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의 빛을 따라 암실문고
나탈리 레제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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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구할 단 한마디 말도 발명하지 못했다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게서 너를 끝내 빼앗아간 것은 이 소용없는 부끄러움,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는 너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무거웠다. 너무 무거웠다. 왜냐하면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너의 죽음,둘이 되었으니까. ‘(P19)

죽음, 그것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 나탈리 레제. 그녀는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인 남편 장-루 리베이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글을 쓴다. 얇은 책자속에는 그녀만의 죽음을 바라보는 미학적인 문장과 철학적 사유가 가득하다.읽을 수록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레제의 문장들이 오래 위로를 준다. 왠지 쓸쓸해지는 기온속에서 문득, 드는 죽음의 내음속에서 이 책은 내심 감탄하며 상실이 주는 계절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진부한 말들을 만지작 거린다. 진부한 말들을 만지작 거리면서 수많은 밤을 전부 겪는다. 내가 알아낸 게 있다면 모든 것이, 그게 죽음인지 삶인지는 이제,나도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모르고 있기에는 너무 느리게 지나가고, 무언가 알기에는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p24)

갑작스레 다가오기도 하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상실의 경험, 죽음은 언제든 곁에서 맴돌고, 자주 불한하게도 때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을 수반하는 시간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을 표현해주는 문장들이 그리 진부하지않게 권태롭지 않게 다가온다. 죽음 후, 남편의 코트주머니에서 나온 쪽지 하나, 그것은 그저 일상의 영수증이었는데. 그 대목에서 나는 마음 한 편이 무너져 내렸다. 고인이 여전히 집 안 어느곳에서도 있을듯한 느낌. 미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짐하면서도 어디서든 한번은 더 마주치고 싶은 남편의 일상. 그 영원한 부재가 감정으로 지나치게 물들지 않으려하지만 레제의 글에 자꾸만 빠지게 한다.

‘그는 죽었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내겐 계속해서 뒤씹어야할 분노도, 회한도, 비난도, 씁쓸함도 없다.내겐 오직 하나뿐, 없음뿐이다.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가 다시 형성되고 또다시 무너져 내리는, 거대하고 끔찍한 없음.여기에 생각은 부재한다. 내겐 오직 두터운 물질뿐, 휘저어야 할 만큼 두껍게 들어차 있는 오늘 하루의 일과뿐이다.‘(p54)

내가 좋아하는 암실문고,
또 하나의 빛을 발한다.

#창공의빛을따라 #나탈리레제 #을유문화사
#암실문고 #문학 #에세이 #정독과완독의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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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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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내내 십대에 읽었던 <갈매기의 꿈>처럼 청소년 필독서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인간종인 주인공 귀스와 멸종위기에 놓인 큰바다쇠오리의 만남은 왠지 큰바다쇠오리가 하나의 인간종처럼 느껴지게 했다. 물론 작가는 큰바다쇠오리를 단순하게 의인화시키지 않았다. 그저 주인공 귀스의 시선으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표현하고 그려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자꾸 큰바다쇠오리는 인간말을 알아듣는듯 하고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지, 그만큼 작가의 묘사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귀스는 동물상을 연구하기 위해 떠난 엘데이섬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큰바다쇠오리 한 마리를 구하게 된다. 개체수가 얼마되지 않는 큰바다쇠오리는 인간종에게 인기가 많았다. 큰바다쇠오리를 잡아먹기도 했지만(이 참혹한 행위를 보며 왠지 채식주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해체해서 매매하기도 하고 박물관에서 박재로 전시하기도 했다. 사실 귀스도 박물관에 보내기 위해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큰바다쇠오리와 지내면서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다. 그는 큰바다쇠오리에게 프로스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이름을 지어주고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는 멸종의 존재가 된 프로스프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계속해서 질문하며 답을 요구하게 되고 종의 생존과 소멸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프로스프의 멸종을 막기위해 짝을 맺어주려하지만 이미 프로스프는 그 개체에 속할 수가 없는 또 다른 종이 된듯 했다.

