면 결코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는 정말 지성의 작가인듯 싶다. 역사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그렇게 개인의 서사와 함께 잘 맞추어 나가는지, 그의 문장들을 읽을때마다 인간의 어쩔수 없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사랑도, 비애도, 야망과 좌절도 아름답다시피 그려낸다. 칠백여페이지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여러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교차하며 그들의 성장기부터 노년기까지 아니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짜임새있게 그려진다. 그들은 현재 일어난 삶은 결코 혼자만의 삶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시절에 누구를 만나 어떠한 상황을 겪었나에따라 우리는 뜻밖의 모습으로 바뀌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를 불안하게도 고독하게도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계속해서 더듬어가게 하기도 한다.주인공 서른일곱살 롤런드는 어느날 아내 앨리사가 쪽지 한장 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상황을 겪는다. 그와 한살배기 아들을 남기고 흔적하나없이 떠난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기억이 그를 사로 잡는다. 기억속에 있던 여러 인물들을 소환해내며 그의 삶이 어떠한 선택과 행위를 해야만 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기억속에서 그의 십대시절을 지배했던 피아노 레슨 선생 미리엄코넬. 그에게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그들의 금단의 사랑.파괴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집착의 시간들.그는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버리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그녀를 판단할 만한 가치기준이 없었다. 올바른 척도가 없었다‘고 고백하며 그는 피아노 레슨이 주는 사랑과 원한,용서에 대한 긴 서사를 들려준디. 그 후 그는 앨리사와 결혼하고 아이를 얻는다. 그는 재능을, 꿈을 모두 접고 아이 키우기에 온 시간을 보낸다. 안정을 얻은듯 했던 시간속에서 그의 아내가 사라진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앨리사는 ’나는 침몰하지 않을 거예요.나 자신을 구원할 거예요.‘라며 과감히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난다. 그는 육아에 전념한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꿈과는 먼 현실이라는 굴레 속에서 여러 직업들을 전전하며 아이를 키워낸다. 아주 평범한듯 그렇지만 결코 평범하지않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누구나 하나 하나의 선택을 하며 버텨온 삶을 보낼때마다 그러한 말을 읊조리게 된다.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럴때마다 롤런드는 아이와 함께 그의 삶을 연대해 온 많은 이들을 떠올린다. 그의 가족사. 앨리사의 가족사, 그리고 아버지의 권유로 받게 된 ’피아노 레슨‘과 그를 사랑한 미리엄코넬, 그리고 함께 겪게되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 베를린 장벽붕괴, 체르노빌 원전 사고, 코로나 사태등). 그는 다양한 인간사에 펼쳐지는 일들을 예사로 넘기지 않는다. 어느면에서 보면 어떠한 기록물 같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늘 그러한 크고작은 사회적 사건,시고를 겪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은 크게도 소소하게도 보인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성들이 매일같이 묻어난다. 우리는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은 늘 후회도 남기도 아쉬움도 준다. 그러나 그 다른 선택또한 어떠한 방향으로 흐를지 우리는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언 매큐언은 말한다. 어떠한 선택이든 최선이고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고. 그것이 현재의 삶이라고. ‘그는 집으로 돌아갈 테고 그의 삶은 예전처럼 흘러갈 것이다.‘(p341)
나이들어 다시 돌아보는 미리엄 코넬에 대한 연민같은 사랑 이야기, 앨리사에 대한 사랑의 표현들, 그리고 앨리사의 소설에 대한 그의 인정과 응원의 메세지, 그에게 안정을 준 대프니의 죽음,어머니 제인의 일기장과 로절랜드의 삶과 죽음등 이언 매큐언이 표현해낸 문장들, 이해와 공감의 언어들이 순간 순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리고 소설속에서 팁을 주는 장면에서 롤런드를 보고 클린트이스트우드를 닮았다는 문장은 푸웃하고 웃음이 났다.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자전적소설 맞네 하는)그이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다. 삼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중략)새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사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십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p467)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은 영화로도 제작된것이 많아서 꽤나 유명하다. 그의 이번 소설이 너무 좋아서 곧 구입해놓고 아직 읽지 못한 <속죄>도 읽어야 겠다. 그리고 영화로 제작한 <어톤먼토>도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역사를 기록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