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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되었으나 새로운 세계로
최예슬 지음 / 어라운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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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 책은 ‘절기따라 걷기’라는 제목을 함께 하고 있는데 ‘절기’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 절기에 느끼는 작가 개인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꼭 남의 이야기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어느새 친근해지는 책이다. 이 책을 때때로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함께 걸어 보았다.

그저 단순하게 사계절의 이름을 헤아리며 살아왔지만 계절과 계절 사이에 수많은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는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절기마다 해야 할 일들일 해왔던 사람들, 어쩌면 지금도 그것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 그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억지로 당기고 미는 것이 아니라 그 절기가 해야 할 일을 기다려주고 다가오면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마흔이 넘어서야 사계절이 아닌 절기를 따라 살아가야지 생각한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당한 때일지도 모른다. 계절에 대한 감각을 다시 가지고 노력하려는, 다소 진지한 마음을 가져보려 하는 때가, 지금 즈음인 것은.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제목처럼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계절의 사이에서 마음이 힘들어지거나 다음 계절이 그리워지거나 다음 계절이 기다려질 때, 이 책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그 절기에 맞게 내 마음을 헤아려줄 것만 같다. 그 순간에 무엇이 필요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절기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해보고 싶다.

입하. 여름의 시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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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기분
전지 지음 / 가지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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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편하기 느껴야 타인도 나를 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나에게 열쇠가 되기도 하지만 어려운 숙제이다. 무언가를 수행할 때 가장 확신하기 힘든 게 그 ‘느낌’이기 때문이다. 내 느낌이 맞다는 것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나 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74p.

내 안에 비좁게 엉겨 붙은 채 불안으로 웅크리고 있는 ‘나’들을 “이제 나가 놀아.” 하면서 조금씩 떼어 내보낸다면 내 안에도 좀 더 여유로운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상대방이 잘 보이고, 이야기도 몰입되고, 오롯한 관찰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타인의 기대나 평가를 신경 쓰며 하는 이야기가 아닌 진실을 찾으려는 내향인의 몸짓처럼, 나의 언어로 딱 내만큼만. 100p.

📝 이 책의 제목을 마주하고 궁금해졌다.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물론 담임 선생님의 날짜 호명에 번호가 불릴까 속으로 얼마나 긴장했던가. 학급회의라도 하는 날에는 입에 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조용했던 나였다.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자제하는 삶을 살아온 나는 좋아하는 사람도, 친한 사람도 아주 조금이다. 사람이 많으면 정신이 없고 긴장되고 기분이 이상해진다.

성격 테스트와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자기소개, 매끄러운 발표, 그런 것들이 대체로 어색하고 싫었다. 꼭 해야 되는 날에는 무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어찌저찌 했지만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특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그런 고민이나 고통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유의미하다는 것이었다. 책 속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과 깊게 대화한다. 그것만으로도 뭔가를 해내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 해내지 않아도 좋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나도 ‘발표불안’이 있어서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는지도 모르겠다. 전지 작가님의 북토크가 궁금해진다. 작가와의 대화 때 관객들에게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자’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141p)라는 말이 듣기 좋다. 이보다 다정할 수가 있나 싶다. 누군가에게는 ‘오잉’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로는 타인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지만.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쓴다는 것도, 나를 이해하기 위해 깊게 파고드는 것도 다 필요한 일이다. 어찌 되었든 전지 작가님의 속앓이는 이렇게 멋진 결과물로 나왔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고장 난 채로도 잘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으면 어떠한가. 지금 이 속도도 나쁘지 않다. 전지 작가님의 다음이 작품이 기대된다. 그건 어떤 기분일까. ‘고장 난 기분’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발표공포가 있는 내향인에게 추천!
* 주목 받으면 어색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경험 있는 분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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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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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꽃’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는 이 책은 형태는 책이지만 언제든 보고 싶을 때 펼칠 수 있는 꽃다발같다. 화가들이 꽃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꽃밭 앞에서 사진을 찍고 걸음을 멈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꽃은 피어나고 진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고 시들어가며 그 얼굴을 감춘다. 꽃은 순간을 담고 있고 화가는 저마다의 시선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한 가지 꽃에 한 가지 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열 사람이라면 열 가지, 백 사람이라면 백 가지의 그림이 있게 된다. 이 책은 꽃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으로부터 전해져오는 아름다움, 시들지 않는 순간을 보여준다.