“그의 큰바다쇠오리가 모르는 게 있었다. 울타리 안에 사는 덕분에 매일 긴수염고래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었다. 귀스 가까이 사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일상적으로 먹이를 받아먹고 안전하도록 보살핌을 받는 일이 얼마나 유익한지 큰바다쇠오리는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귀스라면 그 두 가지 조건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시킬까? 확신할 수 없었다.”(p121) 인간의 손에서 구해냈지만 인간의 손에 야생의 질서를 잊어버리고 안전을 보장받는 큰바다쇠오리 프로스프는 과연 행복할까? 귀스는 계속해서 사유의 시간을 펼친다. (P124의 글들이 너무도 인상적). “ 동종의 개체들과 어울려 사는 것은 프르스프의 권리였다. 프르스프가 자기네 종이 번식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었다. 귀스는 프로스프가 차도와 조약돌이 어우러진 풍광속에서 다른 큰바다쇠오리의 목을 끌어안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p130) 결국 그는 안전한 생활을 뒤로하고 프로스프의 남겨진 삶을 위해 아이슬란드 섬으로 떠난다.

나는 이 소설을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에 하나 남은 개체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문장에 반해서 읽게 되었다. 종의 마지막을 보며 함께하게 된 여정, 그 눈부신 유대와 자연을 향한 한 인간의 성찰과 사유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인간언어로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그 모든 몸짓과 눈빛은 서로를 서서히 읽어낸다. 소설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만하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모든 생명에 대한 책임을 고민하게 한다. 멸종의 위기에서 함께 존재하게 된 이유, 그것은 인간종만이 살아가는것이 아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대한 질문과 답을 새로이 찾아가게 한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하다는 이유로 크고작은 폭력을 행사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물어보고 있을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의 삶을 어떻게 영위해 가기를 원하는지?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함께 읽었으면 싶은 책이기도 하지만 청소년의 필독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젊은 친구들에게 추천책으로 찜해놓은)2025년에 작가인 시빌 그랑베르는 노벨문학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와 도시 이브토에 있는 레몽 크노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이 소설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만큼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할것들이 많다는 것이다.옮긴이의 독특한 문장또한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았던 표현들이라 찾아보기도 했다. ’어수선산란한‘, ’지저깨비에 섞인’, ‘호졸근한‘, ’왈카닥거릴만큼‘, ’웃음새가 고운’등 꽤나 많은 번역을 하신 이세욱님의 언어들이 새롭게 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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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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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끝에서 우리가 말하수 있는 건,
“롤런드는 미소 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피할 수 없는 후퇴가 시작되었다. 또다시 만일이라는 가정이 등장한다….만일 …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의 습관처럼 기억의 순간순간 나를 붙잡는 말, 만일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러나 삶은 이미 흐르고 역사는 계속해서 삶을 나이들게 한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어쩌면 기억 그대로 그때의 삶을 돌아보는 것, 마주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지 않을까. 작가는 [레슨]이라는 거대 장편소설이 자신의 첫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작가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들게 되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이러한 소설을 꼭 한편은 쓰게 되나보다. 자신의 삶이 들어간 소설같은 소설을, 작가 이언 매큐언의 삶도 거대한 역사와 함께 굴러간다. 역사의 변화속에서 인간의 삶은 아주 작은듯 평범하게 보이기도하나 소설을 읽다보면 결코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는 정말 지성의 작가인듯 싶다. 역사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그렇게 개인의 서사와 함께 잘 맞추어 나가는지, 그의 문장들을 읽을때마다 인간의 어쩔수 없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사랑도, 비애도, 야망과 좌절도 아름답다시피 그려낸다. 칠백여페이지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여러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교차하며 그들의 성장기부터 노년기까지 아니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짜임새있게 그려진다. 