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야기꾼 에세이
발터 벤야민 지음, 새뮤얼 타이탄 엮음, 김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평점 :
우리는 범람하는 활자들과 작은 액정화면속에서 수시로 정보를 얻고 실제 경험지가 없어도 경험한듯 살아가는 시대를 살아간다. 어쩌면 미리 경험을 얻어내고 최대한 실수를 피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대를 작가 벤야민은 정보가 경험지를 대체하게 되는 인간이 고립되는 시대라고 보고 그것은 ‘이야기의 소멸’을 야기한다고 보았다.즉 “이야기가 사라지는 자리에 고립된 개인만 남았다고 진단”하고 “공유될 수 있는 경험지가 풍족해진 것이 아니라 더 부족해진 시대”라고 본다.
이야기는 산문형식을 담은 속담, 동화, 영웅담, 우스개, 재담으로서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을 이야기꾼이라고 한다. 이야기꾼은 “조언할 줄 아는 사람“ 곧 엄청난 기억력 덕분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본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그냥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이 아닌 이야기를 전하는 기술을 갖추고 이야기꾼의 경험지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세대로부터 전수되는 집단적 경험으로서 일종의 ’지혜의 서사‘가 되면서 ’산 증언‘이고 그래서 생명력이 있는 조언자의 역활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꾼과 소설읽기의 구분되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소설 독자는 혼자 읽는다. 아주 오랫동안 혼자 읽는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읽은 것을 독차지한다. 소설 독자는 질투가 심하고 독점욕이 강하다. 그에게는 소설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야말로 흔적도 나기지 않고 먹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벽난로 불이 장작을 불태우듯 그는 자기가 읽는 소설을 먹어 없앤다.”(p103/왠지 내 느낌같은)그래서 소설 읽기는 이야기꾼과 다르게 혼자만의 개인적 행위인듯도 싶다. 내 경험지와는 다르게 소설속 주인공의 삶을 의미를 읽어내는 것, 독자개개인이 섭취하는 탐미적 행위인 것이다.
이야기는 혼자만의 책읽기와 다르게 계속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벤야민은 ”진실한 이야기는 드러나 있는 쓸모가 있는 이야기다. 쓸모는 교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실무 지침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속담이나 생활 수칙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세 경우 모두 이야기꾼은 “ 조언을 들려줄줄 안다”는 말이다.(중략)조언을 들려준다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이야기의 다으편에 대한 제안을 내놓는 것이다. 조언을 들려달라고 하면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조언이라는 실로 삶이라는 천을 짠 것이 지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벤야민은 이러한 이야기와 이야기꾼들이 점점 몰락하고 소멸해간다고 한다.그것은 점점 우리 인류의 유산을 한 뭉치씩 탕진하는 것처럼 우리의 가난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벤야민의 [이야기꾼 에세이]는 문명화되는 사회속에서 이야기를 전할 힘이 사라지는 것을 위태롭게 바라본다. 벤야민은 여러 사상가와 작가들의 글을 함께 수록하으로써 다시 [이야기]의 부활을 꿈꾼다. 그는 이야기 기술의 소멸을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엮여내는 인간적 상실로 보았다. 이 책은 벤야민의 베를린 학창시절에서 시작되어 1920년대 후반기에 얻은 긴 사유의 결과물이다. 발표된 에세이와 신문기사, 서평 ,단편들을 모아 [이야기꾼 에세이]로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철학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사상가 발터 벤야민의 이 책은 열 세평의 비평이 실려있고 그의 다른 저서 [고독의 이야기들]과 함께 읽으면 색다른 고전여행이 될 듯하다. 오래전에 쓰여진 글이 지금 시대에도 반영되는것이 늘 놀랍기만하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지 않을까싮다. 이야기꾼 발터 벤야민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세이, 보여주는 정보에 의지하는 시대에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에세이는를 읽느것만으로도 훨씬 삶의 의미가 다채롭고 사유의 색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