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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기약없는 이별
진현석 지음 / 반석북스 / 2025년 7월
평점 :

『외딴섬 기약없는 이별』 진현석 장편소설 – 다카시마 탄광
아침부터 하늘은 잿빛으로 흐른다. 아침부터 남부지방을 할퀸 폭우가 디시 온다고 뉴스에서 보도한다.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곳이 많은데 또 극한폭우가 다가오는가? 몰려오는 폭우로 가온은 떨어졌지만 습하고 덥다. 어제는 가을을 알리는 입추였다. 더워도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내일은 말복이다. 삶과 세상을 태우고 젖게 했던 이 무더운 여름도 언젠가 지나간다.
청량리역에서 오른 열차가 덜컹, 도시를 출발했다. 빈 좌석이 없는 열차에 입석 승객들이 통로에 서거나 앉아있다. 차창으로 멀어지는 도시를 떠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좋았다. 지난 극한폭염으로 등과 가슴팍에 번진 피부병이 아직도 가라앉자 않는다. 도시가 멀어진 차창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진현석이 쓴 『외딴섬 기약없는 이별』이라는 장편소설을 꺼내 읽는다. ‘작가의 말’에서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와 대면하는 작가의 결심이 있다.
저는 일본에 살면서 한일관계에 관한 수많은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 역사적 사실에는 복잡한 한일관계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설명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정면으로 마주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녹음기 하나 들고 도쿄에서 나가사키로, 강제 동원의 피해를 직접 겪으신 생존자분들을 만나기 위해 떠났습니다. 조심스러울 수 있는 주재라 걱정이 많았는데 흔쾌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나가사키 군함도 바로 옆 다카시마 섬 탄광에 끌려가서 강제 노역을 당한 조선인들의 고통과 한을 소설로 엮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버린 역사적 사실에 대면했다. 작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의 수는 약 696만 명으로 일본 관광객들 중 1위였다. 작년 11월, 나는 어느 재일조선인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해 나가노현 지노시(茅野市)에 갔다. 죽음과 만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까마귀 떼들이 어두운 하늘에서 울며 날아다녔다. 잊혀져가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에 대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다로 달리는 열차가 영월에 멈춰 섰다. 영월은 산업화시대 탄광의 출발점이었다. 종착점은 태백에서 멈춘다. 해방 후 하나뿐인 영월발전소를 돌리기 위해 태백지역의 석탄이 묵호에서 인천까지 바다를 통해 실려 갔다. 그 석탄은 인천에서 영월까지 탄차가 실려 공급되었다. 태백지역의 탄광으로 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탄광은 내게 근원적인 그림이다.
탄광에 들어가면 화장실은커녕 어디 시원하게 설사를 싸지를 구멍도 마땅치 않았다.처음 배변의 물꼬를 튼 건 가장 나이가 어린 순성이었다. 고작 열여섯밖에 안 된 순성이는 강원도 강릉 출신이었고 바닷가 옆에서 자라 그나마 생선이나 날것을 잘 먹는 편이었는데도 여기서 배급받은 바닷물 국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돼지우리보다도 못한 탄광 안에서의 모든 환경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보단 인간임을 포기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순사라든지 일본 녀석들과 동행하거나 말을 섞는 일은 없었다. 노무계 사람들이나 관리직원 또는 함바장 같은 사람들은 물론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근무조의 십장, 그리고 사키야마(숙련공)들과는 갱 안에서 일하면서 말을 섞을 순 있었다.
태백역에 멈춰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는 비가 내리치고 바람이 불어왔다.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바람은 그 옛날 탄광의 시절을 말하는 듯하다. 고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이 역전에서 버스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던 집으로 달렸다. 차창으로 탄광 폐수가 흐르고 막장일을 마친 석공(대한석탄공사) 광부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광부들 중에 보갱에서 일을 마친 아버지가 있었다. ‘사키야마’라는 광부 숙련공들도 예배당 고개를 넘어 탄광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갑갑한 섬에 비추는 햇살, 불어오는 바람, 진한 풀냄새와 귓가를 어지럽히는 새들, 갈 길을 방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풀벌레들과 벌들 그리고 친구라도 되어주겠다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봐 주는 주인 없는 고양이들. 사방이 바다로 고립되어 있지만 그래도 생명력을 한껏 뽐내는 중인 나가사키. 오하토에서 뱃길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푸른 섬이다.
『외딴섬 기약없는 이별』이라는 소설의 에필로그에 작가의 통찰과 반성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면하여 이야기는 일본 어디든 존재한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삿포르 등 대도시를 비롯해 작은 시골 마을까지 현재의 일본은 외관상 우리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의 가까운 나라이다. 특히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나 국도를 달리다 보면 마주치는 풍경은 그렇게 한국과 비슷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안 어딘가에 묻혀 있는 아픈 역사를 나눠 짊어진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피와 살점과 눈물 그리고 땀방울은 세월이 지나도 어딘가로 튀어나와 보일 길이 거의 없다. 그것은 비단 강제 노역 피해자들만이 아니다. 우리의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면 형제 친구들. 각자의 사연을 들고 낯선 이국땅에 발을 들여놓고는 어렵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 전부이다.
각자의 사연과 맺힌 한은 사방으로 소리 없이 뿌려져 지금도 바람을 타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것은 너무 방대해 도통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일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들이 사진으로 찍어 추억을 남기려던 어떤 곳의 바위일 수도, 어느 바닷가의 모래사장 아래일 수도, 기가 막히게 맛있는 덴푸라 가게 옆 어디가 될 수도 있다.
나가노현 지노시에서 돌아가신 재일조선인 S선생은 내게 조신인들이 끌려가셔 강제 노역을 당한 일본의 탄광을 아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없다고 대답한 내가 지금도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선생은 내게 역사와 삶 속에서 타인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기를 희망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그 말은 나에 대한 사랑임을 안다. 이것이 슬프다. 어쨌든 다카시마 탄광을 다룬 『외딴섬 기약없는 이별』이라는 소설로 일본의 탄광을 공부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