그들은 현재 일어난 삶은 결코 혼자만의 삶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시절에 누구를 만나 어떠한 상황을 겪었나에따라 우리는 뜻밖의 모습으로 바뀌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를 불안하게도 고독하게도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계속해서 더듬어가게 하기도 한다.주인공 서른일곱살 롤런드는 어느날 아내 앨리사가 쪽지 한장 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상황을 겪는다. 그와 한살배기 아들을 남기고 흔적하나없이 떠난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기억이 그를 사로 잡는다. 기억속에 있던 여러 인물들을 소환해내며 그의 삶이 어떠한 선택과 행위를 해야만 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기억속에서 그의 십대시절을 지배했던 피아노 레슨 선생 미리엄코넬. 그에게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그들의 금단의 사랑.파괴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집착의 시간들.그는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버리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그녀를 판단할 만한 가치기준이 없었다. 올바른 척도가 없었다‘고 고백하며 그는 피아노 레슨이 주는 사랑과 원한,용서에 대한 긴 서사를 들려준디. 그 후 그는 앨리사와 결혼하고 아이를 얻는다. 그는 재능을, 꿈을 모두 접고 아이 키우기에 온 시간을 보낸다. 안정을 얻은듯 했던 시간속에서 그의 아내가 사라진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앨리사는 ’나는 침몰하지 않을 거예요.나 자신을 구원할 거예요.‘라며 과감히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난다. 그는 육아에 전념한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꿈과는 먼 현실이라는 굴레 속에서 여러 직업들을 전전하며 아이를 키워낸다. 아주 평범한듯 그렇지만 결코 평범하지않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누구나 하나 하나의 선택을 하며 버텨온 삶을 보낼때마다 그러한 말을 읊조리게 된다.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럴때마다 롤런드는 아이와 함께 그의 삶을 연대해 온 많은 이들을 떠올린다. 그의 가족사. 앨리사의 가족사, 그리고 아버지의 권유로 받게 된 ’피아노 레슨‘과 그를 사랑한 미리엄코넬, 그리고 함께 겪게되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 베를린 장벽붕괴, 체르노빌 원전 사고, 코로나 사태등). 그는 다양한 인간사에 펼쳐지는 일들을 예사로 넘기지 않는다. 어느면에서 보면 어떠한 기록물 같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늘 그러한 크고작은 사회적 사건,시고를 겪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은 크게도 소소하게도 보인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성들이 매일같이 묻어난다. 우리는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은 늘 후회도 남기도 아쉬움도 준다. 그러나 그 다른 선택또한 어떠한 방향으로 흐를지 우리는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언 매큐언은 말한다. 어떠한 선택이든 최선이고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고. 그것이 현재의 삶이라고. ‘그는 집으로 돌아갈 테고 그의 삶은 예전처럼 흘러갈 것이다.‘(p341)

나이들어 다시 돌아보는 미리엄 코넬에 대한 연민같은 사랑 이야기, 앨리사에 대한 사랑의 표현들, 그리고 앨리사의 소설에 대한 그의 인정과 응원의 메세지, 그에게 안정을 준 대프니의 죽음,어머니 제인의 일기장과 로절랜드의 삶과 죽음등 이언 매큐언이 표현해낸 문장들, 이해와 공감의 언어들이 순간 순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리고 소설속에서 팁을 주는 장면에서 롤런드를 보고 클린트이스트우드를 닮았다는 문장은 푸웃하고 웃음이 났다.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자전적소설 맞네 하는)그이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다. 삼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중략)새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사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십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p467)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은 영화로도 제작된것이 많아서 꽤나 유명하다. 그의 이번 소설이 너무 좋아서 곧 구입해놓고 아직 읽지 못한 <속죄>도 읽어야 겠다. 그리고 영화로 제작한 <어톤먼토>도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역사를 기록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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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에세이
발터 벤야민 지음, 새뮤얼 타이탄 엮음, 김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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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범람하는 활자들과 작은 액정화면속에서 수시로 정보를 얻고 실제 경험지가 없어도 경험한듯 살아가는 시대를 살아간다. 어쩌면 미리 경험을 얻어내고 최대한 실수를 피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대를 작가 벤야민은 정보가 경험지를 대체하게 되는 인간이 고립되는 시대라고 보고 그것은 ‘이야기의 소멸’을 야기한다고 보았다.즉 “이야기가 사라지는 자리에 고립된 개인만 남았다고 진단”하고 “공유될 수 있는 경험지가 풍족해진 것이 아니라 더 부족해진 시대”라고 본다.