꽃이 보고 싶을 때면 이 책을 찾아 무릎에 올려 놓아야겠다. 그렇게 천천히, 내 손 안에 작은 꽃 전시회를 즐겨야겠다. 원한다면 언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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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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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이라는 제목처럼 독특한 감성을 담고 있는 책. 이 책은 ‘잡화’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잡화로부터 파생된 어떤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표현하기 모호해서 한참을 지웠다 쓰기를 반복했다. 이 책 자체가 잡화적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가 말하는 ‘잡화감각’을 읽어 나가며 내가 생각하는 ’잡화감각‘에 대해서도 틈틈이 생각했다. ‘잡화’라는 건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저 내가 어떤 것을 ‘잡화’에 넣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때로는 파도에 휩쓸리듯 모두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처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새롭게 발견한 각자의 무엇‘으로부터 잡화는 시작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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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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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유일한 목표이기도 했다. 비우는 것. 갈증을 비우고, 소망을 비우고, 꿈을 비우고, 기쁨과 번뇌를 비우는 것.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더 이상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것,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찾는 것, 자아라는 관념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기적을 마주 대하는 것, 이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모든 자아가 극복되고 죽어버린다면, 가슴속의 모든 추구와 욕망이 침묵을 지킨다면, 최후의 것이 태어날 것이다. 존재의 가장 내밀한 것이자 더 이상 자아가 아는 그것, 그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이다. 29p.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나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고 분리되어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싯다르타라는 것, 이 수수께끼가 지금까지 나의 온 사고를 사로잡았어. 그리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 즉 싯다르타에 대해서 제일 모르고 있어! 63p

📕사물의 의미와 본질은 사물의 배후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안에, 모든 것 안에 있었다. 66p.

📕나는 바보가 되어야 했다. 내 안에 있는 참나를 다시 찾기 위해서. 내가 가는 이 길은 나를 어디로 인도할까? 이 길은 바보 같은 길이다. 이 길은 빙빙 돌아가는 길이고, 이 길은 아마도 순환되는 길일 것이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나는 이 길을 가고 싶다. 147p.

📕“사물들이 가상이든 아니든, 나도 역시 가상일 뿐이니 관계없지. 사물들은 늘 나와 같은 것이야.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사물들을 사랑하고 존중해. 사물들이 나와 같은 존재라서 나는 사물들을 좋아하지. 고빈다야,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세상을 꿰뚫어 보고,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인지는 모르겠어. 내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이로운 마음과 경외심으로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이야. 218p.

📝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네요. 소설 ‘싯다르타’는 청년 ‘싯다르타’와 친구 ‘고빈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구도의 길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자기 자신, 내면에 대한 탐구는 종교와 이어져 새로운 길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길이면서도 계속 반복됩니다. ‘강물이 웃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이 그렇다. 모든 것은 다시 되돌아온다. 끝까지 겪어내어 해결하지 못한 것들은 다시 되돌아오고, 늘 똑같은 번뇌가 되어 괴롭힌다.197p.’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가며 괴로운 일들은 이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질문과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과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의 말에 몰입해서 그 사람이 말한 답을 실천하려 노력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보다 세상이 원 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싯다르타는 소설 속에서 계속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는 와중 수행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결말에서 싯다르타가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하게 말하면 ’싯다르타의 미소’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고요. 조금 길게 말하자면 싯다르타의 미소에 담긴 수많은 순간과 감정, 번뇌와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말은 모두에게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글을 쓰는 능력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끄집어내 어떤 형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해 이토록 탐구하며 알고자 노력한 적이 있는가. 그런 질문해 해보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날에 나는 사랑스럽고, 어떤 날의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어떤 날의 나는 밉고, 어떤 날의 나는 슬프고, 어떤 날의 나는 우울하고, 어떤 날의 나는 알 수 없어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날을 겪어내고 어떤 날에 나와 세상을 결국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만들어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다 해도 언제나 가고 싶은 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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