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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고백 ㅣ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기 드 모파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평점 :
『첫눈, 고백』 기 드 모파상 구영옥 옮김 – 삶과 세상의 심연(深淵)
번쩍번쩍, 벌겋게 달려와서 토해내는 앰뷸런스 소리가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그 날카로운 소리가 강추위에 벌벌 떨던 사람들을 더 움츠리게 했다. 지난주부터 몰아친 시베리아 한파가 물러서지 않고 기세를 떨치고 있다. 오늘따라 매서운 바람까지 불어왔다. 늦게 달려온 시내버스는 바깥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마스크와 귀마개를 벗지 못하고 히터가 나오는 차가운 의자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 강추위는 언제 물러갈까? 차창으로 어두운 삶과 세상이 달려든다.
기 드 모파상의 『첫눈, 고백』이라는 책은 단숨에 읽힌다. 모파상이 쓴 단편소설들은 지금도 여전히 삶과 세상의 심연을 읽어내는 척도다. 삶과 세상의 어둠과 빛이 흐르는 모파상의 소설들은 고전(古典)이다. <첫눈>의 시작에서 남프랑스 칸(Cannes) 해안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크루아제트의 긴 산책로는 푸른 바닷가를 따라 부드럽게 굽어 있다. 오른쪽 멀리 에스테렐 산맥이 바다 속으로 길게 뻗어 들어가며, 그 뽀족하고 기묘한 봉우리들이 남부 특유의 아름다운 장식처럼 지평선을 막고 있다.
왼편에는 생마르그리트 섬과 생오노라 섬이 물 위에 누워, 소나무로 덮인 산등성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토록 아름답고 온화한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젊은 여인이 있다. 여인은 4년 전 재산상의 이유로 노르망디 출신의 신사 앙리와 결혼한다. 노르망디 겨울은 시베리아 한파처럼 지독하다. 그 추위에 견디기 위해 여인은 앙리에게 난방기 설치를 부탁한다. 하지만 앙리는 부인의 부탁을 농담으로 생각하며 거절한다.
“여기에 난방기라니! 난방기라니! 아! 아! 아! 정말 기막힌 농담이군!”
1월 초, 그녀에게 큰 불행이 닥쳤다. 부모님이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녀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파리로 갔다. 그리고 여섯 달 동안 슬픔만이 그녀의 마음을 지배했다.
겨울에 추위가 다시 닥쳤을 때 여인은 그 어떤 희망이라도 가질 수 없었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여인은 결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도 받았다. 그녀의 얼어붙은 삶에 죽음이 다가왔다.
그녀는 분명 알고 있다.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것을, 다가올 봄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산책로를 따라 지금 그녀 곁을 지나가는 이 사람들이 다시 이 온화한 고장의 따뜻한 공기를 마시러 오리라는 것을. 조금 더 자란 아이들과 함께, 여전히 희망과 애정, 행복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안고서. 그때쯤이면 그녀는 참나무 관 속에서 살이 썩고 직접 수의로 고른 비단옷 속에 뼈만이 누워 있으리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이 내렸다.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은 멀고 추웠다. 정류장 한파 대피소는 많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4호선 지하철 길음역에 도착하는 마을버스로 줄지어 떨고 있던 승객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두 번 더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북악터널과 굽은 자락 길을 달려 집 부근 정류장에 내려 백련교를 건넜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구경하던 폭포는 얼어붙어 있었다.
집으로 꺾어드는 오르막길 도로에 소방차 두 대가 빨간 불빛으로 번쩍였다. 동네 어디서 불이 났는가? 불안한 마음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경찰차 두 대가 우리 빌라 앞 3층 주택에 서있었다. 경찰과 형사들이 수사 중이라는 노란 경찰수사선을 두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가는 나를 검은 형사가 막아섰다, 경찰 한 명은 3층 주인집으로 성큼성큼 올라가 창문을 열고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어두운 동네를 밝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꺼져 1층 벽에 처박혀있었다. 그 벽 계단 난간 쇠창살이 모두 부러져 있었다.
10년 전에 전세로 살았던 3층 주인집 부인은 K와 친해져 서로 가슴 속의 말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친척에게 선 보증으로 큰 빚을 갚고 부인과 주인아저씨는 마침내 3층 집을 사서 전세를 놓았다. 그 뼈를 깎는 세월을 부인은 웃으며 K에게 털어놓았다. 재작년 여름날 퇴근길에 만난 주인아저씨와 생맥주를 마시며 웃었던 기억이 났다. 이들에게 무슨 불행이 닥쳤는가?
루아젤 부인은 궁핍한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용감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 큰 빚을 갚아야 했다. 그녀는 모두 갚을 작정이었다. 하녀를 내보내고 집을 옮겼으며 작은 다락방에 세를 들였다.
그녀는 힘든 집안일과 주방의 고된 허드렛일을 직접 했다. 기름 묻은 냄비 바닥을 뷴홍빛 손톱이 닳도록 설거지 했다. 지저분한 내의와 셔츠, 행주를 비누로 빨라 줄에 널어 말렸다. 매일 아침 쓰레기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물을 길어 올라올 때면 층마다 숨을 몰아쉬며 쉬어야 했다. 서민 여자들처럼 옷을 입고 과일 가게, 식료품 가게, 정육점에 들렀다. 팔에 바구니를 걸고 욕을 들으면서도 값을 깎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애썼다.
기 드 모파상이 쓴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에서 루이젤 부인이 한 푼이라도 아껴 갚아야 할 빚은 3만 6천 프랑과 그 빚의 이자다. 루이젤 부인은 친구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목걸이를 빌려 만찬회에 참석하여 빛난다. 하지만 만찬 후 그 목걸이를 잃어버린다. 친구에게 빌린 똑같은 목걸이 가격이 3만 6천 프랑이다. 루아젤 부부가 이 목걸이 값을 빚으로 산다. 그들이 갚아야 할 많은 빚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매달 어음을 갚아야 했고 갱신해야 했으며 돈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남편은 저녁마다 한 상인의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했고 밤에는 종종 장당 5수를 받고 서류를 작성했다.
그런 삶이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10년이 지나자 그들은 마침내 모든 빚을 갚았다. 고리에 복리로 불어난 이자까지 전부 갚았다.
폭삭 늙어버린 루아젤 부인은 어느 일요일 친구 포레스티에 부인을 만난다.
“오랜만이야, 잔느.”
“그런데······ 부인···! 저는 당신을 모르겠는데요···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아요.”
“아니야. 나야, 마틸드 루아젤.”
“오···! 세상에, 마틸드, 너 정말 변했구나···!”
루아젤 부인은 친구 포레스티에의 잃어버린 목걸이 때문에 10년 동안 빚을 갚으며 고생한 이야기를 홀가분하게 털어놓았다.
“오! 불쌍한 마틸드! 내 목걸이는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안 하는 목걸이···!”
<목걸이>의 불행은 <보석>이라는 단편소설에서는 다르게 그려진다. 모파상의 입체적인 소설로 행복과 불행, 빛과 어둠을 그 심연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그 심연은 과거에서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닿아있다. 고통과 슬픔은 끝없이 파도친다. 빛은 어둠에 삼켜지고 삶은 죽음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