이야기는 산문형식을 담은 속담, 동화, 영웅담, 우스개, 재담으로서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을 이야기꾼이라고 한다. 이야기꾼은 “조언할 줄 아는 사람“ 곧 엄청난 기억력 덕분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본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그냥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이 아닌 이야기를 전하는 기술을 갖추고 이야기꾼의 경험지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세대로부터 전수되는 집단적 경험으로서 일종의 ’지혜의 서사‘가 되면서 ’산 증언‘이고 그래서 생명력이 있는 조언자의 역활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꾼과 소설읽기의 구분되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소설 독자는 혼자 읽는다. 아주 오랫동안 혼자 읽는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읽은 것을 독차지한다. 소설 독자는 질투가 심하고 독점욕이 강하다. 그에게는 소설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야말로 흔적도 나기지 않고 먹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벽난로 불이 장작을 불태우듯 그는 자기가 읽는 소설을 먹어 없앤다.”(p103/왠지 내 느낌같은)그래서 소설 읽기는 이야기꾼과 다르게 혼자만의 개인적 행위인듯도 싶다. 내 경험지와는 다르게 소설속 주인공의 삶을 의미를 읽어내는 것, 독자개개인이 섭취하는 탐미적 행위인 것이다.

이야기는 혼자만의 책읽기와 다르게 계속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벤야민은 ”진실한 이야기는 드러나 있는 쓸모가 있는 이야기다. 쓸모는 교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실무 지침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속담이나 생활 수칙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세 경우 모두 이야기꾼은 “ 조언을 들려줄줄 안다”는 말이다.(중략)조언을 들려준다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이야기의 다으편에 대한 제안을 내놓는 것이다. 조언을 들려달라고 하면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조언이라는 실로 삶이라는 천을 짠 것이 지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벤야민은 이러한 이야기와 이야기꾼들이 점점 몰락하고 소멸해간다고 한다.그것은 점점 우리 인류의 유산을 한 뭉치씩 탕진하는 것처럼 우리의 가난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벤야민의 [이야기꾼 에세이]는 문명화되는 사회속에서 이야기를 전할 힘이 사라지는 것을 위태롭게 바라본다. 벤야민은 여러 사상가와 작가들의 글을 함께 수록하으로써 다시 [이야기]의 부활을 꿈꾼다. 그는 이야기 기술의 소멸을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엮여내는 인간적 상실로 보았다. 이 책은 벤야민의 베를린 학창시절에서 시작되어 1920년대 후반기에 얻은 긴 사유의 결과물이다. 발표된 에세이와 신문기사, 서평 ,단편들을 모아 [이야기꾼 에세이]로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철학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사상가 발터 벤야민의 이 책은 열 세평의 비평이 실려있고 그의 다른 저서 [고독의 이야기들]과 함께 읽으면 색다른 고전여행이 될 듯하다. 오래전에 쓰여진 글이 지금 시대에도 반영되는것이 늘 놀랍기만하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지 않을까싮다. 이야기꾼 발터 벤야민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세이, 보여주는 정보에 의지하는 시대에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에세이는를 읽느것만으로도 훨씬 삶의 의미가 다채롭고 사유의 색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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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
에릭 포토리노 지음, 하진화 옮김 / 레모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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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하고 기다리고 이제 받아서 펼쳐봅니다.
강렬한 문장, 기대했던 책. 표지에 또 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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