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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ㅣ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평점 :
📕싯다르타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유일한 목표이기도 했다. 비우는 것. 갈증을 비우고, 소망을 비우고, 꿈을 비우고, 기쁨과 번뇌를 비우는 것.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더 이상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것,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찾는 것, 자아라는 관념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기적을 마주 대하는 것, 이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모든 자아가 극복되고 죽어버린다면, 가슴속의 모든 추구와 욕망이 침묵을 지킨다면, 최후의 것이 태어날 것이다. 존재의 가장 내밀한 것이자 더 이상 자아가 아는 그것, 그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이다. 29p.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나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고 분리되어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싯다르타라는 것, 이 수수께끼가 지금까지 나의 온 사고를 사로잡았어. 그리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 즉 싯다르타에 대해서 제일 모르고 있어! 63p
📕사물의 의미와 본질은 사물의 배후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안에, 모든 것 안에 있었다. 66p.
📕나는 바보가 되어야 했다. 내 안에 있는 참나를 다시 찾기 위해서. 내가 가는 이 길은 나를 어디로 인도할까? 이 길은 바보 같은 길이다. 이 길은 빙빙 돌아가는 길이고, 이 길은 아마도 순환되는 길일 것이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나는 이 길을 가고 싶다. 147p.
📕“사물들이 가상이든 아니든, 나도 역시 가상일 뿐이니 관계없지. 사물들은 늘 나와 같은 것이야.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사물들을 사랑하고 존중해. 사물들이 나와 같은 존재라서 나는 사물들을 좋아하지. 고빈다야,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세상을 꿰뚫어 보고,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인지는 모르겠어. 내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이로운 마음과 경외심으로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이야. 218p.
📝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네요. 소설 ‘싯다르타’는 청년 ‘싯다르타’와 친구 ‘고빈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구도의 길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자기 자신, 내면에 대한 탐구는 종교와 이어져 새로운 길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길이면서도 계속 반복됩니다. ‘강물이 웃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이 그렇다. 모든 것은 다시 되돌아온다. 끝까지 겪어내어 해결하지 못한 것들은 다시 되돌아오고, 늘 똑같은 번뇌가 되어 괴롭힌다.197p.’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가며 괴로운 일들은 이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질문과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과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의 말에 몰입해서 그 사람이 말한 답을 실천하려 노력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보다 세상이 원 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싯다르타는 소설 속에서 계속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는 와중 수행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결말에서 싯다르타가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하게 말하면 ’싯다르타의 미소’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고요. 조금 길게 말하자면 싯다르타의 미소에 담긴 수많은 순간과 감정, 번뇌와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말은 모두에게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글을 쓰는 능력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끄집어내 어떤 형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해 이토록 탐구하며 알고자 노력한 적이 있는가. 그런 질문해 해보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날에 나는 사랑스럽고, 어떤 날의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어떤 날의 나는 밉고, 어떤 날의 나는 슬프고, 어떤 날의 나는 우울하고, 어떤 날의 나는 알 수 없어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날을 겪어내고 어떤 날에 나와 세상을 결국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만들어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다 해도 언제나 가고 싶은 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