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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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법칙은 대체로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통은 두번째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런 법칙이 생겨난 것은 첫사랑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혹은 어떤 종류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우리는 첫사랑을 마주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의 실험상대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랑을 한다. 나는 처음에 사랑이란 하나이고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사랑은 그대로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해서 첫사랑은 나에게 사랑이란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 후로도 여러번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들이 있었다.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에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그렇게 여럿의 사랑을 보내고 나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랑은 이루어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루어진다는 상태는 꿈이다. 사랑은 현재이고,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것이다.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하는 마음이다. 나는 이제 영원이나 평생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을 찾는다. 체실 비치에서 끝난 사랑이 실패한 사랑이라거나 누구의 잘못이었다거나 하는 평가도,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각자의 몫이다. 지나간 사랑이 하는 일은 우리가 다음에 마주칠 사랑에게 같은 종류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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