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법칙은 대체로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통은 두번째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런 법칙이 생겨난 것은 첫사랑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혹은 어떤 종류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우리는 첫사랑을 마주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의 실험상대가 되는 것이다.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랑을 한다. 나는 처음에 사랑이란 하나이고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사랑은 그대로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해서 첫사랑은 나에게 사랑이란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 후로도 여러번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들이 있었다.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에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그렇게 여럿의 사랑을 보내고 나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랑은 이루어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루어진다는 상태는 꿈이다. 사랑은 현재이고,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것이다.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하는 마음이다. 나는 이제 영원이나 평생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을 찾는다. 체실 비치에서 끝난 사랑이 실패한 사랑이라거나 누구의 잘못이었다거나 하는 평가도,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각자의 몫이다. 지나간 사랑이 하는 일은 우리가 다음에 마주칠 사랑에게 같은 종류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읽던 책을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선물해주고 몇주만에 한국에서 새로 받았다. 새 책으로 읽으면 나는 같은 곳에 줄을 치게 될까 생각했는데 달랐다. 나는 그 사이에 또 새로운 내가 되어서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눈물이 줄줄 나기도 했다.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 P25
"당신은 종교적인 사람인가요?"나는 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네." 그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무신론자예요."흥미로운 대답이었다. - P237
이 시리즈를 좋아하면서 세번째 읽는 책인데, 전부가 딱히 제목과 주제가 일치하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멀다고 생각하는 책. 연애는 모르겠지만 산책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글들이 딱히 나쁘지 않으니까 그냥 읽지만 출판사의 억지가 조금 질리려고 한다. 유진목씨는 매우 어둡고 정리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여성이 솔직한것만으로도 아직 의미가 있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